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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빈 쿡은 의학 스릴러를 중심으로 하여 수많은 베스트 셀러를 펴낸 작가다. 영화로도 나온 <아웃브레이크>를 비롯해 <감염체> <코마> 등, 지금까지 소설을 모두 29권을 펴냈다. 거의 1년에 한 권 꼴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은 <인터벤션>이다. 그러나 쿡은 전업 작가가 아니라, 의사다. 안과와 외과가 그의 전문 분야다. 그가 의료업계나 공공 보건이라는 전문적인 주제를 자신있게 다룰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의 소설이 의료 시스템이나 공공 보건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찬사받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쿡은 의료 전문가에 그치지 않는다. 아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르다. 자신이 무엇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알기 쉽도록 쓸 수 있는 능력을 모두가 가진 것은 아니다. 쿡은 자신의 전문 분야를, 소설, 그것도 스릴러라는 장르를 통해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상업적 성공까지 거둔다. 그런 점에서 쿡은 매우 복 받은 사람이거나 매우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소설 구상을 허겁지겁 발표한 이유는? 가장 최근에 나온 작품이 <인터벤션>이라고 했는데, 맨 위의 사진에서 보듯 새로운 작품이 하나 더 나왔다. 좋은 소재가 있으면 가만히 앉아서 소설을 쓰면 되지, 왜 성급하게 작품 구상을 들고 나와 시사 잡지에 자세히 설명했을까. 이번 작품의 주제가 지금 전세계에 번지고 있는 신종플루 H1N1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전염병과 같은 의료 재앙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을 높이는 경로로도 활용해 온 쿡은, 자신의 소설이 완성되어 나오기를 기다리기에는 현실이 너무 급박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포린 폴리시>에 실린 쿡의 새 소설 구상은 매우 흥미롭다. 핵심을 이야기하자면, 현재 우리는 1300년대 중반에 유럽과 세계를 강타한 흑사병과 유사한 재앙을 눈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소설적 상상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매우 현실적인 상상이라는 점이다. 물론 유럽 흑사병과 지금의 신종플루를 비롯한 인플루엔자는 다르다. 흑사병은 박테리아의 일종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가 원인균이지만, 플루는 바이러스가 원인균이다. 이러한 차이는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를 대규모 전염병 사태가 과거의 흑사병보다 더 혹독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 의학으로 볼 때, 박테리아보다 바이러스가 훨씬 더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치류에서 매개되는 Y. 페스티스로 인한 흑사병이 만일 현대에 발생했다면, 중세 유럽에서와 같은 대형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은 잘 모르고 있지만, 실제로 흑사병은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가장 최근의 것은 이번 여름 중국에서 발생한 것인데, 한 마을이 격리 조처되었다고 한다. 다만 현대의 흑사병은 발달한 의학 덕분에, 피해가 크지 않고 널리 퍼지지도 않을 뿐이다. 치명적 독성과 강한 전염성의 결합 쿡에 따르면, 가공할 전염병 사태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1) 살아 있는 보균체, 2) 인간 사이에 전파되는 강한 전염력, 3) 강력한 독성 등이다. 쿡의 새 소설이 성립하려면 이 세 가지 요소가 소설 속에서 완성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위에도 말했듯, 현실에서도 이 세 요소가 합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06년에는 조류독감이 발생하여, 동남아를 중심으로 하여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기억하시는 분이 있는가? 불과 3년 전 이야기다. 이 바이러스는 H5N1이다. 당시 이 인플루엔자 A 서브타입은 세상을 크게 뒤흔들었으며, 지금까지 260여 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화들짝 놀란 데 비해 큰 피해가 나지 않고 곧 수그러들었다. 피해는 주로 가금류 같은 조류에서 발생했다. H5N1은 강력한 독성을 가졌기 때문에, 일단 걸리면 상당히 위험하지만, 그 대신 조류-인간, 혹은 인간-인간 사이의 전염성이 매우 낮다고 한다. 물론 지금 H5N1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조류를 숙주로 하여 잠복하고 있으며, 여전히 조류 사이에서 간헐적으로 플루를 일으키고 있다. 다시 말해, H5N1이 유발하는 조류독감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초에 발생하여 현재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바이러스는 돼지독감균인 H1N1이다. 이 바이러스는 강력한 전염성을 갖고 있어서, 순식간에 사람 사이에 퍼진다. 그러나 역시 다행히도, H1N1의 독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한다. 해마다 초겨울에 찾아오는 일반 독감보다 미약할 정도라는 것이다. 다만, 한국에서 그렇게 부르듯 '신종'인데다, 지난 봄부터 일찌감치 퍼지기 시작했으므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쿡이 걱정하는 사태는, 조류독감의 원인균 H5N1과 돼지독감의 원인균 H1N1이 우연히 한 개체의 몸에 들어가 각기 분화하는 과정에서 서로 결합하여, 양자의 특성을 가진 새로운 바이러스 변이체가 만들어지는 시나리오다. 다시 말해, 치명적 독성과 강력한 전염성을 동시에 가진 새로운 변이체가 등장하는 것이다. 유전자 구조가 변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인플루엔자 A의 특성상, 이런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연히 두 바이러스가 한 개체 몸에 들어가는' 상황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쿡이 <포린 폴리시>에 쓴 글에도 나와 있고, 실제로 출판될지도 모를 쿡의 새 소설 <흑사병>에도 잘 묘사되어 있을 것이다. "일반인은 낙관해도 방역 당국은 준비해야 한다" 이제 쿡의 새 소설에서 그려지는 일은 마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과 비슷하다. 쿡은 이를 소설적 상상력으로 잘 서술하고 있지만,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의료 전문가도, 생물학이나 미생물학 전공자도 아니므로 쿡이 예견하는 사태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가 비판하는 사람들, 즉 "이 21세기 개명천지에 설마 그런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랴" 하며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어 속편하게 사는 사람들 축에 속한다. 그러나 쿡은, 일반인은 그렇더라도 방역 당국을 비롯한 국가 기관은 만일의 사태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게 호들갑으로 들리지 않은 것은, 언론이 보이는 진짜 호들갑에 대해서는 쿡 자신이 이를 호들갑이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전문가들도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로 조류독감 바이러스인 H5N1의 강력한 파괴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는 인간에 대한 감염성이 매우 낮지만, 쿡이 말하는 과정을 포함해, 언제든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일단 감염되면 치사율 60%를 보이는 이 플루가 어떤 상황을 초래할지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지난 9월 말에, 유엔의 방역 담당 관리는 조류독감으로 인해 5백만~1억5천만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쿡은 아마 상당한 부자일 것이다. 의사라고만 해도 그럴텐데, 게다가 잘 나가는 베스트 작가이니까. 그는 인적이 드문 곳에 스키 별장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항상 타미플루, 항생제, 진통제, 마스크 따위를 쌓아 놓고 산다고 한다. 언젠가 가족을 데리고 이 별장으로 피신해야 할 사태가 벌어지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의 확신이 맞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쓸 새 소설이 매우 현실적이고 그럴듯 해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 이미지: <포린 폴리시> (본문 속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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