부위정경, 위권진주 by deulpul

MB, 국정직할 '제왕적 대통령' 회귀

근대적 기업 제도인 법인 사업체의 대표적 형태는 주식회사이며, 그 밖에 자주 보기는 어렵지만 합명회사, 합자회사, 유한회사가 있다. 다양한 기업 형태를 가름하는 주요한 기준은, 기업 결성과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의 책임이 어느 정도까지인가이다. 예컨대 합명회사는 회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모두 무한 책임을 지는 형태의 회사다. 유한회사는 자신이 출자한 금액 안에서만 책임을 진다.

여기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회사 운영으로 부채가 발생했을 때, 이를 변제한다는 의미다. 합명회사는 무한 변제 책임이 있으며, 유한회사는 사업에 참여한 사람이 낸 돈 안에서만 변제한다. 말하자면, 회사가 거덜나고 부채가 발생했을 때, 합명회사 사장은 살림살이까지 다 털어서 변제해야 하고, 유한회사 사장은 자기가 투자한 돈만 날리면 된다.

해마다 신년 초면 이름값이나 한다 하는 한국 정치인들은 서로 앞다투어 그럴듯한 사자 성어를 발표한다. 새해 한 해를 어떻게 살겠다거나 어떤 각오와 다짐을 하겠다거나 하는 뜻일텐데, 하는 꼴들을 보면 진정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기도 어려운 구두선 넉 자에 누가 관심이나 기울이랴만은, 여하튼 그런 짓들을 한다.

올해 청와대가 내세운 한자 넉 자는 부위정경(扶危定傾)이었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 말은 [주서(周書) 이기전(李基傳)]의 '태조 부위정경, 위권진주(太祖 扶危定傾 威權震主)'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말의 뜻은 '태조가 위기를 맞아 나라를 안정시켜 그 위엄과 권위가 왕을 두렵게 하였다' 는 것이라고 한다.

이 고사(故事) 문구에서 청와대가 강조한 부분은 '정경(定傾: 바로잡아 안정시킴)'이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내 눈길을 끈 것은 '위권(威權: 위세와 권위)'이었다. 때가 마침, 국민 및 야당과 힘겨루기를 하며 반민주 악법들을 강제로 통과시키려고 하던 때였던 탓도 있다.

왕정에서 군주의 위세와 권위는, 제왕으로서 왕권을 집행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장치라 할 수 있다. 백성과 만조백관의 목을 말 한 마디로 뎅겅뎅겅 벨 수 있는 왕권은 위세와 권위로 뒷받침될 때만 유효하다. 위세와 권위가 없다면 자기 목이 뎅겅 달아난다.

그러나 지금이 왕조 시대인가. 우리가 왕을 모시고 살고 있는 것인가. 유치하기는 하지만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5년 한하고 심부름꾼 하나 데려다 쓰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비록 입발린 소리긴 하더라도, 선거에 나온 이라면 누구나 국민을 잘 섬기겠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되뇌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위권진주와 짝이 되는 말을 신년 화두랍시고 걸고 나왔다. 이 고사의 속뜻을 밝혀 놓은 이 글에도 나오지만, 위권진주는 '가짜 왕이 진짜 왕을 두렵게 할 정도로 권위와 위세를 부렸다'는 말이다. 진짜 왕(主)이란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다. 결국 권위와 위세를 내세워, 나라의 진짜 주인인 국민을 두렵게 하겠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것이 오해면 좋겠는데, 치고 패고 찍고 막고 캐고 쑤시고 짜르고 돈 물리고 재갈 물리고, 심지어 사람 목숨까지 가벼이 여기는 판이 벌어졌는데도 엄벌 소리만 되뇌는 정부 꼴을 보니, 온통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국민 처지로서는 오해가 오해라고 해도 오해라고 믿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권위와 위세로 왕이 되고 싶은 지도자는 민주주의 시대의 지도자상은 분명 아니다. 그래도 왕이 되고 싶으면 한시적이나마 왕 노릇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상민 천민 개백정 다루듯 하며, 마음에 드는 간신으로만 골라 엮어 세운 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한 가지 각오해야 할 것이 있다. 권력이 왕권에 가까워질수록, 절대 권위를 누리면 누릴수록 그 위험도 더 커진다는 점이다.

민주적 지도자가 주식회사의 사장이라면, 제왕적 지도자는 합명회사의 사장이나 마찬가지다. 민주 지도자는 헌법과 민주적 틀 안에서 통치하며, 그 안에서만 책임을 지면 된다. 여론을 무시하고 절대 권위를 추구하는 제왕적 지도자는 자신의 언행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합명회사 망하면 사장이 무한 책임 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성혁명으로 뒤집힌 왕조의 최후 왕 신세는 어떻게 되던가. 국체가 공화정으로 거듭날 때, 절대 권력을 누리던 전제 군주들은 어떻게 끝나던가. 공화정 간판 걸고 왕권을 누리던 절대 독재자의 말로는 어떤 것이던가. 역사는 해석 없는 사실만으로도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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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mino의 생각 2009/01/24 21:04 #

    '국체가 공화정으로 거듭날 때, 절대 권력을 누리던 전제 군주들은 어떻게 끝나던가. 공화정 간판 걸고 왕권을 누리던 절대 독재자의 말로는 어떤 것이던가. 역사는 해석 없는 사실만으로도 교과서다.'... more

  • Graffiti Paper # 04 - 2009.01.27. 2009/01/28 12:33 #

    EDITOR'S COMMENT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해 한해 가는걸 생각해보니 왜 이리 시간이 흐르는 것이 빠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시간이 빠르다고 느껴지는 것은 늙어간다는 느낌이라는 모모씨의 말도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말이 그다지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라고 말을 해야 할까 말까...뭔소리냐... 뭐 아무튼 그렇습니다. 올해는 자꾸 나이를 상기시키면서 생식능력에 의심을 표하는 친척들이 너무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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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1월 24일 « camino @ iPhone 2009-01-25 04:31:09 #

    ... 라.(2mbout)# 눈 내리다 그친 오후.(me2mms me2photo)# ‘국체가 공화정으로 거듭날 때, 절대 권력을 누리던 전제 군주들은 어떻게 끝나던가. 공화정 간판 걸고 왕권을 누리던 절대 독재자의 말로는 어떤 것이던가. 역사는 해석 없는 사실만으로도 교과서다.’(blog link)# 이 글은 camino님의 2009년 1월 24일 ... more

덧글

  • camino 2009/01/24 21:06 # 삭제 답글

    명절이 눈앞인데 답답하고 울적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설, 잘 보내시길 빕니다.
  • deulpul 2009/01/28 10:08 #

    이런,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쪽에서는 설이 큰 의미가 없겠지만, 또 다시 새해를 시작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 LieBe 2009/01/28 12:38 # 삭제 답글

    이번글도 잘 읽었습니다.
    트랙백 남기고 가요...
  • deulpul 2009/01/29 12:43 #

    고맙습니다. 아, 진짜 손이 많이 가는 일일텐데 놀랍네요. 기자들이 취재해 써온 글 중에서 골라 지면을 구성하는 편집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시는군요. 앞으로 편집장님으로 불러야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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