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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양아치님의 글 중 첫 번째 '한 줄 요약' 이 제가 생각하는 바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팩트주의는 자기의 의견과 주장을 사실, 즉 실제로 일어난 일로서 뒷받침한다는 말입니다. 개인적 주장에 근거를 둠으로써 객관화하여 설득력을 얻으려는 방법입니다. 이런 시도는 이 글을 포함하여, 남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대개의 글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팩트원리주의란 이런 정도가 심한 것, 다시 말해 글의 모든 주장을 실제로 일어난 일로 뒷받침하려 한다든가(폭), 한 주장을 실제로 일어난 다양한 일로 최대한 뒷받침하려 한다든가(깊이) 하는 뜻으로 쓰이는 듯 합니다. 그러나 글이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 즉 팩트의 조합을 통한 객관화의 모양을 취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글자 그대로 객관적인 주장, 더 나아가 객관적인 팩트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많은 경우 (저는 거의 모든 경우라고 생각합니다만) 팩트는 주장에 종속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왜곡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아주 원론적이지만, 인간의 지각이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팩트들을 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네 가지 필터를 거쳐 자기 것으로 합니다. 선택적 노출, 선택적 주목, 선택적 지각, 선택적 기억 등이 그 필터입니다. 만일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하여, 베트남 민중의 희생과 관련한 다큐멘터리와 미국 병사의 개인적 비극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동시에 방송한다면, 전자를 보고 앉은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선택적 노출). 만일 한 다큐멘터리에 두 가지 내용을 모두 포함시켰다 해도 참전 용사들은 미국 병사 이야기가 나올 때 더 귀를 곤두세우고 집중하게 마련입니다(선택적 주목). 만일 두 가지 메시지를 똑같은 집중도로 들었다 하더라도, 참전 용사의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정보 처리 과정은, 베트남 부분을 대충대충 넘기고 미국 병사 부분을 좀더 자세하고 체계있게 인식하도록 합니다(선택적 지각). 그 결과, 혹은 이에 더하여, 시간이 지난 뒤 이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에게 영화 내용을 다시 말하도록 시키면, 주로 참전 용사 이야기만 기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선택적 기억). 이런 네 선택 필터를 거친 결과, 실제로 일어난 사건(팩트)들을 남에게 전달할 때,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팩트는 통째로, 혹은 부분적으로 누락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 과정은 모두 의도적으로 왜곡하려는 의도가 없을 때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인지 현상입니다. 그런 의도가 있을 때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죠. 신문 사설은 신문사의 의견과 주장을 담은 글입니다. 이 사설들은 모두 팩트에 근거하고 있는 모양을 취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취재해 온 것이 사설에 담긴 의견과 주장의 배경이자 재료가 되는 팩트들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신문 사설이 모두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설이란 흔히 신문사가 말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을 뒷받침하는 팩트만 골라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한겨레와 하리잔이 꼭 같은 사건을 놓고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모두 팩트에 근거해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사건과 관련한 팩트의 집합 중에서 취사선택하고 중점을 두는 내용이 다릅니다. 사실만 늘어놓은 글은 드뭅니다. 그건 연대기요 보고서지, 의견과 주장을 담은 일반적인 글이 아니죠. 의견과 주장을 위주로 하는 글은 어느 것이나 당연히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들어 있고, 팩트들은 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뒷받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선별적으로 사용됩니다. 제 글을 포함해 어떠한 글도 그렇습니다. 이 점만 기억하면 팩트 내용의 진위 여부를 놓고 다툴지언정, 팩트 사용 자체를 갖고 싸울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팩트주의, 팩트원리주의는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팩트, 자기 주장의 근거를 허무는 팩트까지 중요하게 여기고 함께 제시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는 드물죠. 왜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팩트원리주의라는 말이 실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팩트원리주의자란 국회에서 양당 모두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며 회의록을 작성하는 속기사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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