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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은 말한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 (Shared joy is a double joy; shared sorrow is half a sorrow.) 흔한 말이지만, 가만히 읽어 보면 새삼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누군가가 있어, 내가 웃을 때 함께 웃어주고 내가 울 때 함께 울어준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쉬워질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 속담이 성립되려면,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은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속담으로 표현된 이 지혜는 개인이 공동체 - 정서 공동체라고나 이름 붙일 수 있는 - 관계를 갖추고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나의 정서 공동체가 내 주변에 존재하여, 설령 내 기쁨을 나누어 두 배가 되지는 않더라도, 내 슬픔을 나누어 절반, 절반의 절반, 절반의 절반의 절반으로 쪼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정서 공동체의 따뜻한 위로가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슬픔은 결국 홀로 싸워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내 몸의 무게를 누구에게 떠넘길 수 없는 것과 같다. 기쁨과 슬픔은 서로 짝이 되는 두 정서지만, 그 성격은 천양지차다. 기쁨이 외부 지향성을 갖고 있다며, 슬픔은 내부 지향적이다. 외향성 정서인 기쁨은 자꾸 밖으로 달려 나가려 하지만, 내향성 정서인 슬픔은 내 안으로만 파고 든다. 슬픔이란 슬픔을 느끼는 사람에게만 거머리처럼 달라 붙어 가슴 안으로, 심장 안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옆에서 나누고 싶어해도 사실은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기쁨과는 달리 슬픔은 빨리 극복해야 하는 종류의 정서다. 비장(悲壯)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아닌 한, 누구나 슬픔이란 빨리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슬픔을 억제하는 사회적 훈련까지 받고 있지 않나. 나와 친밀한 정서적 공동체의 여부를 넘어, 그저 세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면, 기쁠 때는 몰라도 슬프고 힘들 때는 대개 혼자다. 많은 경우 슬픔은 혼자 씨름하며 극복해야 하는데, 나의 정서 공동체들은 내가 가장 외로울 때 내 곁에 없게 마련이다. 그래서, 슬픔이라는 짐은 잘 나눠지지 않고, 결국 혼자 져야 한다. 말은 야박하지만, 현실은 대개 이렇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Laugh, and the world laughs with you; weep, and you weep alone.) ![]()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영화 <올드보이> 때문일 것이다. 말 많은 오대수가 15년 동안 갇혀 있었던 방에 걸려 있는 그림(위)에 씌어 있는 문구다. 그림은 초상화인데, 울고 있는 것인지 웃고 있는 것인지 혹은 둘 다인지가 불명확하게 묘사된 그로테스크한 그림이다. 이 그림 아래에 문제의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림하고도 잘 어울리고, 영화하고도 잘 어울리고, 세상살이하고도 잘 어울리는 말이다. 이런 멋진 성찰을 해 낸 이는 누굴까. 미국의 여류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Ella Wheeler Wilcox)다. 이 문구는 그녀의 짤막한 시 '고독(Solitude)'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1883년 2월 초의 어느 날이었다. 문학적이라기보다 대중적인 시를 써서 일찌감치 유명해졌던 윌콕스는, 미국 위스콘신 주의 주도(州都) 매디슨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새 주지사 취임을 기념해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기차는 눈 쌓인 들판 위를 천천히 달렸고, 기차 안에서 윌콕스는 잠시 후 벌어질 성대하고도 찬란한 무도회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상상은 작은 흐느낌 소리 때문에 곧 깨지고 말았다. 건너편 좌석에 한 젊은 여인이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내내 울고 있는 것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누군가의 장례식에 가거나 다녀오는 길임이 틀림없었다. 윌콕스는 울고 있는 여인 옆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여인을 가만히 위로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마 손이나 꼬옥 잡아주는 정도였을 것이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윌콕스는 여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창 감수성 예민했을 젊은 시인 윌콕스를 슬픔에 감염시키는 데는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슬퍼하던 여인으로부터 전이된 슬픔 때문에, 기차에서 내릴 즈음 윌콕스는 탈진할 지경이 되었다. 이런 슬픈 마음으로 화려한 무도회에 나가 춤을 춘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어쨌든 가야 하는 행사였다. 