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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신세계 질서
1989년에 동구공산권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조지 부시(아버지)는 세계 정세를 논의하기 위해 안보보좌관 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은 소련이 더이상 미국의 군사적 진출에 장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들은 지금이야말로 미국의 군사적 힘을 세계에 보여줄 때라는 점에 동의했다. 백악관은 뭔가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주는 승리를 모색하고 있었다. 파나마, 1989: 그 첫번째 대상으로 뽑힌 것은 파나마였다. 미국 군함이 콜롬비아로부터 파나마를 떼어낸 이래, 미국은 아무 때나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이 작은 나라에 미군을 들여보냈다. 조지 부시 역시 1989년에 미군 2만5천명을 파나마로 보냈다. 이유는 마약상들을 체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약은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목적은 파나마 운하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확실히 하고 이 나라에 있는 광대한 군사 기지를 재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미국이 침공하기 직전, 파나마 대통령으로 새로 뽑힌 엔다라는 미 공군 기지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돈세탁으로 악명 높은 은행을 운영하다 미국에 의해 파나마 지도자로 발탁된 자였다. 돈세탁에 파나마 은행만 관여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형 은행 대부분은 파나마시티에 지점을 내고 있었다. 마약 거래를 뿌리뽑는다는 명목으로 들어온 미군의 침공 이후 파나마의 마약 거래와 돈세탁이 오히려 급속히 증가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파나마의 인권 단체들에 따르면 미국의 침공으로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미군 사망자는 26명, 파나마 정부군 사망자는 50명이었다. 나머지는 인구 밀도가 높은 파나마시티와 콜론의 빈민가에 쏟아부은 미군의 폭탄에 희생된 파나마 시민들이었다. 희생자들은 대형 쓰레기 봉투에 담겨 비밀리에 단체로 매장되었다. 이라크, 1991: 미국은 파나마를 침공한 지 1년만에 또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그 규모가 훨씬 컸다. 언제나 그렇듯이, 미국 정부의 홍보 담당자들은 이라크와 벌이는 전쟁이 자유와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무엇을 노리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한 참모는 1990년 타임지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리 멍청이라도 다음과 같은 원칙은 알 수 있는 거죠. 우리는 석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 국무부는 중동 지역의 석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 적이 있다: "중동의 석유는 세계사에서 가장 큰 보물일뿐만 아니라, 엄청난 전략적 가치를 지닌 힘의 원천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 유전 중 65%가 중동 지역에 존재한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유통을 미국이 장악하게 되면 미국은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를 주무를 수 있는 전략적 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중동 지역의 석유에 미국의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고 누차 선언해 왔다. 이는 다시 말하면 중동의 유전을 자기네 사적인 텃밭으로 생각해 왔다는 뜻이다. 헨리 키신저는 "석유는 아랍인들 손에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자원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걸프전을 계획한 것은 1979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대통령 지미 카터는 신속배치군을 편성하면서, "중동 지역의 석유에 대한 위협이 있다면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통해 격퇴하겠다" 라고 선언했었다. 1980년대 초에는 이란이 이 지역에 얽힌 미국의 이익에 대한 주요 위협 세력으로 인식됐다. 따라서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했을 때, 미국은 이를 적극 지원했으며, 이라크군에 각종 첨단 무기를 제공해 이란을 공격하도록 도왔다. 미국 회사들은 심지어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를 만들 수 있는 물질을 이라크에 팔기도 했다. 미국 국방부는 이란군의 배치 상황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위성 사진을 이라크에 제공했으며, 이에 따라 이라크가 유독 가스로 이란을 공격할 때는 딴청을 피웠다. 1987년에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이라크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물론 이라크 편에 서서였는데, 당시 이라크의 우방이었던 쿠웨이트의 석유 탱크를 지키기 위해 함대를 파견했던 것이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국 해군은 이란의 송유 시설을 파괴하고 이란 쾌속정들을 몇 척 침몰시켰다. 또한 이란 국적의 민간 여객기에 미사일을 발사해 민간인 탑승객과 승무원 290명 전원을 폭사시켰다.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자신들이 군사적으로 원조한 결과로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이라크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에 위협적인 요소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제 미국은 이라크를 무장해제시키기 위해서 무언가 조처를 취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명분이 필요했으며, 그 명분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써 주어졌다. 