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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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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람들, 신(神) 무척 좋아한다. 엄격한 제정분리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미국인의 일상 생활에서는 물론 국가 시스템 도처에서 갓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화폐에도 100달러짜리 지폐에서부터 1센트짜리 페니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의 신 안에서 (In God we trust)" 라고 새겨져 있다.
9-11이 있은 뒤로 새로 구경하게 된 갓이 있다. 각종 프로스포츠 경기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갓이다. 경기 시작 전에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 (The Star Spangled Banner)" 를 연주하고 부르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경기 중간에, 예컨대 야구 경기의 경우 5회인가 6회인가가 끝나고 나서 갑자기 가수가 나와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God Bless America)" 를 불러제낀다. 가수는 성악가일 때도 있고 락커일 때도 있고 재즈 싱어일 때도 있고 그저 잘 나가는 인기 연예인일 때도 있다. 이 때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숨을 죽이다가, 노래가 끝날 때쯤이면 또 일제히 환호를 지른다. 이 때쯤 해서 스타디움 위 하늘에 공군 제트기 편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모습도 단골 메뉴다. 경기가 한창 흥이 오를 무렵 그 맥을 딱 끊는 "미국을 축복하소서" 는 정말 짜증나는 것이다. 이건 무슨 정치 선전장도 아니고 선거 유세장도 아니고 현충일 기념식장도 아니고 그냥 스포츠가 아니냐 말이다. 물론 동서고금을 훑어보면 스포츠의 정치화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은 확실하다. 또 많은 사람이 모여 열광하는 운동 경기장은 밴드웨건 효과1를 활용하여 대중적 애국주의를 이끌어 내기에 딱 좋은 마당임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노래 하나로 스포츠 경기를 일거에 애국주의의 마당으로 돌려버리려는 계산은 정말 얄미운 것이었다. 또 플래스틱 맥주컵을 흔들며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난리치다가, 노래 하나에 무슨 애국지사 같은 얼굴들을 하고 일제히 도열하는 관중들도 한심하고, 순수한(?) 운동 경기에 살상 무기(전투기)가 날아다니는 것도 보기 좋지 않았다. 그 애국쇼 중에서 가장 보기(듣기) 싫은 것은 바로 저 노래,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자체였다. 왜? 스포츠 마당에까지 애국주의를 끌고 들어온 것은 물론 전적으로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라서였다. 그런데, 신이 전쟁의 한 당사자인 미국을 축복하라니, 다른 쪽은 어쩌란 말이냐. 더구나 이 전쟁은 별다른 명분도 없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들의 백성 머리 위로 그 백성들이 꿈도 꾸어보지 못하는 금액의 비싼 폭탄들을 쏟아붓는 일방적인 전쟁이 아니던가. 세계 도처에서 미국을 지탄하고 비난하는 원성이 자자한 전쟁이 아닌가. 말하자면 신이 축복하기는 매우 어려운 전쟁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런데도, 예컨대 부시는 입을 열 때마다 저 문구,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를 달고 다녔다. 결국 미국인들은 원하는 것은 "신이여, 미국만을 축복하소서, 다른 곳들은 관두시구요 (God bless America, and no place else)" 가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미국이 바라왔던 것은 이런 이기적인 신이 아니었던가. 부유하고 풍족한 자기 나라는 더욱 더 축복하고, 헐벗고 굶주린 다른 세계는 신경쓰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식 말이다. ![]() 위 사진은 미국 코미디언 크리스 락이 감독하고 주연한 2003년 풍자 영화 <나라의 우두머리> (Head of State) 의 한 장면이다. 별볼일없는 워싱턴 DC의 시의원 메이스 길리엄은 얼떨결에 중앙 정치에 휘말려, 2004년 대통령선거의 후보가 된다. 그저 "땜빵용" 이었던 길리엄은 특유의 풀뿌리 유세를 펼쳐, 강력한 정치가였던 상대당의 브라이언 루이스를 꺾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다. 영화는 비평가들에게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한국 관객들도 재미없어 한 모양이지만, 화려한 영광 뒤에 감춰진 미국 사회의 병폐를 고려하면서 보면 꽤 재미있다. 영화 중간중간에 놓치기 쉬운 재미거리는 궁금하신 분들께만 알려드리기로 한다. 사진 속의 장면은 길리엄이 아직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 대책없는 시의원일 때, 지역구에서 벌어진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모습이다. 그의 뒤로 우연히, 이미 대선 후보로 선거 운동에 뛰어든 상대 당 루이스의 선거 포스터가 걸려 있다. 그 포스터를 잘 보면 다음과 같이 씌여 있다: "신이여, 미국만을 축복하소서, 다른 곳들은 관두시구요! (God bless America, and no place else!)" No 밑에는 아예 밑줄까지 쳐져 있다. 이 슬로건은 공화당 후보로 암시되는 루이스가 선거 운동 내내 써먹은 대표적 선거 구호다. 비록 코메디 영화에서 그려진 것이지만,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정말 미국은 신이 세상 다른 곳은 다 팽개치고 자기 나라만 돌보기를 바라는 것 같다. 헐벗고 굶주린 많은 곳에서 신은 매우 바쁘실텐데, 미국은 엄청난 재산을 들여 엄청난 학살 무기를 만들고 쓰면서, 신이 그 과정에 축복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미국인이 말하는 갓은 대체 미국 국적자이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영화 말미에서 길리엄은 루이스와 후보자간 공개 토론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신이여, 미국만을 축복하소서, 다른 곳들은 관두시구요!" 라고 하지요. 그건 잘못됐어요.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거에요. "신이여, 하이티를 축복하소서!"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 "신이여, 자메이카를 축복하소서!" ... 다시 말해,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 전 세계도 함께 축복하소서!" 라고 말이지요... 1. 밴드웨건 효과 (Bandwagon effect):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많은 사람이 믿거나 하는 일을 무비판적으로 따라 믿(하)게 된다. 그렇게 할 경우의 장단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중을 따라가게 되는데, 그 결과, 예컨대 사람들은 이길 만한 후보에게 투표하게 되며,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전체주의에서 대중 동원을 조직할 때 유효하게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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