연회장에 나가기 앞서 윌콕스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이제 곧 시작될 연회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가볍게 흥분된, 화사한 여인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윌콕스는 바로 얼마 전까지 자신을 휘감았던 슬픔을 떠올렸다. 몸을 가누기도 어렵게 만들던 슬픔은, 무도회장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화려한 소음에 휩싸여 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슬픔은 어느 새 까맣게 잊혀졌다. 물론 검은 옷의 그 여인은 이러한 세상과는 동떨어진 채, 어딘가에서 여전히 슬프게 울고 있을 것이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시 '고독'의 시상이 떠오른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 고독 기쁠 때는 세상이 모두 내 편이 되지만, 슬플 때는 철저히 혼자 남게 된다는 통찰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세상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고, 믿었던 사람들도 내가 가장 필요할 때 나를 떠나는 경험을 누구나 하지 않는가. 울 때는 혼자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쎄, 이런 고통이 보편적이라는 게 조금 위안이 될지 모른다. 혼자 우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닌 것이다. 윌콕스는 슬픈 여인을 만난 데서 얻은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이 시를 써서 <뉴욕 선>에 보냈다. 시 '고독'은 이 신문 1883년 2월25일자에 게재되었다. 시인은 원고료로 5달러를 받았다. 이 시는 나중에 그녀의 시집 <열정의 시들(Poems of Passion)>에 수록되었다. ![]() 2년 뒤인 1885년, 윌콕스와 같은 시대에 활동하던 작가 존 A. 조이스가 펴낸 회고록에 자작시 한 편이 실렸다. 제목은 'Laugh and the World Laughs with You' 였다. 윌콕스가 쓴 시의 문구가 제목으로 쓰였다. 제목뿐 아니라 시 전체가 윌콕스의 시를 표절한 것이었다. 윌콕스는 즉각 항의하며, 만일 이 시가 조이스의 자작임을 증명한다면 당시로서는 거액인 5천 달러를 내겠다고 주장했다. 시의 원작자가 윌콕스였음은 누구나 인정했지만, 조이스는 자신의 작품이라는 주장을 늙어 죽을 때까지 굽히지 않았다. 심지어 죽고 나서도,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를 자기 묘비에 새겼을 정도다. 남의 것이긴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시 '고독'과 저 유명한 문구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하나 더 있다. 1850년에 위스콘신의 농가에서 태어난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는 스물여덟에 로버트 윌콕스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아들을 낳았으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졌다. 엘라와 로버트 부부는 접신학(接神學, Theosophy)이나 영적인 세계에 대한 탐구에 빠졌던 듯 하다. 두 사람은, 둘 중 누가 먼저 죽으면 반드시 살아 남은 사람을 찾아오기로 굳게 약속했다고 한다. 1916년에 로버트가 세상을 떴다. 엘라 윌콕스는 남편의 영혼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남편이 운명한 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윌콕스는 큰 슬픔에 빠졌다. 그녀는 기독교 신비주의자이자 점성가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막스 하인델을 찾아갔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내가 지나치게 슬퍼하고 있는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슬픔을 통제할 수 있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남편의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전능하신 신께서 왜 내가 가장 슬퍼하고 그리워할 때 그를 내게 보내시지 않는지 의아스럽다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맑은 호수에 나무와 하늘의 영상이 비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거기에 돌을 던져 파문이 생기면 그 영상이 제대로 비쳐지겠나요. 하늘과 나무는 물결이 가라앉기를 조용히 기다릴테죠. 마찬가지로, 당신 남편의 영혼도 당신에게서 슬픔의 파문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얼마 전에 세상을 뜬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한 영화 <사랑과 영혼>을 연상시킨다. 30년 동반자였던 남편이 사망한 뒤, 그가 영혼으로나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슬퍼할 때, 윌콕스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홀로였을 것이다. 그 깊은 슬픔은 그녀 혼자서만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그 옛날, 기차에서 우연히 마주친 젊은 여인 이야기는 이제 시인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던 것이다. 어디 두 사람만의 이야기인가. 세상이여,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엘라 휠러 윌콕스는 남편을 잃은 지 3년 만인 1919년에 세상을 떴다. ※ <올드보이> 초상화: 인터넷 이미지 검색, 윌콕스 사진과 시집 표지: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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