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범죄 성립의 요소를 설명하는 친절 by deulpul

검찰, ‘PD수첩 작가 이메일 내용’ 수천명에 공개 발송

정병두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공적 인물의 명예 훼손은 현저히 공정성을 잃은 경우나 악의가 있는 경우에만 인정되기 때문에 (해당 이메일은) 공소사실과 관계 있는 중요한 자료”라며 “국민들에게 범죄 성립의 중요한 요소를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고민 끝에 공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설령 '공소 사실과 관계 있는 중요한 자료'라면 기소장에 쓰면 되지, 왜 까는가. 범죄 성립의 중요한 요소? 그걸 왜 국민에게 설명하나? 언제부터 검찰이 개인의 사신(私信)까지 공개하면서 범죄 성립의 요소를 국민에게 친절히 보고해 왔던가? 국민이 재판하나? 오, 인민재판하자고?

검찰이 수사를 빌미로 개인의 이메일을 열심히 압수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그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퍽 이례적이다. 2007년 9월 신정아의 학력 위조 사건 때, 검찰은 신정아와 변양균 사이에 오고간 이메일을 복원한 뒤, "연인 사이에 오고갈 낯뜨거운 내용이 있다" 따위의 말을 흘려, 이 사건이 선정적 스캔들로 왜곡되는 데 기여했다. 정작 이메일은 내용은 재판 과정에서 공개했다. 2007년 12월에 벌어진 공판 과정에서, 검찰은 두 사람이 신정아의 교수 임용과 후원금 모금 외압에 공모했음을 추궁하면서 이메일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말하자면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메일을 압수해 놓고 재판도 하기 전에 그 내용을 직접 발표한 경우는 드물다. 검찰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은 혐의를 조사하면서 천신일의 이메일을 확보했었다. 그러나 이 내용을 공개해, '국민에게 범죄 성립의 중요한 요소를 설명한' 적은 없다. 설명 듣고 싶어하는 국민 많았을텐데 말이다. 그저 "적절한 시점에 천회장을 불러 조사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또 2009년 1월, 미네르바 박대성을 조사할 때도 압수수색을 통해 박대성의 이메일을 확보했지만, 이를 직접 공개하지는 않았다. '범죄 성립의 중요한 요소'가 없었던지, 아니면 이를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수많은 사람이 검찰 수사의 의도와 타당성에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한편, 2008년 상반기 동안에 검찰이 압수한 이메일 계정은 3천300여 개나 된다, 3천300여 개. 주경복 서울시교육감 후보 선거 자금 수사 때는, 관련자 무려 100여 명의 이메일을 압수했으며, 길게는 7년치의 이메일까지 뒤졌다. 이메일은 압수 수색 사실을 이메일 주인에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검찰이 당신의 이메일을 뒤지고 압수해도 당신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쥐도새도 모르게 기어들어와 우편함을 뒤져 필요한 편지를 꺼내가는 꼴이다.

우리 헌법은 개인의 통신 비밀을 침해받지 않을 것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제18조). 그러나 요즘이 어디 헌법전 종이값이나 제대로 하는 때인가. 검찰은 명백한 통신 수단인 이메일을 놓고, 통신비밀보호법상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기사에 나온 헛소리를 들어볼까.

검찰은 이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상 앞으로 주고받을 이메일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압수수색은 집행 뒤 당사자에게 통보하게 되어있지만, 과거에 주고받은 이메일에 대한 압수수색은 형사소송법에 의해 이뤄지며 통지의무 규정이 없다”고 반박했다.

앞으로 주고 받을 이메일을 실시간으로 확인? 허허허...

검찰의 이메일 압수는 전화 감청과 비슷한 목적과 수위로 행해지고 있다. 이메일이 개인 간의 통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전화를 감청하듯 이메일 계정을 뒤지는 것이다. 전화나 하나 다를 것 없는 통신 감청이다. 법의 헛점을 악용해 이메일을 자의적으로 통신비밀보호법에서 제외시키는 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이런 자의적 관행이 중지되기 전까지는, 별 제약 없이 이메일을 압수할 수 있다. 당사자에게조차 알리지 않아도 되니 눈치볼 것도 없다. 헌법상 기본권이고 나발이고, 그냥 조낸 긁어오면 된다.

그러다 섹시한 것 하나 걸리면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하면 되고. 어때요, 참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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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까의 생각 2009/06/19 17:15 #

    이메일은 압수 수색 사실을 이메일 주인에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다 날려야할듯 ㄱ-... more

  • 이메일 공개라.. 2009/06/19 22:26 #

    역시나 김은희 PD의 이메일 공개로 사생활 침해니 뭐니.. 정부가 어떠니 말들이 많다. 그들에게 한가지만 물어보고 싶다. 얼마전 '청와대 여론조작'설의 시발점이 되었던 청와대 직원의 이메일 내용 공개. 당시 민주당(이라고 기억한다) 국회의원이 청와대 직원의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을 때에 사람들은 사생활 침해 운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유독 이번에는 사생활 침해 운운 하는 것인가? 국회의원이 청와대 직원 이메일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 more

  • 083. 김작가의 이메일 (09.06.21) 2009/06/21 17:33 #

    1. 무식한 국민들 같으니라구... (0:00) 2. 검찰의 수사발표 (2:36) 3. 검찰은 왜 김작가의 이메일을 공개했을까? (6:18) 4. 검찰이 김작가의 이메일을 봐도 돼? (18:59) 5. 김작가에게 통지는 한거야? (21:10) 6. 검찰이 김작가의 이메일을 공표해도 돼? (25:49) 7. 검찰의 간접적인 자기고백 (30:51)... more

