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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킹 대회 맞았습니다."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시는 아무개님께서 긴급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4대강 정비 사업, 시급히 해야 한다"라는 주제문에서 찬반의 기준점이 '시급히'라는 공지가 떴다는 겁니다. 얼마 전, 전국국어문화원연합회가 '4대강 개발 사업, 시급히 해야 한다'라는 부적절한 주제를 놓고 대학생 토론 대회를 개최하려는 데 대해 따가운 비판이 크게 일었습니다(전국 애널 서킹 대회). 정부가 강압하다시피 밀어부치고 있는 사업을 놓고 '시급히 해야 한다'라는 작위적인 주제문을 주어 토론을 하겠다는 게, 이번 대회를 이 사업의 홍보 기회로 삼겠다는 뜻이 아니냐는 비판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의심을 살 만한 주제를 뽑았으니 의심을 사는 게 당연하며, 그러나 토론 주제문을 주는 형식 자체는 문제가 없으며, 주최측이 세간의 의심을 털고 토론회의 기본 정신을 지키려고 한다면 '시급히'라는 어이 없는 부사를 찬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회를 열흘 남짓 앞둔 10월20일에 국어문화원연합회의 토론대회 자유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를 공동 주관하고 있는 연합회장 박창원입니다. 토론대회와 관련하여 약간의 안내 말씀을 드리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번 토론 대회의 주제문으로 주어진 졸렬한 문장 '4대강 정비 사업, 시급히 해야 한다'에서 '시급히'를 찬반의 접점이 발생하는 기준점으로 삼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겁니다. 많은 분이 뻔할 뻔자라고 예견했던 사태가 공식화됐습니다. 이번 대회가 정부의 정책 홍보용으로 전락했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1. 저는 이전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4대강 정비 사업, 시급히 해야 한다'의 찬성 의견은 당연히 '시급히 해야 한다'지만, 반대 의견은 '천천히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해서는 안 된다'라고 본다. 시급히와 천천히 사이에는 찬반 토론을 할 만한 쟁점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분적 반대일 뿐, 전체적으로 찬성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찬반을 명확히 나누어 지정하는 토론 대회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어차피 현실적으로 첨예한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이상, 현실에서 논란이 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시급히'를 찬반 토론의 기준으로 삼으면 왜 안 되는지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기로 합니다. '시급히'를 찬반 기준으로 삼으면 토론의 찬반 주제문은, 찬성: 4대강 정비 사업, 시급히 해야 한다 vs. 반대: 4대강 정비 사업, 시급히 해서는 안 된다 (혹은 천천히 해야 한다) 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진술의 차이는 시점밖에 없습니다. 시급히란 말은 본질적으로 '시점'을 규정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찬반 토론 하라고 주어진 두 문장에서 차이가 시점밖에 없기 때문에, 이 두 문장은 모두 '4대강 정비 사업' 자체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모양이 됩니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어쨌든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동의하는 꼴이 되는 것이죠. 이것은 형식논리적 엄밀성을 추구해야 할 토론 대회의 주제로서는 빵점입니다. 국어문화원연합회장의 말대로 토론의 기본적인 기준점을 '시급히'로 잡으면, 토론 주제의 핵심인 '4대강 사업' 자체는 찬반 토론의 쟁점에서 빠지고, 언제 해야 할 것이냐는 시기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게 됩니다. 결국 4대강 사업 자체에 대한 반대 논리는 봉쇄한 토론 대회가 되는 것이죠. 게다가 '시급히 해서는 안 된다'의 근거로 어떤 것을 들 수 있습니까. 무엇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를 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시급히 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은 논제 자체에 대한 명확한 반대가 아니어서, 논리를 세우고 근거를 대기가 아주 곤란한 진술이 됩니다. 부정형 진술이어서 가뜩이나 독립성이 약한 데다, 정도를 나타내는 부사(시급히)가 앞에서 초를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두 진술 모두 당위를 인정한 마당이라, 기왕 할 것, 빨리(시급히) 해야 한다는 찬성 논리를 만들기는 아주 쉬운 토론 구도라 할 수 있습니다. 2. 