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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에서 총선으로 이어지는 한 달 남짓 기간 동안의 정치적 격랑이 남긴 또 한 가지 사실은 정치라는 상품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관심이 급격히 달아올랐다는 것이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전반적 불량품으로 인식되어, 소수의 매니아들을 제외한 일반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던 이 상품은 단기간에 상종가를 치며 한국 사회의 한가운데로 쑥 들어왔다. 정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특히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졌다. 그동안 흔히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가 아닌 총선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따위는 40~50대 이상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그들만의 잔치가 되기 일쑤였고, 젊은이들은 선거와 정치를 외면했다. 그러나 경천동지할 탄핵 만행은 젊은 세대에게 다양한 수위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그대로 총선 열기로 이어졌다. 이번 선거의 유권자 중에서 20대와 30대가 차지한 비율은 47%로 절반 정도다. 50~60대는 30%다. 20, 30대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에 힘입어, 총선의 투표율은 그동안 내리막길을 걷던 추세에서 반등하여 60.6%를 기록했다. 투표율은, 예컨대 85년 12대 총선의 84.6%와 비교하면 형편없다. 그러나 지금은 80년대와 같은 "정치의 시대", 혹은 "정치 과잉의 시대"가 아니다. 단지 탄핵과 같은 핵폭탄 탓에 정치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으로 끓어넘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젊은 세대는 흔히 정치 무관심층이라고 분류되어 왔기 때문에, 이번에 이들이 쏟아놓은 정치적 에너지는 새롭고도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젊은 세대의 공간인 인터넷에서도 널리 찾아볼 수 있는데, 탄핵과 선거에 대한 개인적 반응이 그동안 정치 사각지대였던 인터넷 공간을 휩쓸었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개인들의 공간인 블로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글루스에서 탄핵에 대한 사용자들의 의견을 물은 트랙백에서는 평상시의 주제에 붙는 의견의 10배가 넘는 356개의 의견이 붙었다 (이글루스 트랙백 참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세계적 추세인 듯, 선진국에서도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 무관심은 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다루어진다. 공동체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건강한 사회의 지표로 여겨 온 미국에서도 정치 참여는 내팽개치고 "혼자 볼링을 하며" 노는 현대인들의 태도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한 요소로 본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 세대의 정치 무관심은 다른 나라 젊은이들의 무관심과는 분명히 다른 것 같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저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적극적으로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탄핵과 선거에 대해 블로깅을 한 많은 블로거들이 "블로그에 정치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 했는데" 라든가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지만" 등의 단서를 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단서에는 정치는 더러운 것이고 가까이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인들이 한국 국민에게 보여준 모습을 보면 이러한 인식은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다른 나라의 정치 무관심을 소극적, 혹은 피동적 무관심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그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무관심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다른 나라의 무관심은 글자 그대로 관심과 흥미가 없는 "I don't care" 의 무관심이라면, 한국의 무관심은 국민들이 가지는 높은 기준과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의도적인 외면이라고 해야 한다. 결국 한국의 정치 무관심 뒤에는 높은 관심과 뜨거운 정치적 에너지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을 이해해야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젊은 세대의 정치 에너지를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정치 좋아하고 정치 혐오하고." 이것은 한국인의 정치에 대한 정서를 논평한 어떤 저널리스트의 칼럼 제목이다. 나는 한국인과 정치 사이의 애증의 관계를 이보다 더 간명하게 표현한 것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 지금은 좀 색이 바랬지만,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웬만한 한국인은 탁월한 정치 분석가였다. 정치인들의 행동을 서너 발 앞까지 내다보는 건 예사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툭 하면 호박이 떨어진 것을 알아채고 톡 하면 감이 떨어진 것을 알아챘다. 소줏집에서 귀를 잘 귀울이고 있으면, 신문에 뭐라뭐라 나오는 정치 칼럼보다 훨씬 더 탁월한 논리와 해석을 얻어 들을 수 있었다. 일반 국민을 정치 전문가로 만든 것은 정치 자체였다. 수십년 동안 계속된 정치적 격동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예민한 촉각을 갖도록 만들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항상 핵심은 놔두고 배배 꼬는 정치 기사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행간을 읽을 수 있는 탁월한 감식안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탁월한 정치 전문가들의 결론은 항상 "에이, 빌어먹을..." 아니면 "썩을 놈들..." 같은 것이었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 역시 정치가 만든 것에 다름아닌 것이다. 나는 최근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 젊은 세대의 "정치 좋아하고 정치 혐오하고" 를 보면서, 정치를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정치를 혐오하고 무관심하게 방치하면 안되리라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청와대나 세종로, 여의도에서 벌어지거나 결정되는 일들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규제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정치인은 나쁘더라도 정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정치의 고전적 정의는 이러한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치란 권력 투쟁을 통해 인간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재생산시키거나 변화-혁신시키는 인간의 사회적 실천 일반을 가리킨다고 한다. 세종로나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자기들끼리 지지고볶고 끝나는 게 아니라, 권력의 다툼을 통해 내가 속한 사회의 관계를 좌우하는 것이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정치를 지켜보아야 할 이유다. 탄핵과 총선으로 순식간에 폭발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선거가 끝나고 별다른 이슈가 없어지면 다시 순식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 뒤에 잠재하고 있는 정치적 에너지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는 사회와 개인 모두의 과제가 될 것이다. 우선, 한 가지만은 기억하자. 정치인 개인이나 정당의 독재와 전횡은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텃밭으로 해 싹트기 마련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은 흔히 정치인들에게 만만한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큰 일도 곧잘 잊어버리고 투표도 하지 않고 세상에 관심도 없는 국민들이 있는 한 전두환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 것이고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목에 또다시 칼날을 들이댈 것이며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노회한 정치 모리배들은 여전히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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