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by deulpul

가끔 안경을 벗고 콘택트 렌즈를 쓴다. 오늘처럼 날씨가 화창한 날이나 멀리 운전을 하는 날이 그렇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써 온 안경이니 이제는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인데도, 이렇게 가끔씩 벗으면 그 자유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안경과 렌즈는 돗수가 똑같은데도, 안경을 벗고 렌즈를 쓰면 세상이 꽤 달라보인다.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든 크게 보이는 것. 특히 가까운 데 있는 것들은 "이게 이렇게 컸었나..." 하고 놀랄 정도로 크기가 달라 보인다. 내가 들고 다니는 오래된 컴팩 노트북의 모니터는 렌즈를 끼고 보면 요즘 막 나오는 최신 노트북의 광폭 모니터처럼 보인다. 한쪽 모서리에서 다른 쪽 모서리까지 눈길을 쭈욱 옮기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느낄 정도다. 안경을 쓰고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신기한 경험이다.

사람들의 얼굴도 크게 보인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얼굴이, 안경을 벗고 보면 생각보다 상당히 크다. 어린이는 갑자기 쑤욱 자란 것처럼 보이고, 어른은 갑자기 살이 좀 붙은 것처럼 보인다. 짐작컨대 졸보기인 근시 안경이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세상 사물을 돗수만큼 축소시켜 나의 눈에 전달하는 탓인 것 같다.

눈으로 보이는 세상 모든 것은 안경의 유리 렌즈를 통해 나에게 전달된다. 안경은 나와 세상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게이트 키퍼다. 명색 게이트 키퍼라면 나쁜 것은 가리고 좋은 것만 보이게 하면 좋을텐데, 그러지는 않고 그저 사물을 적당히 축소하여 나에게 보여준다.

안경은 벗어버리면 된다. 세상을 보는 나의 눈 앞에, 유리 렌즈보다 더 단단하고 투명하여 알아채기 어려운 편견이나 아집의 렌즈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문득 두렵다. 이 렌즈가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적당히 짜깁기하고 편한대로 골라서 일그러뜨린 모습으로 나의 망막에 전달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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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비안졸다크 2004/04/29 10:55 # 답글

    음, 전 눈도 작고 안경을 초등학교 3학년 부터 써서 렌즈를 끼기엔 콧등도 망가지고, 렌즈 넣는게 무섭 (....) 더군요.
  • deulpul 2004/04/29 11:44 # 답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셨군요?? 실은 제가 자주 렌즈를 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안졸다크님과 똑같습니다: 잘 안들어갑니다. -.- 많이 익숙해진 지금도 하나 끼는 데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보통 오분 가까이 걸립니다. 물론 어떤 날은 쑥쑥 잘 들어갈 때도 있지만요... 그 차이를 아직 모르는 초보입니당... 하핫- 여하튼 아무리 작은 눈이라도 렌즈는 들어간다네요...
  • 비안졸다크 2004/04/29 15:43 # 답글

    공부보단 게임과, 만화책과, 소설을... 이란거죠 (....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 deulpul 2004/05/04 03:26 # 답글

    아, 그게 정말 공부가 아닐까요... 학교 공부 말고 인생 공부... 아.. 아닌가?? 6-.-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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