이런 어이없는 '찬반 기준'을 내세운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치산치수'는 예로부터 국가 경영이나 국토 개발의 기본적인 사항이었습니다. 이것은 어제의 과제이기도 하고, 오늘의 과제이기도 하고, 내일의 과제이기도 한 것이지요. '산과 강'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명제에는 반대가 있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이런 말은 토론 대회를 개최하는 주최측이 참가 대학생들의 논리적 엄밀성을 제대로 측정할 능력이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논리적이고 억지스러운 주장입니다. 여기서는 4대강 사업을 '치산치수'로 규정하고, 국가 경영이나 국토 개발의 문제로 환원하여 "산과 강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명제에 반대가 있을 수 없다"라고 강변했습니다. 다시 말해, 4대강 사업 = 치산치수 = 산과 강을 잘 다스리자는 것 = 반대 있을 수 없음 의 꼴이 됩니다. 많은 해악 때문에 논란이 벌어지는 특정 사업을 추상적이고도 당위적인 말인 '치산치수'로 환치함으로써, 이 사업을 순식간에 몰가치적인 당위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첫 번째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치산치수는 글자 그대로 산과 물, 즉 국토의 자연 환경을 잘 관리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개발과 보존의 개념이 함께 포함됩니다. 치산치수가 삽질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무리해서 파헤치고 깎고 메우는 개발 사업이 모두 치산치수의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예컨대 어떤 사람이 전국의 산을 모두 깎아서 그 흙으로 모든 강을 메우도록 하자고 주장한다고 칩시다. 이 주장이 치산치수의 방편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요컨대, 국토의 자연 환경을 어찌어찌하자는 것이 모두 치산치수로 합리화될 수 없다는 겁니다. 어떤 삽질은 실익도 없이 국토를 파괴하고 산과 강의 본질을 훼손하며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이 4대강 사업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주최자가 말한 것처럼 국토의 치산치수가 이번 주제문을 선정한 주요 이유이자 논거라면, 치산치수를 위해 4대강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고, 또 가능해야 합니다. 치산치수라는 말의 보편성을 생각하면, 치산치수의 구체적 방법이 실로 다양함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치산치수를 위해서는 3대강 사업, 혹은 2대강 사업, 혹은 강이 아니라 지천(支川) 개발 사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시급히'가 아니라 4대강 사업 자체에 대한 반대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4대강 사업을 반론이 불가능한 치산치수 개념으로 놓고 시급히냐 아니냐만 따지라는 것은, 결국 이러한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배제하겠다는 말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주어진 명제에서 그러한 것이 상위의 기준점이 될 수 있는 논리적인 과정을 제시한다면 수용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주제 선정 및 '시급히'라는 찬반 논점의 부적절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내용이 저기에 해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찬성도 들어보고 반대도 들어보는 토론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은 뜻있는 말이지만, 이 말의 진실함을 인정받으려면 마땅히 찬성과 반대의 관점 범주를 최대한 넓혀 놓아야 합니다. 주최측이 대회의 성격을 "토론 능력 겨루기"로 규정하는 이상, 이는 당연한 태도입니다. 당연하고 명쾌한 일을 왜 이렇게 일을 꼬아서 어렵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궁금증은 당연한 의심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해서 그렇습니까? 저는 이번 대회가 부적절한 주제를 선정하긴 했으나 사심은 없는 대회라고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급히가 기준"이라는 어불성설을 당장 수정해야 하리라 봅니다. 4. 명색 우리나라의 국어 기관이라는 국어문화원의 홈페이지며 공지문에 오탈자, 비문은 여전하군요. "약간의 안내 말씀을 드리고 합니다"라니, 말씀 드린 뒤 뭘 하시겠다는 것인가요? "건전한 시민자회"는 대체 무슨 모임인가요? 뿐만 아니라, 행사 공지를 보니 지난 번 글 쓴 이후로 내용을 한 번 바꾼 것 같은데 '치룬다'는 여전하군요. 게다가 "대학생일 대상으로 실시한다"와 같은 어이없는 실수도 새로 더해졌습니다. 명색 국어 기관의 홈페이지, 국어 사용을 심사하겠다는 대회의 공지로서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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