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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원인이기도 하고 결..
by 긁적 at 15:43 아직 연애는 하지 않는 .. by deulpul at 13:37 그런 점도 중요한 원인일 .. by deulpul at 13:34 아, 바로 맞추셨습니다... by deulpul at 13:27 김연아도 연예인에 넣어.. by 검투사 at 13:00 최근 등록된 트랙백
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by 민노씨.네 일년이 다 된 글인데 새삼.. by 물리학 흠냐, 울 마눌은 백설공.. by 뒤돌아 보지 않는다, 후.. 검찰과 기자, 국민 세금.. by 자그니의 시크릿 스크립팅.. 전국국어대회 '4대강' 토.. by Green Monkey Blog**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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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푸르고 아름다워야 할 계절의 여왕 5월. 그 5월의 서울 하늘은 참으로 끔찍스러웠다. 남산이며 북한산은 고사하고 중량천 너머의 아파트나 도림천 바로 건너편 빌딩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극단적인 대기 오염 속에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일까. 희뿌연 연무를 헤치고 한강변이나 한강 지천변을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풀뿌리처럼 강인한 생명력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나의 집은 의정부다. 십수년을 그 곳에 살아오면서 가장 기꺼운 점은 수락과 도봉, 백운대와 인수봉을 아우르는 한수 이북의 수도권 명산들을 통학 때나 출퇴근 때마다 코앞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 산봉우리들은 안개인지 연무인지 스모그인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수상한 매체에 가로막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락과 도봉을 지호지간으로 지나가는 전철에서 차창에 코를 붙여가며 내다보아도 산은 희뿌연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산유곡에서 도닦는 생활 몇 년에 심신의 면역 체계가 형편없이 퇴화된 모양이었다. 그럭저럭 거르지 않으려고 애쓴 운동 탓에 충분히 미쁘다고 생각했던 나의 몸피는 잘 벼린 칼처럼 예리하게 인후와 허파를 파고드는 서울의 오염된 공기 한 방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쏘는 듯이 따가운 목에서 시작된 병증은 즉시 몸살로 확대되었다가, 돌아오기 직전에는 각종 내외부 신체 기관의 이상 현상으로 번졌다. 약 먹기를 병으로 끙끙 앓기보다 더 싫어하는 편이지만, 약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약을 아무리 먹어도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퇴화된 면역 기능, 퇴화된 악바리 근성으로서는 잠시나마 서울을 살아내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병은 약으로써가 아니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옴으로써 낫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무거운 몸과 씨름하고 약봉지에 기대어 날짜를 보내다보니 꼭 했어야 하는 일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중요한 일까지 하나 꼬이는 바람에, 마음만 속타고 바빴다. 가장 아쉬운 일은 역시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꼼꼼히 찾아다니며 생사를 알리고 거취를 보고드렸어야 하는 분들 - 회사의 선후배들, 학교 선후배들, 학교와 사회에서 만난 스승님들, 멀고 가까운 친척들 - 대부분을 뵙지 못하고 왔다. 언제나 빚만 지고 산다. 2년 전보다 좀더 늙으신 부모님 얼굴은 일부러 마주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눈에 들어왔다. 짜장면.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낫다. 짜장면은 눈이 번쩍 뜨이게 반가운 벗 중 하나였다. 작정하고 찾아간 일식집은 음식과 서비스 모두에서 실망만을 안겨줬지만, 짜장면은 어느 집에서 시켜도, 어느 집엘 들어가도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었다. 다시 돌아온 지 불과 며칠, 슬리퍼만 발에 꿰고 주섬주섬 나가면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이 벌써 그립다. 돌아오는 길, 태풍 탓이었는지 비행기가 연발이 되는 바람에 극한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내가 사는 심산유곡의 공항까지 다섯 대의 비행기를 네 차례에 걸쳐 바꿔타고 왔다면 믿기겠는가. 도쿄와 호놀룰루, 시애틀을 비롯한 다섯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총 여행 시간은 무려 36시간이었다. 무슨 우주인이 달나라 갔다 오냐. 일정이 틀어지니 그에 따라 온갖 자질구레한 문제가 연속되었다. 그 중에서도 귀환 과정의 막심한 정서적 소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역시 미국으로 들어오는 입국항이던 호놀룰루 공항의 싸가지없고 무지하기 짝이 없는 입국심사관이었다. 지문? 사진? 비자면제 협정에 따라 무비자 여권을 흔들며 몰려드는 일본인 관광객 사이에 낑겨 서서 (내가 탄 비행기는 도쿄에서 하와이로 오는 것이었다) 내가 왜 미국에 가야 하는지, 언제 돌아올 것인지를 세계 일등 시민인 미국 심사관에게 자질구레 설명하고 있다는 자괴심 때문에, 지문을 찍고 사진을 찍히면서도 그에 대한 별다른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쓰레기차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그 속에 든 쓰레기 하나하나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심산유곡으로 다시 돌아왔다. 첫 느낌은 조용하다. 출근 시간을 갓 넘긴 시간이었는데도, 조용하다. 그동안, 몸보다는 마음이, 귀보다는 정서가 온통 시끌벅적했으니 당연한 느낌이겠다. 나의 집은 의정부다. 내가 나의 집에 머무는 동안 어머니는 자기 집을 찾아온 아들을 위해 온갖 애를 쓰셨지만, 나는 나의 의정부 집이 낯설고 불편했다. 이 심산유곡의 집, 내가 등을 붙이고 사는 이곳이 지금은 나를 안온하게 맞아 감싸는 나의 집이다. 언젠가는 분명히 떠나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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