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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개혁적 중도 보수' 를 천명했단다. 지난 총선에서 승리한 당선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였다고 한다. 이 소식은 연합뉴스의 기사로 작성되어 신문 지면에 실렸다.
이 소식을 듣고 기가 막힌 세 가지 것들. 1. 개혁적 중도 보수? 도대체 그런 것이 있는지는 둘째치고, 아무리 표에 목이 말라도 그렇지 대체 이건 뭐냐. 좌, 가운데, 우를 모두 비벼 넣어서 비빔밥이라도 만들겠다는 말인가. 도대체 '개혁적 중도 보수' 성향을 가진 개인에게 무슨 신념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정당이 어떻게 당의 정체성에 맞는 정책을 만들수 있단 말인가. 개인이라면 영화 <아이덴티티> 에 나오는 살인자처럼 다중인격이 틀림없을 것이요, 정당이라면 곧 쪼개질 임시정당에 지나지 않음을 고백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비빔밥이라도 이것저것 끌어다가 막 비벼놨다고 음식이 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비빔밥의 그 심오한 맛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수많은 재료를 섞어서 한 음식을 만드는데, 각 재료의 개별성은 전체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고 또 전체는 각 재료가 없으면 전체로서 완결되지 못하는, 그야말로 개별과 전체의 오묘한 조화가 바로 비빔밥의 미덕이 아닌가. 무엇보다 비빔밥 재료들은 서로에게 대립항이 아니다. 도라지와 고사리가 적이 아니고, 고추장과 참기름이 안티(anti)가 아니다. 좌/우, 개혁/보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러 재료로 음식을 만들되 비빔밥과 같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그저 재료를 섞어 놓은 음식을 우리는 잡탕밥이라고 부른다. 잡탕밥의 특징은 아무리 섞어놔도 각 재료가 전체로서 융합되는 시너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인데, 결국 잡탕밥의 재료들은 그릇에서, 숟갈 위에서, 입 속에서, 그리고 뱃속에서 전부 제각기 따로 놀게 마련이다. 게다가 자기들이 개혁, 중도, 보수 다 하면 남들은 뭘 하란 말인가. 자기가 다 할테니 남들은 자빠져 쉬라는 게 아닌가. 놀부보다 더 고약한 심보가 아닐 수 없다. 셋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서 그러면 말도 안한다. 2. 이 기사 제목은 한나라 '개혁적 중도보수' 공식 천명 이라고 되어 있다. 당의 이념이 '공식' 천명되려면 당연히 정강 같은 데 명시되어야 한다. 그런 것도 아닌데, 한나라당에서 이같은 잡탕 이념을 공식 천명했다고 이 기사가 과감하게 단언한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1) 한나라당이 회의를 끝내고 발표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에서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선진화의 길을 가겠다" 라고 했다는 점과, (2) 회의 중 토론에서 '대부분의 당선자' 들이 당의 정체성을 '개혁적 보수' 나 '중도 보수' 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한 정당의 이념, 이데올로기를 쾅쾅 못질해 박으면서 동원한 근거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한 줄의 발표문과 여러 사람이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한, 서로 모순되는 언급들이라니. 지나치게 과감한 것인지, 아니면 기자가 (기사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당 지도부가 그렇게 가기로 했다는 다른 정보를 갖고 있던 것인지, 것도 아니면 기자는 천리안을 가진 예지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웃기지 않은가. 여러 당선자가 개혁적 보수를 주장하거나 중도 보수를 주장했으니, 그걸 짜깁기한 개혁적 중도 보수가 그 모임의 정체성이라고 단언하다니 말이다. 마치 한나라당의 대표를 뽑는데 최병렬과 박근혜가 각기 당원들로부터 비슷한 지지를 받고 있으니 한나라당의 대표는 최병근혜라고 주장하는 꼴이 아닌가. 3. 여하튼, 이와 관련된 다른 기사를 찾아보니 이런 말도 나와 있다: 박진(朴振) 의원은 "중도보수 노선의 핵심은 자유와 인권이다. 이 두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한나라당은 다시 태어나야 하며 국민들에게도 우리가 왜 보수를 추구하는지 명확하게 이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도 보수 노선의 핵심이 자유와 인권이라니? 그럼 진보 노선은 뭘 먹고 살란 말인가? 의원이 하고싶었던 속말은 아마 '시장의 자유'와 '북한 주민의 인권'이었겠지... 의원님, 공부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말을 제대로 해야 바보 소리를 안 듣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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