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 <문화와 제국주의> 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 는 2003년 9월25일 세상을 떠났다. 1963년에 뉴욕의 콜럼비아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대학 문을 떠난 적이 없지만, 그가 펴낸 책들 때문에 그는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당대의 지성으로 존경받았다. 특히 서구 문화의 일방적 범람을 비판하는 문화 상대주의자들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미국 서부 버클리에서부터 인도의 뭄바이 (봄베이) 에 이르기까지 그를 영웅으로 존경하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35년에 침례교도 집에서 태어난 성공회 기독교도이면서도,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아랍인들의 고통을 양심의 명령에 따라 줄기차게 다루어 왔다. 팔레스타인의 비공식 대변인이라는 칭호가 따라다녔다. 물론 그 결과 적도 많이 만들었다. 사이드의 적들은 그를 "테러 교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논리에 대한 지적(知的)인 도전을 즐겼다고 한다. 어떤 평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이드는 지적인 불일치에 즐거워했습니다. 반대나 불일치에 대한 용인이 지적인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는 필요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이지요. (He enjoyed intellectual disagreement, seeing the toleration of dissent and even discord within the scholary community as the necessary condition for the latter's survival.)
인텔렉추얼 디스어그리먼트. 정련된 지적 공격은 공격받는 사람에게도 정말 즐길만한 것일런지 모른다. 공방의 결과 서로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견과 예단과 독선만으로 무장한 억지에는 대체 어떠한 미덕이 존재할 것인가. 토론 방식 중에서도 가장 저열한 방법으로서, 스스로 아무런 논리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주요한 방법인 말꼬리 잡기를 유일한 존재의 의미로 삼는 한심한 인간 군상들을 보니 사이드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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