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 두 장에서 떼어 온 이미지입니다. agr- 뒤에 각각 숫자가 씌어 있습니다. 무슨 수인지 판독하시겠어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일 중 하나입니다. 학기 초가 되면 학교 구내서점은 새 학기 교재를 사려는 학생으로 장사진이죠. 서점측은 각 학과의 교수들이 어떤 책을 수업 교재로 택했나를 미리 파악해서, 학기 시작 직전부터 구입할 수 있게 서가에 비치해 둡니다.
교재들은 대개 헌 책과 새 책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값이 싼 유즈드(used)를 사든지, 비싼 새삥이를 사든지 알아서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죠. 책값이 눈 튀어나올 정도로 비싼데다 한 학기만 쓰면 되기 때문에, 대개 헌 책이 먼저 나가고, 게으름뱅이들이 새 책을 사게 됩니다.
수업 교재 중 하나를 찾았는데, 이상한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겁니다.
New: $49.25
Used: $51.25
이렇게 되어 있네요. 헌 책이 새 책보다 2달러나 비쌌습니다. 헌 책이 비싸다니, 웬일일까. 새 책이 낙장 파본인가? 그럴 리는 없는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마침 다른 학생이 같은 책을 사러 왔습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헌 책을 집어드는 겁니다.
나: 야, 이거 좀 이상하지 않냐?
그: 뭐가?
나: 헌 책이 더 비싸잖아. 그런데 너 헌 책 가져가네?
그: 뭔소리야? 니가 더 이상해... 저리 가...
하면서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네... 하며 새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싸니까요.
계산대에서 값을 치르고 영수증을 보면서 이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영수증에는 새 책 값이 $69.25였고, 여기에 세금이 붙어서 나왔습니다. 판매대에 붙어 있던 가격표는 손으로 쓴 것이었는데, 6자를 4자로 잘못 본 것이죠.
제가 잘못 본 것이지만, 저는 쓴 놈이 잘못 쓴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숫자 6를 저렇게 쓰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즈그들끼리는 잘 알아먹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제가 잘못 본 게 맞습니다. 답안지 채점이라도 하면 정말 긴장해서 봐야 합니다.
흔히 숫자는 만국 공통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손글씨에 관한 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쓰는 방식처럼 쓰는 서양인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6는 4처럼, 4는 9처럼 씁니다. 만국 공통의 기호처럼 보이는 숫자도 문화와 관습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맨 위 그림의 왼쪽은 agr-36, 오른쪽은 agr-54입니다. 지금 쓰면서도 헷갈리는군요.




덧글
까날 2009/06/23 08:31 # 답글
저건 정말 못알아먹겠네요....deulpul 2009/06/23 11:42 #
사실 숫자는 그래도 양반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2009/06/23 08:5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09/06/23 11:44 #
그게, 의식을 하고 보려고 노력해도, 수십 년 쌓아온 공력이 있어서 볼 때마다 헷갈리게 됩니다.언럭키즈 2009/06/23 13:04 # 답글
54는 그럭저럭 알아보겠는데 36은 아무리 봐도 34네요;;deulpul 2009/06/23 14:13 #
6이 정말 쥐약입니다. 서양인들은 4를 흔히 '니' 처럼 씁니다. 그래서 저는 '니'면 4로, '4'면 6으로 보는 연습중...LaJune 2009/06/23 14:25 # 답글
쿠얽.... 글씨 쓰는 문화(?)습관의 차이도 있었군요. =ㅁ=;;;deulpul 2009/06/23 14:41 #
고등학교 때, 칠판에 판서를 할 때 ㅂ 받침을 특이하게 쓰시던 화학 선생님이 계셨는데, 많은 친구가 얼마 뒤 그렇게 쓰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