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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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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합니다.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 지극히 합법적이고 정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 일을 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군요. 당신보다 훨씬 더 힘 있고 돈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벌이는 당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시켜 당신의 생활을 추적하고 캐기 시작하는군요. 어느 날 당신은 누군가가 계속 당신의 뒤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걸어가도 쫓아오고 차를 타도 쫓아 와요. 여자(남자)친구 집에 가면 그 앞에 미리 와서 잠복하고 있습니다. 큰 불안감에 시달리던 당신은 미행하는 사람을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다행히 경찰은 미행자를 붙잡았으며, 자백까지 받았네요. 당신이 하는 일을 싫어하는 힘 있는 사람이 미행을 시켰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아니, 그런데 그 이후에도 미행은 계속되는 거에요. 그 이유 중 하나는 "미행에 대한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제대로 처벌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군요. 경찰이 한 말입니다. 처벌을 해봤자 즉심에 과태료 정도라는 거죠. 그래서 당신은 미행한 사람을 직접 고소하기로 했습니다. 고소를 하려면 대상자를 특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 경우는 대상자가 없으면 범죄 혐의를 제시하기 어려우므로, 미행한 사람의 신원이 필요하겠지요. 미행한 사람의 신원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찰에 붙잡힌 사람의 기록을 얻는 것일 테고요. 당신이 이 사람들을 고소하기 위해 신원을 물었더니, 경찰은 피의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공개가 어렵다고 하네요. 당신의 사생활을 미행하고 감시하는 사람을 처벌하려는데, 그 미행하고 감시하는 사람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는 꼴이군요. 이 일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CJ그룹의 한 직원이 노조에 가입한 뒤 겪고 있는 일이죠. 최근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말 중에 '사생활 보호'처럼 멋들어진 말도 드물 듯 합니다. 정말 멋있지 않습니까? 뭔가 인권적이고 뭔가 민주적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지조때로 쓰인다는 게 좀 문제군요. 정상인들은 이 말에 대해 대개 상식적인 개념을 공유하는데, 유독 정부나 공직자들은 이 말을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씁니다. 특히, 공정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수사기관들이 이 말을 제 편한대로 갖다 붙이는 꼬라지에요. 범법자들을 보호하는 구실이 되는 거죠. 어떤 지경인가 볼까요?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입니다. 이른바 스폰서를 달고 의문의 금전 거래를 하며 갖가지 특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죠. 물론 스폰서는 천씨가 핸섬해서 그렇게 해 줬을 리는 없습니다. 천씨는 자연인으로서가 아니라, 권력 기관에 근무하는 공직자이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이죠. 정상적인 사회라면 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추문이 될 터이며, 수사기관, 특히 검찰은 제 스스로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당사자 머리털 끝까지 조사해서 기강을 바로 세우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검찰은 천씨의 개인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며 변기의 뚜껑을 덮었습니다. 뚜껑을 열다가는 검찰 옷 벗고 변호사 개업하는 사람 수가 급증할까봐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천씨의 비리 의혹을 드러낸 데 관련한 것으로 알려진 관세청 직원을 적발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검찰이 한 말은 이렇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기관에서 관리하고 있는 소중한 사생활 정보가 불법적으로 유출됐다는 제보가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명백한 불법행위로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검찰은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정말 눈물 나도록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군요. 마음이 든든합니다. 검찰의 투철한 사생활 보호 의식 사례를 하나 더 볼까요?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검찰은 용산 참사 수사 기록의 3분의 1을 감춰놓고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담당 판사가 내놓으라고 해도 깔아뭉개고 응하지 않습니다. 