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엘 안드레아스의 책 <전쟁 중독: 미국은 왜 군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Joel Andreas, 2003, Addicted to War: Why the U.S. Can't Kick Militarism, AK Press) 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1], [2],[3], [4], [5] 는 아래에 있습니다.
제6장: 군국주의와 미디어
어떤 사람들에게 전쟁은 막대한 수익이나 해외 투자 기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인 대부분에게 전쟁은 높은 세금과 시체를 담는 검은 자루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전쟁으로 떼돈을 버는 정치가나 기업가들보다 전쟁에 덜 적극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정부와 그 대변인들은 일반 시민을 전쟁에 참여시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전쟁을 미국의 상징색인 빨강, 파랑, 하양으로 포장하여 애국주의 상품을 만들어 국민들 앞에 들이민다. 또 적에 대해서는 악마나 괴물의 이미지를 덧칠한다.
윌리암 랜돌프 허스트1 이래, 전쟁을 옹호하는 메세지들은 대중 매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인쇄 매체나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새로이 등장하는 군산복합체에 수렴하는 현상은 2차대전 이후 나타난 것이다.
1950년에 제너럴일렉트릭(GE) 의 대표이사였던 찰즈 윌슨은 미국 신문경영자협회에서 한 연설에서, 언론을 통한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전쟁 수행에 필수적이며,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것만이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GE 는 세계 여러 곳에 투자하고 있었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군산복합체 중의 하나다.
오늘날 GE 는 세번째로 큰 방위 계약 업체로서, 해마다 수십억 달러를 긁어모으고 있다. GE 가 생산, 납품하는 품목은 모든 핵무기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군용기의 제트 엔진을 비롯해 군에서 쓰이는 모든 전기 장치 등이다. 또한 워싱턴주에 있는 핸포드 핵무기 공장에서 수백만 큐리의 치명적인 방사능을 비밀리에 유출시킨 것도 이 회사이며, 미국 전역에 결함 투성이의 핵발전소를 세운 것도 이 회사다.
윌슨 이래로 GE 는 언론을 이용하는 데 매우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1954년에 이 회사는 삼류 영화배우이던 로널드 레이건을 회사의 대변인으로 채용했다. 회사는 레이건 부부에게 모든 것이 전기로 작동되는 집을 제공했으며, "GE 극장" 이라는 제목으로 레이건이 출연하는 텔레비전 쇼도 만들었다. 또 회사의 정치적 입장을 미국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The Speech" 라는 메세지를 작성해서, 레이건을 사방팔방으로 보내 이를 홍보하게 만들었다.
한편 GE 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사도 부지런히 사들였다. 결국 1986년에 GE 는 텔레비전 네트워크인 NBC 를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1950년대에 찰즈 윌슨이 제시한 대로, NBC 는 여론을 선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물론 이 방송사만은 아니다. 당신이 텔레비전을 켜면 어느 채널을 틀어도 꼭같은 메세지가 나오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걸프전이 끝난 뒤 부시 행정부의 전쟁 기획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하스는 유명 언론인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전쟁 수행에 언론이 협조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텔레비전은 우리의 정책을 홍보하는 데 가장 주요한 수단이 됐습니다." 사실 그러했다. 전쟁 중에 미국인은 석유회사 엑손과 GE 가 제공하고 국방부가 검열한 전쟁 보도를 24시간 내내 볼 수 있었다.
전쟁 보도에 관한 한,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중립성을 지키는 것처럼 위장했던 가면조차 모두 벗어던진다. PBS 와 NBC 뉴스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로렌스 그로스만은 언론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대통령의 일은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고, 언론의 일은 지도자가 설정한 의제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왜 모든 방송사는 앵무새처럼 꼭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왜 방송사들은 정부가 전쟁을 결정하기만 하면 전쟁 열병에 감염되는 것일까? 이것은 누가 방송사를 잡고 통제하는가와 관련이 있는 문제다.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미국의 몇몇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앞에서 본 대로 NBC 는 GE 가 소유하고 있으며, CBS 는 종합 매체 회사인 Viacom 이, ABC 는 디즈니사가, CNN 은 AOL 타임워너가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들의 이사회 구성원들은 다시 군수 산업이나 전세계에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의 이사들이기도 하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 EDS, 루슨트테크놀러지, 프루덴셜, 제록스, JP 모건체이스, 크라이슬러, 매리어트, 시티뱅크 등이 그들이다.
