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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로렐이 직장을 옮겼다. 지난 금요일은 그녀가 사무실에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자리를 돌며 동료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했다. 나는 최근에 결혼을 하고 직장까지 옮기게 된 그녀의 미래를 축복하고, 그녀는 나의 공부에 행운을 빌어 주었다.
가장 편한 사람이 가장 먼저 떠나는 것은 인생의 의문 중 하나다. 보편적인 일은 아닐지 모른다. 내가 그저 운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1년 전. 출근을 한 지 이틀째나 되었을까. 웬 6척 거구의 여성이 자리로 다가왔다. "어제 너 사무실 돌며 인사할 때 봤겠지만, 나 로렐이야." "어, 그래... 또 반갑네." "같이 일하게 되어서 반갑다. 나 질문이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되지?" "물론이지." "이거 내 목걸이인데, 여기 중국말이 써 있거든. 옛날에 뜻을 들었는데, 잊어 버렸어. 너 혹시 중국 글자 알아?" "어디 봐, 무슨 글자인지." 그녀가 옷 밖으로 꺼내 앞으로 내민 목걸이 펜던트에는 흔하디 흔한 중국 글자, 복 복(福)자가 새겨져 있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흔하지만, 그녀에게는 낯설고 신기한 글자였을 것이다. 뜻을 알려 주고, 보일 시(示),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으로 해자(解字)까지 하여 그 뜻이 담기게 된 의미를 엉터리일망정 설명해 주었다. 그녀가 이 한자의 뜻을 정말로 모르거나 잊어버려서 내게 말을 걸었는지, 아니면 그저 인사를 나누기 위한 핑계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를 계기로 하여, 로렐은 사무실에서 가장 친한 사람이 되었다. 친하다고 해 봐야, 언제나 반갑게 인사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씩 하는 정도지만, 나 같은 이방인에게는 그런 사람이라도 큰 위안이 되는 것이다. "참, 너 전공이 뭐랬지?" "나, 뭐뭐뭐뭐야." "어, 그래? 나도 그거 공부했는데?" 알고 보니, 로렐은 내가 있는 학과에서 석사를 마친, 말하자면 동문이었다. 이게 더 친한 사이를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르지만, 학과가 같지 않았더라도, 먼저 다가와 인사하던 그녀의 친절함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 * -- * -- 언젠가 학회에 갔을 때 일이다. 행사가 있어서 참가하게 됐는데, 호텔에서 열리는 행사가 가끔 그렇듯, 원형 테이블에 참가자들의 이름이 미리 적혀 자리가 지정된 행사였다. 앉고 보니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한국 같으면 교수 따로, 학생 따로 자리를 만들어 놨을텐데, 같은 테이블 예닐곱 명은 학회 디비전장(長)을 하는 교수에서부터 학생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우리는 원래 이런 분위기가 좀 불편하지 않은가. 좀 머쓱해서 눈만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앉은 학생이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다. 나 게인스빌에서 온 스테파니야." "어, 반갑다. 나는 OOO에서 왔어." "야- 멀리서 왔네. 거기 추워서 어떻게 사냐?"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사실은 본인도 좀 어색하거나 심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먼저 말을 걸지 못했던가. 그 날 내내,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왜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던가. 내가 왜 먼저 인사를 건네지 못했던가. 이런 반성이나 각성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낯선 자리라도 즐겁게 먼저 인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먼저 다가가기는 여전히 어렵다. 이 곳 사람들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짜내야 한다. -- * -- * -- 한국에 가면 미친 놈이 된다. 거리나 지하철에서 눈이 마주치면 무의식적으로 씩 웃거나 가볍게 고개를 까딱 하는데, 거의 모두가 눈길을 피하고 외면한다. 속으로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뭐야, 미친 놈."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라도 하면 더 희한한 상황이 발생한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데, "내가 너 알아?" 하고 묻는 표정이다. 그래서, 미친 놈이 되지 않기 위해, 한국에 간 지 사나흘이면 나는 무뚝뚝하고 뚱한 한국 사람으로 급속히 되돌아 간다, 되돌아 가야 한다. 이것은 문화의 차이이고 관습의 차이이므로, 잘잘못을 말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는 게 힘들고 외로운 사람끼리 가볍게 서로 위안하며 사는 게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여전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경험을 보면 그렇다. 한국의 무슨 마트에서였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 카트를 밀고 다니다가, 한 모퉁이에서 비슷한 일행과 마주쳤다. 이런 경우, 보통은 외면하며 지나치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 중 한 분이 스쳐 지나가며 "안녕하세요!" 했던 것이다. 잘못 들은 겐가? 헛소리를 들은 겐가? 혹시나 아는 사람인가 싶어(나도 마찬가지인 게다, 결국) 고개를 돌려 자세히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내 주변엔 다른 사람도 없었으니, 제3자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폼새가, 그냥 마주친 사람에게 인사한 게 틀림없다. 그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며 들릴듯 말듯, 아무런 무게 없이 받은 한 마디 때문에 하루가 즐거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그 동안 내가 좀 운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 -- * -- 인사란 인간(人間), 사람 사이에 치는 기름칠과 같은 것이다. 콩이 튼실해야 차진 기름을 짤 수 있듯,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인사란 게 나올 수 있는지도 모른다. 무뚝뚝한 한국인을 말하기 앞서, 피곤하고 강퍅한 한국인의 삶을 먼저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혹은 어릴 때부터 친절한 낯선 사람은 무조건 경계하고 피해야 하도록 교육 받은 탓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할 때부터 주입되어 각인된 이러한 고정관념은, 별로 유괴될 가능성이 없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작은 한 마디, 작은 기름칠이 우리 삶을 얼마나 편하고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가. 이왕 사는 거, 좀 즐겁고 행복하게 산다고 해서 누가 뭐랄 수는 없지 않은가. 흔히 하는 말대로, 인사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낯선 사람에게 말 걸고 인사하는 연습을 좀더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일상에서, 어색한 자리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요. 먼저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이 되어 주세요. 거꾸로, 누가 내게 손을 내민다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는지를 짐작하고 반갑게 맞아 주세요. 아, 그리고 이거 무슨 작업 들어가자거나 당신에게 관심 있다거나 하는 거 아니거든요. 그냥 가벼운 인사고 가벼운 스몰 톡이에요. 부담없고 편하게 받아 주세요. 수십 억 중에 우연히 만나, 수만 년의 시간 중에 마침 바로 그 때, 이 넓은 지구 땅덩이 중에서 바로 그 곳에서 마주치게 된 거, 보통 인연이 아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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