수사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수사 대상자(경찰)의 사생활 보호라고 합니다: 권(영국) 변호인은 "1만쪽 이상의 수사 기록 중 변호인 측이 받은 것은 7000쪽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밝히고 "3000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국가 안전과 증인 사생활 보호 등 추상적인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많은 사람이 이 수사 기록에 과잉 진압의 실체가 담겨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천동지할 참극의 진상을 밝힐 절대적인 자료입니다. 그러나 경찰관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 수사 기록을 꼭꼭 감춰주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직합니다. 다행히도, 이렇게 개인 정보 보호 의식이 뛰어난 기관은 검찰뿐이 아닙니다. 정부 기관들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작년에 국민들이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얼마나 걱정이 많았습니까. 어떻게든 수입을 하고 어떻게든 국민 비판의 된서리를 피하려던 정부는 몇 가지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원산지 표시를 잘 지키는지 특별 단속반을 구성해서 꾸준히 단속하겠다는 것이었죠. 지금은? 전국 식당 57만 여 개를 657명이 단속합니다. 웃자고 하는 말이겠죠. (그런데 이 뉴스는 왜 삭제되었을까요?) 그래서, 손이 달려서 단속을 제대로 못한다면, 적발된 곳에 대해 일벌백계라도 제대로 해야 영(令)이 서지 않겠습니까? 원산지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허위로 한 업체가 962곳 적발됐습니다. 정부가 한 약속은 개그라고 치고, 단속은 제대로 못 하더라도, 이런 업체가 어딘지 공개되면 소비자가 외면할 것이고, 따라서 원산지 표시제를 강제하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해당 업체의 명단을 요구하자,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를 거부하며, 다시 개인의 소중한 사생활을 꺼내 들었습니다: 민변의 거듭된 공개 요구에 농림수산식품부는 "개인 사생활의 비밀이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업소 공개를 최종 거부했다. 민변은 이날 소장에서 "쇠고기 원산지 허위 표시는 개인 사생활에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보공개법에서도 공익을 위하여 필요한 정보는 공개 대상으로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며 이런 농림수산식품부의 입장을 반박했다.아, 정말 존경스러운 사생활 보호 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든가, 가진 놈들이 더 한다는 말 듣는 사람들이 있죠. 한두 놈들이겠습니까만, 예컨대 불볕 아래서 허리 못 펴고 들일 하는 농민을 위해 만들어 놓은 쌀 직불금을, 시원한 냉방에서 고기 먹고 이 쑤시는 데 쓰기 위해 불법으로 타 먹은 인간들이 그런 사람들입죠. 대체 어떤 상판때기인지도 궁금하지만, 우선 범법자들 아닙니까. 그러나 그런 소중한 개인 정보를 내줄 수는 없죠. 하늘처럼 지켜야 하는 겁니다: 정형근 건보공단 이사장은 제출 거부의 근거로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개인 정보보호를 내세우고 있으나 견강부회이다. 오히려 건보공단의 자료제출거부가 국회 국정조사특위활동을 방해하는 위법한 행위이다.정부만 이렇게 선진적인 인권 의식을 갖고 있다면 반쪼가리 나라라 할 수 있죠. 안심해도 됩니다. 정부와 별로 다를 것도 없는 국회 사무처도 마찬가지로 국민의 사생활 보호에 열심이니 말입니다: 민주당은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때) 대리투표 의혹을 제기하며 입증을 위해 당시 본회의장 내외부의 CCTV 화면 제출을 요구했지만 국회 사무처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개인의 신상정보가 담겨 있어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상 수사기관 등의 의뢰 없인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아아,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투철한 인권 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이 하는 표결 행위를 담은 화면에, 공개해서는 안 되는 신상 정보가 담겨 있다니, 그 악다구니를 틈타 누가 자넷 리 사진 보며 슴가 만지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감동의 쓰나미에 묻혀 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정부와 국회가 의기투합하여, 국민의 소중한 사생활 보호를 위해 진 자리 마른 자리를 가리지 않고 개고생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그러면 PD수첩 작가의 사생활은 사생활이 아니라 공생활인가요? 죄인도 아니면서 개인 정보를 등록해야 하고 수사기관이 언제든 빼 먹을 수 있는 네티즌의 개인 신상은 공공 신상인가요? 주경복을 아는 사람 100여 명의 이메일은 공문서인가요? 난데없이 날아오는 소환장은 내가 공인이라서인가요? 그것 참 이상하군요. 국민의 소중한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개고생하는 정부가, 왜 일부 국민의 사생활만 소중하게 지켜주고 다른 국민의 사생활은 휴지 조각에 코 풀듯이 하는 걸까요. 아무래도, 정부가 말하는 국민이란 우리와는 종류가 다른 인간들을 의미하는 모양이네요. 법을 어겼더라도 사생활을 보장해줘야 할 국민 따로 있고, 잘못이 없는데도 사생활을 마구 파헤쳐도 되는 국민이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정부 기관 입에서 나오는 사생활 보호란 말, 아무리 봐도 쥐에 걸면 쥐걸이, 개에 걸면 개걸이 같은 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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