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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은 세계를 어떻게 나눠먹을까를 놓고 유럽 국가 사이에서 벌어진 한판 전쟁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은 이 전쟁에 개입할 것을 결정하면서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해서" 라는 화려한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윌슨이 실제로 추구하던 것은 열강들의 세계 나눠먹기에 끼어들어 미국도 한몫을 차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영국에 주재하던 미국대사는 미국이 독일과 전쟁을 치루는 것만이 미국이 누리던 우세한 무역상의 지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130,274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터로 나가 쓰러지는 미국 젊은이들 앞에는 거창하고 아름다운 이념의 구호가 나붙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장으로 내몰려 죽고 죽이는 진짜 이유가 현금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2차대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백만 미국 젊은이들이 독일 파시즘이나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다는 화려한 명분 아래 징집됐다. 그러나 미국도 역시 미국 나름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갖고 있었다. 1940년 10월, 독일과 일본의 군대가 각각 유럽과 아시아로 진주하기 시작하자, 미국의 고위 관리와 경제 지도자, 은행가들은 미국 국무부와 외교위원회가 주재하는 회의에서 머리를 맞댔다. 그들의 관심은 앵글로계 백인들의 이익을 전세계에서 관철시키는 것이었다. 회의의 결론은 앵글로계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 외교위원회와 국무부가 주고받은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만일 전쟁의 목적이 순수하게 앵글로계 백인들을 위한 미국 제국주의로 간주된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다른 쪽의 이익을 위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끔찍한 전쟁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을 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20만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뒤이어 수만명이 방사능 오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를 놓고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하느님이 그의 목적을 위해 그의 방식으로 원자폭탄을 쓰도록 우리를 인도하기를 바란다."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기 전에 이미 일본은 패색이 짙은 상태였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쓴 진정한 목적은 일본을 패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새로 개발한 대량살상무기의 가공할 힘을 전세계에 과시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2차대전은 미국을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초강대국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정유회사인 엑손의 전신인 스탠더드오일사의 사장 레오 웰치는 미국이 세계라는 기업의 대주주로서 이 기업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 세계라는 기업의 산하 회사들인 각 나라들의 경제 정책을 결정하고 관리자를 앉히는 데 기꺼이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스스로를 주권독립국가라고 인식한 여러 나라들에서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제2장: 냉전과 자칭 세계경찰의 역할 미국은 2차대전을 통해 또다른 강대국으로 떠오른 소련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후 45년 동안 전세계는 두 초강대국 사이에 벌어지는 이전투구의 수렁에 빠졌다. 두 나라의 경쟁에서 미국은 언제나 소련보다 훨씬 강한 위치를 유지했다.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의 영향권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엄청난 군사력을 동원했다. 두 강대국 간의 경쟁은 냉전으로 불리는데, 이것은 이들이 직접 서로를 맞상대하여 전쟁을 벌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신 이들의 경쟁은 다른 많은 나라에서 폭력과 전쟁을 몰고 왔다. 당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갈등의 뒤에는 반드시 이들 두 나라가 존재하고 있었다. 미국은 아메리카와 태평양 지역의 영향권을 확대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널린 영국과 프랑스와 일본의 식민지들을 대부분 자기 세력권으로 포함시켰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의 계획을 따르지 않는 움직임을 통제해야 했다. 미국에 복종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지 않는 세력을 찍어누르기 위해, 세계 기업의 대주주 미국은 세계 경찰이라는 또다른 명찰을 스스로 달았다. 냉전 기간 동안에 미국은 세계 각국에 200회 이상 군사적 개입을 자행했다. 한국, 1950-1953: 2차대전 직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향해 야심을 키우던 미국은 중국에서 말레이시아에 이르는 지역에서 벌어진 혁명과 반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해 매우 곤란하게 됐다. 그 직접적 충돌은 한국에서 벌어졌다. 