덧글

  • 사발대사 2009/06/19 07:06 # 답글

    이오공감에 추천했습니다.(__)
  • deulpul 2009/06/20 06:02 #

    고맙습니다.
  • 2009/06/19 07:0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09/06/20 06:04 #

    개인적으로는 좋은 분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권력 조직 특성과도 관련 있는 모양입니다. 정치권 진출이 예정 진로처럼 되어 있는 점도 관련이 있겠지요.
  • Moonseer 2009/06/19 09:02 # 답글


    법의 집행자라는 사람들이 법의 헛점을 방치해두고 솔선수범해 악용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런 곳에 신뢰를 줄 수 있을 리가 없지요.
  • deulpul 2009/06/20 06:04 #

    헛점이 많을수록 권력 가진 사람이 편합니다. 재량권이라는 고무줄 권력이 늘어나기 때문이죠...
  • 이상훈 2009/06/19 09:10 # 답글

    이를테면, 편지를 보내면 중간에 우체국에서 까보는 것과 같군요.
  • deulpul 2009/06/20 06:07 #

    이 부분, 조금 토론이 필요합니다. 이메일의 특성은 기존 어떤 통신 수단과도 완벽하게 비유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조만간 다시 짚어보고 싶습니다. 어쨌든 지금처럼 수사 기관이 마음대로 까볼 수 있는 환경에서는, 이메일은 남들 다 볼 수 있는 엽서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아르케인 2009/06/19 09:17 # 답글

    검참질 참 쉽군요.
  • deulpul 2009/06/20 06:08 #

    강철중씨는 참 어렵게 하더만요...
  • 운향목 2009/06/19 09:37 # 답글

    개나소나 다하는거면 나도 검찰이나 할까..<-
  • deulpul 2009/06/20 06:09 #

    소가 검찰청에 들어갔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 hihumi 2009/06/19 10:00 # 답글

    앞으로 이메일은 암호로 보내야 겠군요.
    (아, 암호 왜 썼냐고 잡아가려나...)
  • deulpul 2009/06/20 06:09 #

    받는 사람이 모르면 좌절... 받는 사람(들)이 두루 알면 암호로서는 좌절...
  • 언럭키즈 2009/06/19 10:21 # 답글

    에... 노무현 비리 관련해서 발표할 때 저 사람들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으로부터 640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사건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종결하면서 참고인들의 사생활과 명예훼손을 우려해 구체적인 증거관계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 deulpul 2009/06/20 06:10 #

    바로 그 점부터가 기가 막힙니다.
  • 깊고푸른 2009/06/19 10:37 # 답글

    입으로 수사하는 관행..--;;
  • deulpul 2009/06/20 06:11 #

    고교 때 체육선생님이 하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입은 처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 댕글댕글파파 2009/06/19 11:33 # 삭제 답글

    정말 욕나옵니다.
  • deulpul 2009/06/20 06:11 #

    시 홍보지에 쓰지는 마십시오.
  • 스타라쿠 2009/06/19 11:35 # 답글

    있다 하면 있을 것이요. 없다 믿으면 없을 것이다. 증거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법!
  • deulpul 2009/06/20 06:14 #

    유죄 판결을 끌어내려면 판사하고 정을 통해야 하겠군요.
  •   2009/06/19 11:40 # 답글

    개그 개그 개그.
  • deulpul 2009/06/20 06:14 #

    웃고 앉았을 수만은 없고요.
  • 노르웨이의 숲 2009/06/19 12:18 # 답글

    털어서 먼지가 안나오면 먼지를 만들면 되지.

    식빵 승질 뻗쳐서 증말
  • deulpul 2009/06/20 06:15 #

    노르웨이의 숲님은 세뇌되신 거야... 세뇌.
  • 에톤 2009/06/19 13:07 # 답글

    진짜 제대로 미친듯.
  • deulpul 2009/06/20 06:16 #

    미친 개는 주인도 물거든요. 미친 건 아닌 것 같고, 나름 일관성이 있을지도.
  • 소리를찾는나그네 2009/06/19 13:15 # 답글

    지메일이나 핫메일을 써야 하난요;;
  • deulpul 2009/06/20 06:16 #

    이 점도 곧 짚어보겠습니다.
  • 명랑이 2009/06/19 17:59 # 답글

    애초에 목적이 PD수첩 제작자 처벌보다는 그걸 구실로 MBC경영권을 장악하는데 있으니까요.
  • deulpul 2009/06/20 06:42 #

    빌미 잡을 떡밥 물긴 물었는데, 떡밥인지 쥐약인지는 역시 의심스럽군요.
  • 궁극사악 2009/06/20 02:36 # 답글

    이거 참...삼권분립의 원칙은 안드로메다를 넘어 블랙홀로 들어갔나요...;;;
  • deulpul 2009/06/20 06:21 #

    검찰은 행정부에 속하므로 삼권분립으로는 따지기에는 어폐가 있습니다만, 검찰이 정치색을 배제해야 한다는 점에서의 권력 분립 원칙으로 봐도 참, 블랙홀이군요.
  • 궁극사악 2009/06/20 09:09 #

    검찰은 행정부였군요~=ㅁ= 바보 인증;;ㄷㄷㄷ
  • 바보원숭이 2009/06/20 21:34 # 답글

    참 검찰의 추락과 삽질은 어디까지 갈수 있을련지 궁금해집니다. 그려....
    나중에 뭐라고 양심고백들 할지 궁금하군요....
  • deulpul 2009/06/20 23:34 #

    이렇게 노골적으로 어거지를 부리는 것은 이미 한 쪽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죠. 양심 고백 따위는 없을 테고요, 저는 언제 한나라당으로 기어들 들어갈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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