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장
이 블로그의 글들 VI 이 블로그의 글들 V 이 블로그의 글들 IV 이 블로그의 글들 III 이 블로그의 글들 II 이 블로그의 글들 I ※ 예전 글들의 카테고리 분류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테고리
때時 일事 (Issues)
중매媒 몸體 (Media) 미국美 나라國 (USA) 갈硏 궁구할究 (Study) 흩을散 글월文 (Prose) 욀諷 찌를刺 (Satire) 짧을短 생각想 (Piece) 낱個 사람人 (Personal) 연결連 이을續 (Series) 섞일雜 끓일湯 (Others) 두二 바퀴輪(MCycle) 최근 등록된 덧글
아직 연애는 하지 않는 ..
by deulpul at 13:37 그런 점도 중요한 원인일 .. by deulpul at 13:34 아, 바로 맞추셨습니다... by deulpul at 13:27 김연아도 연예인에 넣어.. by 검투사 at 13:00 인터넷 주 이용자층에 차.. by MCtheMad at 04:56 최근 등록된 트랙백
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by 민노씨.네 일년이 다 된 글인데 새삼.. by 물리학 흠냐, 울 마눌은 백설공.. by 뒤돌아 보지 않는다, 후.. 검찰과 기자, 국민 세금.. by 자그니의 시크릿 스크립팅.. 전국국어대회 '4대강' 토.. by Green Monkey Blog** 태그
|
![]() ![]() 윗쪽 그림은 오는 6월에 한국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릴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in Korea, 1951, 109.5 x 209.5 cm) 이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금지되다시피 했다가 뒤늦게 공개되는 그림이다. 그림은 1950년 10월17일부터 12월7일까지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신천대학살' 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군 인구의 약 4분의1인 3만5383명이 희생된 끔찍한 사건으로, 미군의 소행으로 알려져 전세계 좌익이나 진보 운동 진영의 공분을 샀던 사건. 당시 피카소는 프랑스공산당 (PCF) 소속이었다. 이 그림을 통해 피카소는 미군의 행동을 고발하려 했으나 미군 당국은 학살 연루를 부정했으며, PCF 도 이 그림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성취하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을 다룬 게르니카와 더불어 피카소가 화폭에 직접적인 정치 메세지를 담은 몇 안되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그림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영과 관계없이, 인간이 인간을 도륙하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져 침략 전쟁을 반대하는 자리에 자주 등장했다. 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탱크로 밀고 들어왔을 때,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거리에 이 그림을 들고 나가 소련제 탱크에 숨진 동료 시민들에 대한 지지를 표시했다고 한다. 두 번째 그림은 영국 미술가 호크니 (David Hockney) 가 그린 <학살과, 묘사의 문제> (The Massacre and the Problems of Depiction, 2003, 143.5 x 183.5 cm) 이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을 모작으로 하여 52년 뒤 새로 그려진 이 그림은 전쟁과 학살의 문제에 한 가지 문제를 더 추가하는데, 그것은 언론의 묘사, 즉 보도 태도이다. 호크니는 자기 작품에 대해, 그의 그림은 피카소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현재도 계속되는 (진실을 알리는) 사진의 부족에 대한 화가의 대응이라고 말했다. 세로로 두 부분으로 구성된 호크니의 그림은, 윗쪽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원화와 비슷하게 재구성하고, 그 아랫쪽에 사진가의 뒷모습을 그려 넣었다. 전쟁의 보도, 특히 전쟁과 관련된 사진 보도에 대해 비판하려 한 호크니의 의도는 바로 이 맨 아래 장면에서 표현되고 있다. 2003년 5월3일자 <더 가디언> 지는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두 영국 화가 중 하나인 호크니가 전쟁사진가들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고 표현했다. 호크니에 따르면, 피카소의 한국전 그림은 나치가 운영하던 죽음의 수용소를 묘사한 사진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부터 촉발된 것이라고 한다. "피카소는 사진가들이 사건 뒤에야 수용소 현장에 도착했으며, 가해자의 끔찍하고 잔인한 행동은 보여주지 않고 생존자들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호크니는 전쟁 사진이란 항상 보여주도록 허가된 것만 보여주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 같다. 실제로 나치 수용소 사건 때 카메라 접근은 통제됐으며,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시각적 기록의 대상은 오로지 생존자들 뿐이었다고 한다. 학살 당시의 끔찍한 상황은 오로지 화가의 상상력을 통해서만 재구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림의 경우, 또 그 그림이 추상적일수록, 제목과 설명이 없으면 화가가 어떤 소재를 통해 어떤 메세지를 전하려 하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호크니의 그림도 그의 설명 없이는 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곤란하지 않은가. 사진과 그림은 여전히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가 아닌가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