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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이사 주간이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통째로 한 층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공간이 좁아서 다들 애를 먹었는데, 숨통이 좀 트인 셈이 됐다. 공간을 좀 넓게 쓰자는 것이 이사를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우리 부서뿐 아니라 다른 부서도 사정이 비슷해서, 부서별로 연쇄 이사를 하는 바람에 새해 초부터 이사 태풍이 불고 있다.
내가 속한 부서만 봐도, 사람 열 다섯 명이 한꺼번에 자리를 옮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1월 초부터 '이사 위원회'가 구성되어, 일정을 짜고 새 공간 분할 도면을 그리고 일을 할당했다. 실질적으로 짐을 싸 나른 것은 이번 주였다. 사람 열 다섯이라도 개인 비품만 있다면 일주일이나 걸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책상이나 캐비닛 같은 큰 가구는 계약을 맺은 이사 업체 직원이 하루 만에 다 옮겼다. 문제는 서류였다. 이 사무실에는 서류가 엄청나게 많다. 사무실 벽은 거의 모두 서류 캐비닛으로 둘둘 둘러쳐 있고, 그 벽 안에 사람이 산다고 생각해야 할 정도다. 이 서류들은 모두 연구 기금과 관련된 것으로, 아무리 오래 되어도 계정이 유지되는 한 계속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 종류의 것이다. 일찌감치 전산화 작업을 벌였더라면, 백업을 포함해도 고용량 하드 드라이브 몇 개에 다 들어갔을 것이다. 작년 여름부터 서류들의 디지털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하드 카피는 여전히 보관된다. 이 서류의 상당 부분은 직원들이 직접 옮겨야 했다. 뒤섞이면 재앙이 되는 중요한 서류들이었는데, 어디에서 나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일목 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자빠져도 자기가 나른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말하자면 여성 천국이다. 천국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원 절대 다수가 아줌마들이다. 재정이라든가 행정 관련 업무를 주로 취급하는 부서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 분들이 짐을 싸 나르기 시작하는데, 내 딴에는 좀 놀라운 점이 있었다. 몸으로 하는 일인데도 비실비실 열외로 빠진다거나 남의 손을 빌리려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여성이 사무실 구성원의 대다수이므로, 여성이라고 손 놓고 팔짱 끼고 있으면 이사 자체가 되지 않기도 하겠지만, 이 분들이 나서서 일을 하는 모양을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몸으로 하는 일인데도 여성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게 씩씩하게 움직였다. 우리 같으면 당연히 남자들이 날라야 하는 짐들도 모두 자신들이 처리했다. 서양 여성은 보기와는 다르게 속으로 인크레더블 헐크와 같은 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힘에 부쳐도 자신들이 하려 했다. 한 아줌마는 무거운 책 박스를 들어 옮기다 무게를 못 이기고 앞으로 고꾸라지다시피하며 털썩 주저앉게 됐는데, "Oh, I'm so stupid... hehehe" 하며 정말 바보같이 웃는 것이었다. 그래도 결국 자기가 날랐다. 명색 몇 안 되는 남자라는 점 때문에 죄 지은 것도 없이 죄책감이 든 나는, 되도록이면 많이 움직이고, 되도록이면 무거운 상자도 내가 들려고 했다. 그런데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무거운 놈들은 내가 할테니까 놔두고 가벼운 것부터 나르라고 말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고(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딴엔 다른 사람들 생각해서 열심히 왔다갔다 하는데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쟤는 이사하는 걸 무지하게 좋아하나봐?' 하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한 번은 카트에 예닐곱 개 정도 실린 서류 박스를, 사라 미셀 겔러처럼 휘청휘청한 직원과 함께 옮기게 됐다. 박스가 꽤 무겁기도 하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해야 했으므로, 내가 혼자 할테니까 다른 일 하라고 제안했다. 물론 나보다 덩치도 작고 힘도 덜 할 것 같은 동료 직원을 생각해서 그런 것인데, 반응이 의외였다. "Uh? No, no...You are so silly, haha... Don't worry about me." 웃으면서 말했지만, 순간 내가 결례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정적인 말이었다. 어쩌면 남자라고 일 더 하겠다는 것은 마초 의식인지도 모른다. 혹은 건축가 김진애가 말하는 '호의적 차별' 의식을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얼굴이 화끈해졌다. 차별 받지 않을 권리, 차별 받지 않을 의무 이사 주간이 끝나는 금요일에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사무실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남성 직원과 여성 직원 사이에 성적 차이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힘이 넘치는 아줌마들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자신의 짐을 남에게 맡기려 하지 않았고, 공동의 짐도 남이 나설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무거운 짐은 당연히 남자들이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식에 익숙한 나로서는, 따라서 이사란 대개 남자들의 행사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미국 여성은 힘이 센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센 것은 육체적 힘만이 아닌 듯 했다. 나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분명한 신체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육이 다르고 골격이 다른 것은 성기가 다른 것이나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가 이 차이에 대해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차이를 어떤 정도와 양상으로 수용할 것인가는 사회에게도, 개인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와 문화에 따라 이 정도와 양상은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듯하다. 그 양상이 어떤 것이든, 분명해 뵈는 게 하나 있다. 어릴 때부터 차별 하지 않도록, 또 차별 받지 않도록 키워지고 자란 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데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거꾸로,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는 상황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이것은 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여성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으므로, 이렇게 보편적으로 말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내가 생리통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듯, 여성들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보편적으로 겪는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부분이 읽힌다면 오로지 내 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대신 위에 링크한 블로거 김진애님의 글을 한번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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