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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런 점에서 '아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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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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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의 구석구석에서 나오는 낯섬과 두려움과 설레임과 고통의 세밀한 느낌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느낌들은 아주 예민해져 있고 그 느낌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뇌도 예민해진다 모든 지각이 발로 향한다 나는 없고 발만 살아서 천천히 걷는다 콘크리트 포도(鋪道)는 변해 왔다 민들레 피고 지고 그 씨앗이 솜털처럼 흩날리다가 이윽고 가로수 그늘이 따가운 길을 식혔다 공기 속에서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꽃사과 열매가 구르는가 싶더니 이제 성급한 도토리들이 밟히기 시작한다 예민한 발 아래로 계절이 밟힌다 집을 나서서 숨을 크게 들여마시고 이십 분을 걸으면 반환점이다 반환점에는 우체통이 서 있다 아주 외로운 우체통이다 종일토록 편지 하나 제대로 먹을까 내 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그는 한참 거기에 서 있다 우체통이 반환점이 된 것은 오로지 우연이지만 외로움을 공명한 필연 탓인지도 모른다 외로운 우체통을 향해 외로운 내 발이 천천히 다가간다 아주 천천히 걷는데도 생각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 의식과 무의식을 구성하는 모든 신경이 발에 내려가 있기 때문이다 잠깐씩 떠오르는 생각의 고리들은 발의 구석구석에 곧 잡아먹힌다 노래라도 부르고 싶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노래는 풀벌레들이 대신 불러준다 노래를 부르다가 발이 다가가면 뚝 그치고 경의를 표해 준다 누가 나에게 이렇게 절도 있는 예의를 갖추어 준 적이 있던가 발은 고마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함께 든다 다른 계절에도 풀벌레들이 이렇게 낭랑히 노래했었던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늘의 별이 언제나 그렇게 있어 왔듯 땅의 생명들도 언제나 그렇게 노래를 불러 왔을 것이다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너무 흔하고 당연한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마치 그동안 내게 걸음걸이가 너무 흔해서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제 다른 계절에 서서 이 땅 위에 풀벌레들이 있어 노래했던가를 묻는다면 분명히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반환점 우체통에게 다가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사람의 체취를 맡기 어렵다 밤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일찍 자는 사람들은 늦은 저녁에서 밤에 이르는 시간에 별들이 비록 도시에서 보는 것이라고 해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모른다 하지만 늦게 자는 사람들은 먼동이 터 올 때 나무가 꼭대기부터 아름답게 물드는 것을 모르므로 공평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심한 사람이라면 길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힘을 가늠하여 둘로 쪼갠 뒤 그 절반은 비축해 두어야 한다 좀더 세심한 사람이라면 만일을 위하여 육할 정도를 비축해 둘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든 가는 길보다 오는 길이 멀다 대개는 몸이 힘들기보다 마음이 힘든 탓일 것이다 몸은 오히려 절반의 노고에 고무되어 잘 달아오르게 마련이니까 인생의 중간이 어디인지 반환점이 어디인지 어디서부터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알면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을 듯 싶다 삶이 이제부터 돌아오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대개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힘들어질 것이다 인생은 종착지까지 반환점 없이 계속 가는 것이다 비록 트랙을 계속 돌고 있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나가고 있다고 믿고 사는 것이다 바람이 파랗도록 서늘해서 고맙다 언젠가 이 서늘한 바람을 폐에 꼭꼭 채워 넣던 때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마치 지금 내가 혼탁한 공기를 폐에 채워 넣던 날들을 그리워하듯이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가 드는 것은 좀 잔인하긴 해도 퍽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힘들었던 과거라도 대개 풋풋하고 아름다웠던 때로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이 꾸준히 쇠락하여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이 내 남은 삶에서 가장 젊고 싱싱한 날이다 어쨌든 시간은 지나가고 시간과 더불어 모두 지나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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