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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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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경제 발작 시대로, 윤리, 도덕, 질서, 책임이 모든 생산 행위의 적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8년에 출간되었으니 딱 30년 전 이야기다. 그러나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 이러한 경제 발작은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단정적으로 시대를 지배한다. 그 방식이 폭력적인 데서 세련되고 교묘한 것으로 바뀌었을 뿐. 아니, 폭력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나마 30년 전에는 그래도 부끄러운 줄은 알아서 숨기고 감추려 애썼는데, 지금은 발작질을 하면서도 일말의 수치심조차 없다. 경제 발작 시대를 기반으로 하여 융성을 누리는 장본인들은 30년 전보다 훨씬 견고하게 자신의 신념을 믿고, 훨씬 더 투철하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훨씬 더 더 뻔뻔하게 그 신념을 강요한다. 통찰하고 반성하는 사회적 동력을 생산해야 할 새 세대는 이러한 선전과 강요에 무장 해제된 채, 완벽하게 무력하다. 내가 말했다. "사실은, 공장을 지어 일을 주고 돈을 주었지. 제일 많은 혜택을 입은 게 바로 이들야." 사촌이 웃었다. 웃는다. 깨인 재벌 아들은 자신의 모순 앞에서 무력하게 그저 웃지만, 그 희생자들까지 멍청이처럼 함께 따라 웃을 수는 없다. 그들은 우리가 남다른 노력과 자본, 경영, 경쟁, 독점을 통해 누리는 생존을 공박하고 저희들은 무서운 독물에 중독되어 서서히 죽어 간다고 단정했다. 그 중독 독물이 설혹 가난이라 하고 그들 모두가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했다고 해도 아버지에게 그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저희 자유 의사에 따라 은강공장에 들어가 일할 기회를 잡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마음대로 공장일을 놓고 떠날 수가 있었다. 공장일을 하면서 생활도 나아졌다. 그런데도 찡그린 얼굴을 펴본 적이 없다. 머리 속에는 소위 의미 있는 세계, 모든 사람이 함께 웃는 불가능한 이상 사회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늘 욕망을 억누르고, 비판적이며, 향락과 행복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는 했다. 이상에 현실을 대어 보는 이런 종류의 엄숙주의자들은 생각만 해도 넌더리가 났다. 이제는 아무도 이상 사회를 그리지 않는 듯하다. 엄숙주의자들도 사라졌다. 그 공백을 쉼없는 경제 발작이 메우고 있다. 30년 전에는 독점 대기업을 물려받을 재벌 2세, 3세만이 엄숙주의에 넌더리를 냈지만, 지금은 손가락을 빠는 이들까지 함께 넌더리를 낸다. 수십 년 동안 진화해 온 천민자본주의는 자기 의식의 무한 증식에 완벽히 성공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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