미국은 서구의 군사력이 어떤 아시아 군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전쟁에 직접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군함과 폭격기를 비롯한 강력한 화력은 한국을 깨진 기왓장처럼 산산조각내었다. 450만 한국인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 4분의 3은 민간인들이었다. 미군 5만4천명도 관에 실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미국은 그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와 강력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3년 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정전협정이 맺어졌다. 한국은 여전히 분단되어 있으며, 오늘날까지 4만명 가까운 미군이 또다른 전쟁을 기다리며 남한에 주둔하고 있다. 도미니카공화국, 1965: 미국이 지원하는 군부세력이 민선 정부를 뒤엎고 쿠데타를 성공시키자, 국민들은 자신들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의 복권을 요구하며 봉기했다. 그러나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도미니카 국민들이 누구를 선출했는지가 아니라 미국 말을 잘 듣는 충복을 권좌에 앉히는 것이었다. 2만2천명의 미군이 쿠데타에 반대하는 도미니카 국민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도미니카의 수도 산토도밍고 거리에서 3천명이 사살되었다. 베트남, 1964-1973: 10년 동안 미국은 부패한 남베트남 정부를 지켜주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가공할 살상 무기를 총출동시켜 베트남을 공격했다. 미국이 이 기간에 베트남,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아우르는 인도차이나에 쏟아부은 화력은 그동안 인류 역사의 모든 전쟁에서 사용된 화력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은 것이었다. 미국 폭격기들은 7백만톤의 폭탄을 베트남에 쏟아부었다. 베트남 사람 일인당 350파운드의 폭탄을 맞은 셈이다. 또 네이팜 40만톤이 이 작은 나라에 폭우처럼 쏟아졌다. 수백만 에이커의 농작물 지대와 울창한 숲을 초토화하기 위해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를 비롯한 유독성 살충제가 가리지않고 투하됐다. 마을들은 깡그리 초토화됐으며, 주민들은 무자비하게 학살됐다. 이 전쟁에서 모두 2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대부분은 미국의 폭격과 총격에 숨진 베트남 양민들이었다. 침략측인 미군은 사망 6만명, 부상 30만명의 피해를 입었다. 엄청난 화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다. 초강대국 미국의 가공할 화력을 물리친 것은 경무장하였으나 단호한 의지를 지닌 베트남 농민군이었다. 레바논, 1982-1983: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직후, 미국 해병대는 레바논 내전에 직접 개입했다. 미국이 지원한 쪽은 2천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계 시민들을 학살한 이스라엘과 우익 팔랑지 무장그룹이었다. 반대측은 격렬히 저항했다. 미군 해병대 막사가 자살 폭탄 차량으로 공격받아 241명의 미군이 사망하기도 했다. 그레나다, 1983: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인 그레나다의 인구는 11만이다. 미국 어느 시골의 작은 도시 하나 정도다. 그런데도 레이건 대통령은 이 초미니 섬나라가 거대한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미국은 이 섬을 점령하고 친미 정부를 새로 세웠다. 당시 국무장관 조지 슐츠는 이 섬나라가 "한 조각의 값진 부동산" 이라고 언급했다. 리비아, 1986: 미국은 리비아 군주인 아이드리스 왕을 끔찍히 사랑했는데, 그가 자기 나라의 유전을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 값으로 미국 스탠더드오일 회사에 넘긴 것을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미국이 아이드리스 왕을 축출하고 외국인 소유의 지하자원을 국유화해 나가는 카다피 대령을 미워한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1986년 레이건은 미국 공군을 동원해 리비아의 수도 프리폴리를 폭격했다. 폭격의 명분은 카다피가 독일의 한 디스코장에서 벌어진 폭탄 공격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디스코장 폭탄 공격으로 죽은 미군은 단 두 명이었다. 미국의 리비아 폭격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리비아인은 수백명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독일의 디스코장에서 폭탄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시민들이었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은 미군이 직접 개입한 전쟁들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막후에서 은밀히 개입했던 전쟁도 많다. 2차대전 뒤 영국은 중동 지역에 갖고 있던 식민지들을 포기해야 했다. 영국은 그 중 팔레스타인으로 알려진 지역의 큼지막한 부분을 떼어내 나치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되어버린 지역에 살던 수십만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집에서 쫓겨났다. 그 결과는 현재까지 5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폭력과 전쟁이다. 갈등의 핵심 지역은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이다. 미국은 강력한 정치적 지원과, 최첨단 무기를 포함해 한해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통해 이스라엘을 후원하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점령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그를 지원하는 미국에 대한 강한 분노를 자아냈다. 