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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뭔가 석연치 않은 일을 한다. 공공 서비스직이 곧 벼슬로 인식되던 예전 같으면, 공무원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예예하고 넘어갔겠지만, 요즘 세상이 어디 그런가. 주인은 주인 노릇을 해야 주인 대접을 받는 법이다. 그래서, 시민의 일상을 다루는 공무원의 태도나 대응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을 때, 이를 따져 묻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저쪽에서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라든가 "법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하면 이쪽은 말문이 막히게 된다. 시민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다. 한편 공무원은 법률과 규정에 따라 공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공무원은 자기 업무와 관련된 규정을 잘 알테고, 시민은 그렇지 않다. 법에 따라 일하는 자가, 법과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데 어쩌겠는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더라도, 공무원이 그렇다고 하면 일단 닭 쫓던 개처럼 말문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이런 점이 악용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당장 불리하고 옹색하니, 주인은 잘 모르는 '법'을 들먹이는 것이다. 시민들이 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자신들이 하는 일을 은폐하거나 변명하거나 잘못을 두루뭉술 넘어가는 경우다. 다른 말로 하면 물론 기만이요 사기다. 무리한 짓을 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지, 요즘 곳곳에서 그런 이야기가 들린다. 비슷한 사례 하나. 외국에 살다 보니 한국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시는 늙은 어머니에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가끔 전화나 드리고, 일년에 한두 번 영양제를 부쳐드리는 게 고작이다. 지난 1월 초에 영양제를 보낼 때 일이다. 마침 연말연초여서, 어머니랑 비슷하게 늙어 가시는 이모님 네 분께 보낼 약도 함께 챙기다 보니 갯수가 좀 많아졌다. 공항에서 그냥 통과되면 다행이지만, 짐 목록에 갯수를 적어 놨으니 검사를 받고 관세를 물어야 할 가능성이 컸다. 짐이 많으니 세금 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홀로 계신 어머니가 그 뒷절차를 수행하는 일이 좀 난감해진다. 소포를 보내고 대엿새가 지났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부친 영양제 짐은 인천공항 국제우편세관에서 개봉 검사를 받게 되었던 모양이다. 세관 신고 대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걱정이 한 가득이다. '신고 대상'이라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 지난 번에도 비슷한 일이 한 번 있긴 했지만, 어머니는 처음 겪는 일처럼 또다시 걱정하셨다. 이렇게 소포가 세관 신고 대상이 되면, 세관은 소포를 통관하기 위해 몇 가지 서류를 요구한다. 수취인이 작성해야 하는 '국제우편물 간이통관신청서'와 상품의 값을 증명하기 위한 상품의 구매 영수증이 그것이다. 통관 신청서는 어머니가 보내야 한다. 영수증은 여기서 내가 인천세관으로 보내야 한다. 받는 놈은 그냥 앉아서 받으면 되지만, 보내는 놈은 품깨나 파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소포를 주고받자는 사람은 세관 공무원이 아니고 발송자인 나나 수취인인 어머니이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긴 하다. 규정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자. 영수증철을 뒤져 영수증을 찾아서 복사를 했다. 팩스 부치는 것이 일인데, 사무실의 팩시밀리로 개인적인 일과 관련한 국제 문서를 보내기는 싫었다. Kinkos를 찾아가 팩스를 보내는데, 석 장에 18달러를 달라고 했다. 어쨌든 어머니가 알려주신 번호로, 인천공항 국제우편세관에 영수증 팩스를 넣었다. 규정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자.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우체국 직원이 가져온 통관신청서를 작성해서 팩스를 보내셔야 했다. 늙은 어머니가 어디에서 팩스를 보낼 것인가. 어머니 집 주변에 팩스 보낼 수 있는 곳이 없나를 한참 찾다가, 우여곡절 끝에 집 근처의 사무실 한 곳에 가서 구차한 말을 함으로써 겨우 팩스 한 장을 보내실 수 있었다. 이것도 규정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자. 영수증 팩스를 보냈다고 어머니께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세관 직원과 통화를 했더니, 그가 말하길 병원에 가서 의사 소견서를 하나 떼어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 무슨 처방전 필요한 치료약도 아니고, 그저 비타민, 관절약 보내고 받는 데 무슨 의사 소견서며 진단서가 필요하단 말인가. 이것도 규정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가? 인천공항 국제우편세관에 국제 전화를 걸었다. 다음은 나와 세관 공무원 간에 오간 대화의 요약이다.
여기서 나는 말이 좀 막혔다.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데 어쩔 것인가. 대체로 법이나 규정은 따르기만을 강요할 뿐, 개개인의 구차한 사정 같은 것은 별로 봐 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다시 말이 막혔다. 내가 그처럼 관세법으로 밥을 먹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처럼 당장 법전을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게 아니겠는가.
