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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청년회 회원들은 청년회장의 말을 믿지 않았다. 신씨가 나이가 좀 들어 마을 원로축에 들기로서니, 아직 정신 놓을 때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길래, 몇 번이나 다짐을 해도 눈까지 부릅뜨며 사실이라고 우기는 청년회장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노인회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신씨가 마을에서 구설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서너 달 전부터다. 노인네들이 모여서 점당 십원짜리 고스톱이나 치는 경로당 안에서야, 지지든 볶든 뭔 말이 나와도 그 안에서 끝나고 말 일이었다. 문제는 어느 날 저녁에, 청년회 회원 대여섯이 술추렴을 하고 있던 팽나무 앞 대청간에 신씨가 개기름이 끼어 반질반질한 얼굴을 들고 나타나면서부터였다. "뭐들 자시는겨?" 젊은 것들 노는 데 늙은 것이 끼어들면 술맛 떨어지기 십상이다. 젊은 것이라 해도 대개 줄잡아서 쉰 안팎이지만, 진짜 젊은 것들이 없는 마을에서는 쉰도 청년이었다. 늙은 청년 하나가 엉거주춤 일어서는 시늉을 하며 내키지 않는 투로 인사를 건넸다. "나오셨슈." "지내던 길에 여게들 함께 있다구 혀서 왔구먼." "무슨 허실 말씀이라두 있으신가유?" 반기거나 말거나 대청간에 엉덩이를 붙여 낑겨 앉은 신씨는, 올해부터 청년회원 중 몇몇이 시작한 유기농 이야기를 갑자기 들이대며 지청구를 시작했다. 소출이 영 안 나와서 마을 생산량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병충해가 옆논밭으로 번져 민폐라는 말이었다. 유기농 이야기는 이미 마을에서 일단락이 난 이야기였다. 이런저런 논란 끝에, 취지는 좋으므로 일단 한 해 농사를 지어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결론이 났던 것이다. 그 뒤로는 유기농을 하든가 말든가는 전적으로 농사 짓는 당사자의 결정에 맡겨져 있었다. 그런데 신씨는 갑자기 뻔한 이야기로 일장 연설을 늘어놓더니, 유기농 하는 놈들은 마을 농사를 파작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므로 마을에서 힘을 합쳐 주리를 틀어야 한다고 울근불근했던 것이다. 나중에 회원들로부터 이 말을 들은 청년회 회원들은 크게 화를 냈다. "아니, 다 합의혀서 끝난 일을 갖구서 난디없이 왜 퉁구러지고 그런대, 참말루." "그러게. 다 알아서 헐 것인디 뭣땀시 논네가 또 나스는겨, 나스길." "멘장(면장)인가가 은제 한 마디 했다드만그려. 유기농이 시기상조래나 뭐래나." "아 신씨가 멘장 대변인이여 뭐여. 왜 다 합의된 일을 두구 콩놔라 팥놔라헌대 허길. 그런 벱이 워딨대?" "씨가 농사 져 주는 것두 아니구 참말로 어이없는 일 아닌감. 안 그려?" 말이 이렇게 번지더니, 이대로 놔 두면 앞으로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질 게 틀림없으므로, 차제에 단단히 아퀴를 짓자는 식으로 일이 커졌다. 총대는 청년회장과 이장이 메기로 했다. 들리는 바로는, 신씨도 마을 분위기가 생각 밖으로 흘러가는 걸 알고 뜨끔해서, 웬만하면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청년회에서는 신씨와 경노당을 찾아가 한판 제대로 대거리를 벌일 계획을 짜고 있었다. 다른 일이 없었다면, 애먼 데 나서서 면장 편을 들은 신씨는 고초깨나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있고나서 얼마 안 있다가, 마을에 중대사가 연이어 벌어졌다. 대추나무 최씨네 집에 갑자기 불이 나서 위아래간이 홀랑 다 타 버렸는가 하면, 며칠도 지나지 않아 동리 입구 새마을 공장에서 싸움박질이 벌어져서 읍내 경찰들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었다. 또 곧이어 뒤늦은 장마비가 며칠 동안 억수로 쏟아져서, 청년회 회원들은 신씨에게 따지는 일보다는 논배미 물꼬 트는 일이 더 급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청년회장이 신씨 소식을 갖고 나타난 것이다. 벌건 대낮에 읍내 면사무소 정문 옆 그늘에서 신씨가 똥을 싸고 있더라는 것이다. "아니 워치키 사람이 그리 빤한 데서 똥을 싸고 자빠진다는겨, 자빠지길?" "워낙에 급해서 그랬것지. 설마하믄 누가 보랴 허잖았것어?" "급해두 헐 일이 있구 아닌 일이 있는 벱인겨. 그래두 멩색이 마을 어른 꼴을 해갖구 그거이 할 짓이여, 어디." "근디 급해서 싸부린 건 싸부렀다 치구, 퍼질러 앉은 건 워쩐 일이여?" 청년회장 말에 따르면, 신씨는 똥을 싸다가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그냥 털썩 주저앉아버렸다는 것이다. "똥 싸지르구 나서 뭉개구 나자빠지믄 되는겨? 그럼 그게 감춰진다는겨 뭐여. 사람들이 쑥멕이여?" "자빠져 있음서 사람들 지나가기를 기다리자는 심산이었것지." "아니 그럼 똥은 워치키 허며 냄새는 워치키 허구?" "글게 똥 위에 퍼질러 앉어서 밤을 새것다 이거여? 사람 눈 무서우면 얼릉 추스리구 뒷감당 허는 기 헐 일이지." "똥 싸놓구 뒹굴어봐야 똥베끼 더 묻것남." "암만, 두말 허믄 잔소리구 시말 허믄 헛소리지." 다음 날, 읍내에 다녀 온 다른 회원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씨는 아직도 면사무소 옆 그늘, 자신이 싸 놓은 똥 위에 펄썩 주저앉아서 지나는 사람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악취가 주변 거리에 가득 찼더라고 했다. 똥 위에 주저앉은 신씨는 사람들이 여럿 지나가면 움찔하다가, 왕래가 뜸하면 안심하는 낯색을 하기를 반복하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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