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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떡지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한국놈이 아니라 중국놈인 줄 알았는지, 언제부터인가 뜬금없이 중국 관련 영문 시사 월간지 <뉴스 차이나(News China)>가 들어온다. <타임>이나 <뉴스위크>, <시사IN> 판형으로 74쪽인데, 본문 중 광고는 거의 없다. 중국에서 발행되지만, 과거 <인민일보> 삘이 나는 게 아니라, 편집과 레이아웃이 매우 세련된 잡지다.
닥치고 넣어 주니까 닥치고 훑어보긴 하는데, 월마다 몇 꼭지씩 눈이 확 뜨이는 기사들이 있다. 말하자면, 주간-월간 저널리즘에서만 볼 수 있는 심층 훑기라든지 사진을 팍팍 써서 눈길을 끄는 기사들이 그렇다. 이번 달 표지 기사는 '천안문의 추억'이다. 중국 정치와 사회, 개인의 삶에서 천안문 광장이 어떤 의미였던가를 역사적으로 풀어본 기사다. 그 중 두 페이지에 걸쳐 아래와 같은 사진이 실렸다. 중국 인민들이 오래 전에 천안문 앞에서 찍은 사진과, 그 자리 그 구도 그대로 현재 다시 찍은 사진을 함께 올려 놓아(juxtapose), 세월과 인생과 정치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 이 사진의 주인공은 1972년에 내몽고에서 태어난 처자다. 그녀의 아버지는 북경의 대학생이었으나, 문화혁명 기간인 1968년에 변방 오지로 총진군하는 행렬을 따라 내몽고로 들어와서 처자를 낳았다. 가족이 북경으로 되돌아 온 것은 1991년이다. 현재 싱글인 그녀의 직업? 인터넷 회사 지역 책임자. ![]() 이 사진의 주인공은 1924년 호북성에서 출생한 아저씨. 1938년부터 공산당의 항일 게릴라 부대에서 종군 사진가로 일했다.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1950년에 11월에 한국으로 파견된 최초의 중국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이다. 문혁 기간에는 정치적 과오를 추궁당하기도 했다. 왼쪽 사진은 중국 공산당 정부가 수립된 1949년에 동료들과 찍은 것. 옆의 두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북경 토박이 아줌마들인데 특이하게 모두 이슬람교도다. 네 사람은 어릴 때부터 4총사였으며, 왼쪽 사진을 찍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아동용 군복을 입고 모택동 뱃지를 달고, 자랑스럽게 '레드 북(모주석 어록)'을 들고 찍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웬 '양귀'가 이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는데, 무서워서 모두 황급히 도망쳤다고 한다. 40년 전 얼굴들이 모두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신기하다. ![]() 이 사진의 주인공은 1933년에 섬서성 시골에서 태어난 아저씨다. 1955년에 인민해방군에 들어갔다. 그가 평생 동안 천안문 앞에서 사진을 찍은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1969년에 어머니를 앉혀놓고 찍은 사진이다. 당시 그의 부대는 베트남에 파견되어 미군과 전쟁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아들의 신상을 걱정한 어머니가 북경으로 달려왔으며, 그 김에 천안문 앞에서 사진을 함께 찍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듯하다. 베트남 파견 계획은 취소되었으며, 그는 계속 군에 있다가 1990년에 대령으로 예편했다. 40년 뒤에 천안문 앞에서 다시 찍은 사진에는 어머니 대신 빈 의자가 자리를 지켰다. 생각해 보니, 나도 바로 저 자리에서 저렇게 찍은 사진이 있네. 몇 년 전인가, 그게... ※ 이미지들: <뉴스 차이나> 2009년 10월호 pp. 28-29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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