실제로 미국이 이라크로 하여금 쿠웨이트를 침공하도록 부추기고 유혹한 증거가 있다. 우선, 당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는 서로 연합하여 이라크에 엄청난 경제 재제를 가하고 있었는데, 이는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을 고려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 침공 계획을 미국에 사전 통보했을 때, 미국은 실질적으로 후세인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1990년 7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로 진주하기 8일 전에 주이라크 미국 대사인 에이프릴 글래스피는 후세인과 가진 회담에서 "미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와 벌이고 있는 국경 분쟁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갖고 있지 않다" 라고 명확히 말했다. 그는 이런 입장이 미국 국무부의 공식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이것은 두 나라 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말로, 바로 후세인이 듣고 싶어하던 대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이라크가 쿠웨이트로 진군해가자마자 부시는 대규모 전쟁을 선언했고 어떠한 협상의 가능성도 모두 닫아버렸다. 후세인은 중동평화회담이 소집된다면 이라크로부터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제안했으나 미국은 일언지하게 거절했다. 부시는 이 갈등이 협상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음을 분명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 볼 때 협상을 통한 해결책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필요한 것은 협상이 아니라 신속하고 결정적인 타격과 승리였다. 이라크는 전역에 폭격을 당해 산업시대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수만명의 이라크 군인들은 산 채로 화장당했다. 미국이 이 전쟁을 통해 세계에 선언한 메세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말한 것은 이루어진다." 미국은 이라크에 역사상 가장 집중적인 폭격을 쏟아부었다. 사용된 무기는 재래식 포탄, 인체를 갈갈이 찢는 지뢰, 네이팜탄, 인체에 달라붙어 화상을 일으키는 인 폭탄, 작은 핵폭탄과 유사한 기화폭탄 등이었다. 곧이어 미국은 열화우라늄탄까지 사용했는데, 이 방사능탄은 현재 이라크인과 미군들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는 암과 기형아 출산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바그다드와 바스라는 폭격으로 철처히 파괴되었고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가공할만한 폭격 뒤 부시가 지상군을 투입했을 때, 이라크는 이미 쿠웨이트로부터 군대를 철수시키고 있었다. 결국 미군 지상군이 투입된 것은 이라크군을 쿠웨이트로부터 물리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라크로 돌아가는 길목은 봉쇄됐으며,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던 수만명의 이라크군은 미군에 의해 체계적으로 학살됐다. 다른 곳에서는 이라크 수비 병력을 깨부순다는 작전 아래, 미군의 탱크와 불도저가 참호에 들어 있던 수천의 이라크군을 산채로 매장했다. 물론 의도적인 학살이었다. 걸프전에서 희생된 이라크인은 모두 15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비극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됐다. 미국은 이라크의 전력과 상하수도 체계를 철처히 파괴했으며, 이로 인해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하여 전쟁 때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 10년 넘도록 유사 이래 최악의 경제 재제를 가해, 가뜩이나 피폐해진 이라크 경제를 더욱 목졸랐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라크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1999년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는 이라크의 영아 사망률이 전쟁 이래 두 배로 늘었다고 보고했다. 전쟁과 경제 재제로 인한 영양 부족과 건강 상황 악화가 그 원인이었다. 그 결과로 모두 50만의 또다른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달에 5천2백명의 어린이가 숨진 셈이다. 그러나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폭격은 계속됐다. 물론 미국에는 걸프전을 위대한 승리라고 간주하고 축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 이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우선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그 첫번째이다. 이들은 석유에 대한 매점매석, 투기와 가격 조작을 통해 횡재에 가까운 엄청난 이익을 거두었다 (엑손사 수익 75% 증가, 모빌사 1/4분기에 수익 45.6% 증가, 아모코사 이익 68.6% 폭등, 텍사코사 26.5%, 쉐브론 17.8% 증가...).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미국 석유회사들의 중동 지역 원유에 대한 장악력이 한층 강해졌다는 점이다. 과거 영국계 석유회사들과 연결되고 있었던 쿠웨이트, 사우디, 기타 다른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의 왕족은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 석유회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 긴밀한 관계는 미국 석유회사의 소유주들과 아랍의 왕족들 양쪽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아랍 국가의 대다수 민중은 여전히 헐벗고 굶주린 상태로 내팽개쳐졌다. 