이렇게 전화를 끊었다. 이건 요약본이고, 실제 통화는 10분 가까이 되었다. 인천 세관에는 내가 쓰는 국제 전화가 통하지 않아서, 휴대폰으로 했더니 전화비가 11달러 정도 나왔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찾아보았다. 우선 인천공항 국제우편세관의 홈페이지 '우편물 통관 절차'에는 의사 소견서 같은 서류를 내야 한다는 말이 없었다. 제출 서류로는 간이통관신청서와 가격 자료, 즉 영수증이 다였다. 보조 서류를 따로 보내야 한다든가 하는 말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법이 그렇다는데? 대법원의 법령 웹사이트에서 해당 규정을 찾아보았다. 세관 직원이 말한 관세법 시행규칙 제45조 2항 1호는 '자가 사용 인정 범위'를 규정한 항목이었다. 제45조 (관세가 면제되는 소액물품) ②법 제94조 제4호의 규정에 의하여 관세가 면제되는 물품은 다음 각호와 같다.<개정 2003.2.14, 2004.3.30> 1. 당해 물품의 총과세가격이 15만원 상당액 이하의 물품으로서 자가사용 물품으로 인정되는 것. 다만, 반복 또는 분할하여 수입되는 물품으로서 관세청장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것을 제외한다. 세관 직원이 말한 제45조 2항 1호는 보낸 물품이 면세되는 범위를 규정한 조항 중 하나다. 관세법 제94조 제4호(우리나라 거주자가 수취하는 소액물품으로서 기획재정부령이 정하는 물품은 면세 처리함)를 구체화하여, 면세되는 물품이란 총과세가격이 15만원 이하이고 (판매용이 아니라) 스스로 쓸 용도인 경우라는 점을 밝힌 규정이다. 다시 말하면, 총과세가격이 15만원 이상이거나 판매용으로 수입되는 경우는 과세 대상이라는 말이다. 세관 직원이 의사 소견서를 떼어 오라고 한 것은 아마도 '자가 용도'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제시한 관세법 시행규칙 해당 조항에 따르면 이는 말이 되지 않는 요구다. 내가 보낸 소포의 경우, 총과세 가격이 15만원 이상이므로 관세 납부 대상이 된다. 그래서 태평양 양쪽에서 팩스를 보내고 온갖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일단 과세 대상이면 관세의 측면에서 자가 사용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조항에 따르면, 자가 사용 여부를 따지는 것은 15만원 이하로서 면세 대상인 물품에 대해서이다. 15만원 이하라도 판매용으로 반입되는 물품은 과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왜 이미 과세 대상이 되어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물품에 대해 자가 사용/상용 여부를 따지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인가. 세관 직원은 이런 규정 때문에 의사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해당 규정 어디에도 이런 부가 서류를 요구하는 조항은 없었다. 다른 관련 문서를 찾아보니, 건강식품의 경우 '과세 가격 15만원 이내에서 6병까지 면세 통관'이라고 되어 있었다. 역시, 15만원어치가 넘고 6병을 초과하므로 과세 대상이고, 그래서 통관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았는가.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요구하는가. 이렇게 '법 공부'를 하고 나니 화가 치솟아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 다시 전화를 걸고 싶었으나, 어머니가 말리셔서 그만 두었다. 길이 미끄러워서 잘 나다니시지도 않던 어머니는, 영하 20도 아래로 뚝 떨어진 다음 날, 늦게 가면 환자가 많아서 한참 기다릴까봐 아침 일찍, 20분을 걸어서 병원엘 가셔서, 30분을 기다려 의사를 만나고 소견서에 사인을 받고, 나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다시 꽁꽁 언 거리를 20분 동안 걸어 집으로 오셔서, 다시 그 사무실에 가서 구차한 말씀을 하여, 이 의사 소견서를 인천공항 국제우편세관에 팩스로 보내셨다. 그리고 감기가 걸리셔서 일주일을 앓아 누우셨다. 혹시 내가 알아본 법이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면 지적해 주시면 고맙겠다. 그러면 이 글은 바로 삭제하겠다. 그게 아니라면, 시민이 규정을 잘 모른다는 점을 빌미로 하여, 얼토당토않은 규정을 대며 불필요한 서류를 요구한 인천공항 국제우편세관은 단체로 한 10년 쯤 더 살게 된 줄 아시기 바란다. 어머니가 앓아 누우신 동안 내가 쏟아 부은 욕을 처먹으면 그 정도 기간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듣지도 못할 욕이나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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