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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시청자위원회 위원으로 인터넷 웹진 <시대소리>를 운영하고 있는 변희재의 글로, 2003년 12월5일자 KBS 노보에 실린 것입니다.
12월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방송평론가 전여옥과의 대담이 끝난 뒤, 담당자인 한겨레 기자는 "너무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것 같아요" 라는 말을 전했다. 한겨레신문사 측에서 내심 크게 기대하고 만든 '토론과 논쟁' 면의 기획에 결과적으로 나와 전여옥은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공영방송 KBS의 프로그램 평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관, 조선일보에 대한 시각 등에서는 첨예하게 대립된 의견을 내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껏 내가 연거푸 퍼부었던 전여옥 비판에 대해 그는 "그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비판이었다" 고 넘어가듯이, 서로를 존중하며 의견 차를 확인하는 선에서 논쟁을 멈추고 말았다. 아무래도 한겨레 기자는 그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논쟁 초반의 KBS와 텔레비전 분야의 논쟁을 끝낸 뒤, 글쓰기와 인터넷 논쟁, 그리고 정치개혁 부분에서는 내가 굳이 전여옥과 심각하게 대립할 의제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그때부터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읽은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와, 출판인 김규항 간의 '도량' 에 관한 논쟁이다. 김규항은 친구인 H사 자동차 사장이 자신이 만드는 진보적 영화매체에 돈을 댄 것을 예로 들며, '우리의 도량이 저들의 도량보다 적다면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의 꿈은 이루기 어렵다' 는 주장을 한다. 반면 강준만은 '우리의 성실성이 저들보다 적다면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의 꿈은 이루기 어렵다' 라고 응수한다. 도량과 성실성, 과연 무슨 미묘한 차이가 있을까?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글만 쓰면 모든 게 다 끝났다. 오직 나의 양심 하나로만 판단하여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쁘다고 말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다고만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비판의 대상도 찬양의 대상도 나하고는 아무런 사적관계도 없는 그냥 공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객들이 모여 사는 서울에서 정치 웹사이트를 운영하다보니 자꾸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흔히 말하는 같은 진영의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껏 항상 비판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기득권 세력과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은 현실의 이익을 취하고 진보주의자들은 이상과 진실을 취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현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타협할 정도로 포용력을 자랑한다. 반면 저 멀리 보일까 말까 하는 이상과 진실 하나 붙들고 살아가는 진보주의자들은 현실의 이익을 모조리 버릴 망정 타협을 하지 않는다. 물론 그 둘 모두 제대로 된 보수, 제대로 된 진보일 때 그렇다는 말이다. 현실적으로는 진보의 탈을 쓰고 현실적 이익을 탐하고, 포용력도 없이 이익을 독식하려는 수구파들도 수두룩하다. 전여옥은 나의 비판은 물론 자신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네티즌들의 리플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말을 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논객이라면 자신의 이념과 매체의 이념을 맞춰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 대해, "논객은 매체를 가리면 안 된다" 라는 친절한 충고까지 덧붙였다. 이러한 전여옥의 포용력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전여옥의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 면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그렇다면 나의 포용력도 그 만큼 넓어졌다고 봐도 되겠는가? 전여옥의 생각도 포용할 만큼? 강준만이 말한 성실성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판을 꼼꼼히 챙겨읽고 올바른 비판이면 받아들이고, 그른 비판이면 반론하라는 뜻이다. 비판을 받았으면서도 그냥 대충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지적으로 게으른 것이며 또한 권위적인 것이다. 그 점에서 전여옥이 자신에 대한 비판에 반론하지 않는 것은 포용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위적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글쓰기와 논쟁의 측면에서는 김규항과 전여옥의 도량과 포용력보다는 강준만의 성실성이 정답에 가깝다. 그러나 글쓰기 밖의 또 다른 전쟁터도 있다. 전여옥은 자신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이유를 조선일보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안티조선을 하겠다면 조선일보를 시장에서 압도할 수있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자, 바로 시장이라는 전쟁터이다. 전여옥은 시청자들이 TV에서 아름다운 환상을 보기를 원한다고 보고 있고, 나는 그들이 TV에서 그들의 진실을 보기를 원할 것이라 믿고 있다. 나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라는 진실된 동요를 유치원 때부터 배웠고, 한번도 이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 반면 전여옥은 어느 유치원을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텔레비전에 니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라는 노래를 불러댄다. 그렇다면 이것은 글쓰기 논쟁으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전여옥은 환상이라는 상품을 시장에서 팔고 나는 진실이라는 상품을 시장에서 팔아서, 누가 더 많이 팔았느냐로 결판내야 한다. TV 프로그램이든 글쓰기든 마찬가지이다. 그랬을 때 과연 나와 전여옥은 포용력의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일까? 대충 서로를 인정하는 척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냐 이 말이다. 아니다. 나는 바로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시장에서도 성실성과 겸손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전여옥이 올바른 보수주의자라면 서민들이 바라는 환상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할 것이다. 반면 내가 진정한 진보주의자라면 서민은 물론 전여옥과 같은 기득권 보수세력들조차도 눈물나게 웃을 수밖에 없는 삶의 진실을 캐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것은 누가 더 성실하게 자신의 세계관에 충실할 수 있느냐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전여옥은 1등 신문 조선일보의 장점을 찾아보라 했고, 나는 출세한 모든 사람에게는 장점이 있다는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의 말로 받아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찾은 그들의 장점은 그들의 가식적인 포용력이 아니라,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살인적인 성실성이었다. 우리가 그들보다 성실하지 않는 한, 그들의 밥그릇 근처에도 다가서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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