걸프전의 결과로 미군은 아랍인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영구히 주둔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의 두번째 수혜자는 미국 은행들이었다. 이들은 미국 석유회사들과 아랍 왕족들 모두를 고객으로 하고 있다. 아랍 왕족들은 국가 재산을 나라의 발전을 위해 쓰는 대신 대부분 서구계 은행의 개인 계좌에 넣어두고 있다. 중동의 석유에서 나온 약 9천억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금액이 시티뱅크, 모간체이스 등 미국과 유럽, 일본 은행의 금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쿠웨이트를 비롯한 아랍 왕족의 운명은 이같은 은행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세번째 수혜자는 전후 처리에 참여하는 기업들이었다. 전쟁 후 대규모 건설회사나 석유 관련 회사를 비롯한 민간 기업들은 1천억달러에 달하는 쿠웨이트 재건 사업에서 한 몫을 차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달려들었다. 베첼, 핼리버튼, AT&T, 모토롤라, 캐터필라 같은 미국 대기업들이 계약의 대부분을 따낸 것은 당연하다. 네번째로 전쟁에서 직접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건진 미국 방위산업체를 빼놓을 수 없다. 제너럴다이내믹스, 제너럴일렉트릭, 보잉사와 그 관련 업체들이 그들이다. 바그다드 하늘 위로 미사일이 날아가고 이라크 민간인 주택 지역에 포탄이 쏟아질 때마다 그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익을 계산하기 바빴다. 걸프전을 바라보는 그들의 뇌는 다름아닌 수퍼마켓의 금전등록기였던 것이다. 걸프전에서 그들이 만든 무기가 수많은 사람을 싹쓸이할 수 있음이 증명된 뒤, 이들 무기 업체들은 더 많은 무기를 팔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제 고객은 미국 의회나 국방부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독재자들, 정치인들, 관료들이었다. 미국의 대외 무기 판매는 1989년의 80억달러에서 1991년 4백억 달러로 불과 2년만에 다섯 배나 증가했다. 현재 미국은 역사상 어떤 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무기를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외국에 군사 원조와 차관을 빌려주면서까지 무기를 수출하는데, 그 결과 나라가 가난하여 국민들을 제대로 먹일 수 없는 나라에까지 록히드마틴사가 제조한 전투기가 수출되고 있다. 물론 미국 정부는 겉으로는 국제 무기 거래와 중동 지역의 군사화를 경계하는 화려한 성명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런 위선적인 발표와는 달리, 미국 국방부 관계자들은 중동 지역 국가들에게 전투기, 탱크, 헬리콥터와 각종 폭탄을 파느라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들의 주요 고객은 이스라엘과 걸프 연안 왕국들, 이집트와 터키였다. 걸프전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거둔 이들 회사들이 전쟁 직후 미국 여러 도시에서 벌어진 승전 기념식과 퍼레이드를 적극 후원하며 뒷돈을 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코소보, 1999: 1990년대 말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지역에 거주하던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수년 동안 계속된 세르비아계 정부의 가혹 정치를 참지 못하고 분리 독립 전쟁을 시작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가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소수계를 지원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미국은 자기 필요에 따라 나라가 쪼개질 상황에 처한 국가들을 선별적으로 지원해왔다. 예컨대 미국은 이라크와 이란의 쿠르드족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했지만, 미국의 우방인 터키 국경 부근의 쿠르드족에 대해서는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을 분쇄하도록 수많은 무기를 공급했다. 미국의 도움에 힘입어 터키 정부는 수만명의 쿠르드족을 사살했다. 유고슬라비아의 통치자 밀로세비치가 동유럽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미국에 점점 비우호적으로 되고 있었기 때문에, 유고슬라비아를 쪼개는 것은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결국 클린턴 행정부는 마약 거래와 인종적 극단주의, 잔인성으로 악명높던 코소보 해방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해오던 전례대로, 미국은 유고슬라비아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의 최후 통첩을 보냈다. 그 내용은 첫째, 미국이 중심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코소보를 점령한다, 둘째, 나토군은 유고슬라비아 전역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셋째, 나토가 운영하는 정부의 비용을 유고슬라비아가 상당히 부담해야 한다,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폭격하겠다는 것이었다. 나토의 폭격은 소규모이고 상투적인 유고슬라비아의 폭동 진압작전을 대규모적인 인종 청소로 비화시켰다. 폭격이 시작되자 세르비아계 군인과 민병들은 알바니아계 주민 수십만명을 나라 밖으로 밀어내고 수천명을 학살했다. 나토의 점령 아래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되돌아오자, 이번에는 세르비아계 주민들과 집시들이 학살되거나 쫓겨났다. 결국 이 전쟁은 미국의 정치적 목적에만 도움이 되었을 뿐, 인종 갈등의 당사자인 양측 모두에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고통을 안겼을 뿐만 아니라 인종 적대심을 급격히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전쟁에 중독된 미국 [1] 과 [2] 는 아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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