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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이 기자들에게 돈봉투
검찰총장이 간부들 데리고 기자들과 밥과 술을 먹다가 희한한 방식으로 돈을 돌렸다. 말하자면 로또인데, 방식은 로또지만 실상은 촌지다. 그것도, 총장 자기 주머니돈도 아니고, 국민의 피눈물이 묻어 있는 세금을 갖고 저희들끼리 로또 잔치를 벌였다.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니, 열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준 자는 그렇다치고, 받은 자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 기자들은, 검찰총장이 자신들에게 돈을 배부해 주는 데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갖지 않았단 말인가. 그저 시키는대로, 번호가 쓰인 종이쪽지를 돌려가며 좋아했단 말인가. 그렇게 돌아온 돈봉투를 서슴없이 주머니에 챙겨 넣었단 말인가. 술자리에서 이런 허무맹랑한 일이 벌어지는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신문과 방송 기자 24명' 중에서, "세상에 이런 X 같은 짓이 다 있냐. 우리를 뭘로 보고." 하고 술상을 뒤집어 엎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단 말인가. 24명이나 모여 있는데도. 기자의 도, 언론의 도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라고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처참하다. 권력이 자신을 돈으로 희롱하는 꼴을 당하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기는커녕 주는 돈까지 받아 넣었다니, 언론의 윤리나 기자의 소명 같은 것을 이야기하기도 망설여질 정도로 기가 차다. 개발에 편자를 씌우는 꼴 같아서 말이다. 돈을 받아 돌아가는 기자들을 보내고 나서, 총장이나 직원들이 뒤에서 저희들끼리 무슨 말을 했겠나. 내가 다 얼굴이 빨개진다. 돈을 받은 기자 여덟 명은 나중에 돈을 돌려주거나 사회복지 단체에 기부했다고 한다. 돈은 그 자리에서 당장 돌려줘야 한다. 이런 비슷한 일에 연루되어 본 사람은 알지만, 돈을 받았다가 나중에 돌려주면 스타일은 스타일대로 구기고 진정성도 의심을 산다. 사회 단체에 기부했다는 것은 더욱 나쁘다. 자기 사사로운 일에 안 쓰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썼다는 것인데, 이는 '돈은 받았지만 쓰지는 않았다'라는 자기 만족일 뿐이다. 돈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쓰든, 주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받은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당연히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할 돈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기자들에게 돌린 돈은 검찰총장이 자기 재량으로 쓸 수 있는 활동비로서, "김 총장이 수사팀이나 내부 직원 등을 격려하는 특수활동비"의 일부라고 한다. 기자가 언제부터 총장의 격려를 받아야 할 검찰 내부 직원이 됐나. 가뜩이나 이런저런 일로 언론에 대한 신뢰가 쥐꼬리만큼이나 남아있을까말까 한 상태다. 언론사 내부에서 엄중한 조사를 통해 가릴 것은 가리고 나무랄 것은 나무라서, 다시는 이 같이 스스로의 품위와 독자의 신뢰를 동시에 잃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겨레21>의 안수찬 기자는 '저널리즘의 궁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지 않고, 날 서린 비판의 눈으로 권력자들을 감시하는 기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열의 아홉은 '감시견' 대신 '반려견'이 되어 간다. 드물게 비판기사를 쓴다 해도 권력자들의 언어로 보도한다. 그들이 쓰는 기사에서 세상은 권력자, 명망가, 권위자, 유력자의 각축장이다. 집을 지켜야 할 개가 도둑을 향해 짖지 않고 도둑과 반려견이 되어 간다면, 복날 끓이는 것 말고 무엇에 쓸 것인가. 원래 뇌물은 받은 놈보다 준 놈이 더 나쁘다고 하지만, 일이 벌어진 지 사흘이나 지난 뒤에 조금씩 나오는 언론 기사가 모조리 검찰총장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보기는 좋지 않다. 하나같이 "김준규 검찰총장이 기자들과 회식 자리에서 '촌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라는 식인데, 내가 보기에는 "기자들이 검찰총장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촌지'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빋고 있다'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인 듯 하다. 그래도 이런 일이 나중에나마 알려지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그런데 왜 검찰총장은 추첨이라는 희한한 방식으로 돈을 나눠줬을까. 처음에는 받는 측이 마음 편하게 받도록 분위기를 잡으려고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기자 24명'은 적은 수가 아니라는 점에 생각이 미친다. 예를 들어 '촌지 예산 400만원'을 갖고 24명에게 돌리면 1인당 16만7천원 돌아간다. 이건 주고도 욕먹는 액수다. 그래서 고민 끝에 몰아주기를 한 게 아닐까. 참 여러 모로 기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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