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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로지 푸른 것은 소중한 생명의 나무뿐이지만, 그 나무만큼이나 짙푸른 진리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다든가 하는 것이죠.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평생 건강하고 왕성하게 살 수도 없습니다. 인생의 그래프란 y=50 과 같은 수평 직선의 모양이 아니라, 출생-성장-절정-쇠퇴-소멸로 이어지는 상승-하강의 곡선 그래프로 그려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조금씩 포기하고 상실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인생의 절정을 지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씩 포기하여야 합니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고요.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은 아니죠. 몸은 차츰차츰 한계를 갖게 되는데, 마음은 여전히 절정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사람이란 자신감으로 살고, 자신감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몸과 마음 사이의 갭은 언젠가 현실로 불쑥 다가오고, 준비를 하지 않으면 그런 순간순간은 하나하나 모두 충격이 됩니다. 폐경기를 맞은 여성은 호르몬의 부조화로 많은 고통을 겪게 되지만, 심리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여성으로서 더 이상 아이를 만들 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깨달음은, 분명히 커다란 상실감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실감은 사람이 이팔청춘 절정기에 요절하지 않는 한,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에 있을 때, 여름 휴가 때는 대개 지리산으로 들어갔습니다. 홀로 다니다보니 고생도 많이 했고, 무릎을 다쳐서 기다시피 하며 내려온 적도 있지만, 그렇게 다녔습니다. 제가 지금 사는 곳은 이렇다할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어서, 등산 비슷한 것을 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다시 지리산을 종주할 수 있을까. 몇날 며칠 고생하며, 티셔츠를 소금으로 새하얗게 얼룩지우며, 다시 세석을 지나고 천왕봉을 올라 일출을 볼 수 있을까. 등산다운 등산을 해 본 지 오래인 몸으로, 바위산과 돌밭길의 끝없는 행로가 줄 압력을 여전히 몸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게다가 몸은 그 때보다 훨씬 더 '낡은' 상황이 아닌가. 엄살인가 싶기도 하지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던져야 할 때가 엄정하게 다가올 겁니다. 그리고 또 언젠가, 그 대답을 '아니오'로 낼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겁니다. 생명의 나무만큼이나 짙푸른 진리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있는 안양루에는 김삿갓으로 알려진 시인 김병연이 쓴 시가 걸려 있습니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머리 센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 백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다 늙어서 절경을 찾아온 아쉬움도 크지만, 그보다 이제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리라는 안타까움이 더 진하게 전해 옵니다. 김병연이 늙고 병들게 된다면, 그는 안양루에서 바라본 소백산정의 장엄한 광경을 꿈에서 되새기고 시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다시는 자기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겠지요. '再登安養樓' 같은 시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아쉽긴 하지만, 이게 삶의 진실이겠습니다. The Show must go on! The Show must go on! Inside my heart is breaking, My make-up may be flaking, But my smile, still, stays on! My soul is painted like the wings of butterflies, Fairy tales of yesterday, will grow but never die, I can fly, my friends! I'll top the bill, I'll overkill, I have to find the will to carry on! On with the, on with the show! ('The Show Must Go On' by Queen, 일부) 네, 쇼는 계속 되어야 하죠. 버릴 것은 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도, 쇼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쇼의 레퍼토리가 조금씩 바뀌고 무대에 서는 광대의 화장도, 그 속에 깊게 감추인 얼굴도 조금씩 바뀌겠지만, 쇼는 어쨌든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것도 생명의 나무만큼이나 영원히 푸른 진리가 아닐까요. 그게 삶인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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