이스라엘군과 대치하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죽어갈수록 이 분노는 커져만 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자기 나라 국민들을 억압하는 독재 체제도 포함되어 있다. 70-80년대에 중앙아메리카에서는 부패한 독재정부에 저항하는 시민 운동이 몰아쳤다. 미국 국방부와 CIA는 이들 나라의 군경과 비밀경찰들은 무장시키고 훈련시켜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미국에서 훈련받은 독재정부의 군경은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의 고국으로 돌아가 비무장한 수십만 농민들을 학살했다. 중앙아메리카에서 벌어진 가장 잔악한 양민 학살에 책임이 있는 군사 지도자들 대부분은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아메리카 수련원 (School of the Americas)" 에서 훈련받은 자들이다. 이 학교는 중남미 전역에서 장교들을 받아서 훈련시킨다. 이 학교의 훈련 교본에는 고문과 즉결 처분이 효과적인 방식으로 추천되어 있다. 졸업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국민들을 압살하는 군사 정부를 세우고 있다. 반전운동가들은 이 학교가 학살과 고문을 가르치는 테러리스트 양성 기관이라고 비판한다. 오늘날에도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시민의 저항운동을 피로 진압하는 일이 콜롬비아, 멕시코, 페루, 필리핀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콜롬비아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부패한 정부가 마을들 전체를 몰살시키거나 노조 지도자와 반대파 정치인들 수백명을 학살해온 군사 세력과 공조하고 있다.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채, 학살에 쓰이는 수십만 달러어치의 무기를 제공하며 더욱 더 깊이 개입하고 있다. 또한 미국 CIA와 국방부는 반미 성향의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대리군을 조직하기도 한다. 예컨대 1961년에 미국 군함은 소수의 용병을 쿠바에 상륙시켰는데, 그 목적은 쿠바 혁명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20세기에 벌어진 미국의 다섯번째 쿠바 침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은 침공에 실패해 패퇴하였다. 70-80년대에 CIA는 세계 각국의 게릴라 군대를 훈련시키고 돈을 대고 무장시키느라 바빴다. 여러해 동안 미국은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비롯한 남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 독립 전쟁을 억누르고 식민지를 계속 지배하려던 포르투갈을 지원했다. 1975년 포르투갈에서 민주 혁명이 벌어진 뒤 포르투갈은 식민지를 포기한다고 선언했지만, 미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흑백차별 정책으로 악명 높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와 손을 잡고, 앙골라 독립 정부와 싸우기 위한 용병을 파병했다. 모잠비크의 경우, 미국과 남아공 고위 정치인들과 군사 지도자들은 용병 중에서도 수만명의 농민을 학살한 잔인한 세력을 지원했다. 1979년 미국의 지원을 받던 니카라과의 소모사 가족의 독재체제가 국민들에 의해 무너지자, CIA는 악명 높은 소모사 체제의 군부 잔병들을 끌어모아 온갖 무기를 얹어주며 니카라과로 돌려보냈다. 이들이 미국의 사주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가 자행한 것은 온갖 가지 살인, 약탈, 방화였다. 1979년, 소련은 친소 정권을 세우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러나 소련의 점령은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CIA는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협력하여, 아프간의 무장 저항 세력인 무자헤딘 게릴라에 돈과 무기를 대며 지원했다. 미국과 주변국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무자헤딘은 10여 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소련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CIA와 함께 일하던 협력자 중 하나가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다. 라덴은 CIA와 함께, 무자헤딘이 소련과 싸우는 데 필요한 돈과 무기를 공급했다. 아프간 전쟁을 계기로, 이슬람 지역에서 외부 세력을 몰아내려는 국제이슬람운동은 군사적 양상을 띄게 된다. 이러한 운동 쪽에서 볼 때 미국은 소련과 다름없는 외부 세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오사마 빈 라덴과 무자헤딘, 이들을 지원하던 미국은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슬람 쪽은 이교도를 몰아내고 싶어했고, 미국은 소련을 몰아내고 싶어했던 것이다. 80년대에 레이건은 국방비를 전례없는 수준으로 증폭시키며 군비 경쟁을 강화했다. 미국에 비해 형편없는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던 소련은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허덕였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막대한 군사비 지출은 러시아 사회를 도탄에 빠뜨렸으며, 결국 소련이 무너지는 한 원인이 되었다. 미국은 소련과의 군비 경쟁과 냉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냉전이 끝날 무렵, 사람들은 새롭게 전개될 세계 평화의 시대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의 닫힌 문 뒤에서는 전혀 다른 말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그들은 또다른 전쟁의 시대를 준비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계속) (전쟁에 중독된 미국 [1] 은 다음 페이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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