전쟁이든 평화든 또 다른 어떤 것이든간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뉴스들은 모두 이들 대기업이 소유한 뉴스 매체를 거쳐서 전달된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뉴스 매체들도 여론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매체의 영향력이 언제나 완벽한 것은 아닌데, 그것은 군국주의화와 전쟁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양심의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1.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 광산과 농장으로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집안에서 태어나 후계자가 된 사람으로, 20세기 초기에 미국에 거대한 언론 왕국을 건설했다. 23세 때, 아버지가 노름빚 대신 인수한 신문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의 경영자가 된 것이 그 시초였다. 전성기에 그는 주요 신문 28개, 잡지 18개와 몇몇 라디오방송사, 영화사를 소유했다. 그는 1930년대에 좌익 운동에 반대하여 나치를 옹호하였으며, 1940년대에는 반공산주의 운동의 선봉에 섰다. 선정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말은 원래 조셉 퓰리처의 언론 관행을 묘사하기 위해 등장했으나, 오늘날에는 허스트가 황색 저널리즘의 대표자로 인식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미국 전쟁 때, 쿠바의 하바나에 있던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돌아오려 하자, 허스트는 "당신은 그림만 준비하시오. 전쟁은 내가 준비할 테니" 했다고 한다. 1941년 오손 웰스가 만든 <시민 케인> 이 바로 허스트를 겨냥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허스트는 이 영화의 배급과 상영을 막기 위해 돈과 폭력과 FBI 를 동원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역주)
제7장: 군국주의화에 대한 저항
미국 전체가 전쟁 중독자들로만 가득찬 것은 아니다. 19세기 멕시코-미국 전쟁과 스페인-미국 전쟁 이래, 미국의 대외 군사 정책에 대한 강력한 반대 역시 형성되어 왔다. 미국의 반전운동은 필리핀을 점령한 전쟁을 계기로 강력하게 성장했다. 1900년에 반제동맹의 부회장이었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의 개입은 필리핀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점령하는 것이었다. 나는 독수리가 그의 발톱으로 다른 나라 땅을 움켜쥐는 것에 반대한다. 또 나는 우리의 명민한 젊은이들을 더러운 깃발을 앞세우고 구식 소총을 쥐어주어 필리핀 땅으로 내모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
언론과 행정부가 전쟁에 대한 지지를 끌어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한국전 때로 올라가보자. 처음에 정부와 언론의 노력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사자들의 시신을 담은 시체 행낭이 되돌아오기 시작하자, 대다수 여론은 반전으로 돌아섰다.
베트남전에서 정부와 언론은 또다시 전쟁 지지 여론을 끌어내기 위해 기를 썼다. 그러나 전쟁이 점점 격화됨에 따라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반전운동이 등장했다. 초기의 반전운동은 비록 소수이지만 결연한 의지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되면서, 반전 여론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1969년까지 모두 75만명이 워싱턴에 모여 행진을 벌였고, 미국 각지에서 반전 행진에 참가한 사람 수는 수백만이었다.
1970년 5월, 경찰과 군대는 반전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오하이오의 켄트대학과 미시시피의 잭슨대학에서 각각 4명과 2명이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그 직후, 미국 전역의 4백개 대학에서 동맹 파업이 벌어졌다. 이것은 미국 대학 사상 첫 학생 총파업이었다. 1971년 8월에 남미 출신 단체들의 반전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발포하여 세 명이 숨졌을 때는 로스앤젤레스 동부에서 폭동이 벌어져서 사흘 동안 계속됐다.
전쟁에 대한 저항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전쟁 관련 세금을 내기를 거부했다. 젊은이들은 징병 카드를 불살랐다. 징병 거부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백인들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 라고 선언한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였다.
또 사람들은 전쟁에 내보낼 병력과 장비를 실은 기차를 가로막았다. 1971년에 반전 시위대가 워싱턴을 사흘 동안 마비시켰을 때, 모두 1만4천명이 체포되었다. 이는 미국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체포자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국방부를 더욱 당황시킨 것은 베트남 현지의 병사들 사이에서 훈련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병사들은 총을 들고 싸워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총을 들지 않았다. 1960년대 말에 이르면 일반 병사들과 장교들 사이의 갈등이 실질적인 내전의 형태로 부글거리고 있었다. 한 군사 지도자는 국방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모든 증거와 상황으로 볼 때, 현재 베트남에 진주해 있는 우리 군대는 붕괴 상태에 있습니다. 병사 개개인은 전투를 피하거나 거부할뿐 아니라, 직속 상관이나 지원부대 상관을 살해하고 마약에 빠져 있으며 폭동의 상태로 사기가 저하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속속 탈영하거나 전선을 무단 이탈했으며, 군대 내부에서 저항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미국 본토와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미군 기지에서 수백 종의 지하 신문들이 발간되어 유통되었다. 병사 조직에서 파견된 군인들이 반전 시위대의 선두에 섰다. 베트남 전선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전쟁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미국 사회에 알렸으며, 그들 스스로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조직을 결성했다. 1971년 4월에는 1천명 이상의 참전 용사들이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참전의 대가로 받은 훈장을 내팽개쳤다. 1960년대 말에 이르면, 미국 사회 여론의 절대 다수는 전쟁 반대로 돌아섰다.
세계를 무한 전쟁으로 몰고 가는 부시와 체니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은 당시 함께 형성되던 흑인이나 남미계, 아메리칸인디언계 등 소수 민족의 인권운동 및 여성해방운동과 맞물려, 사람들로 하여금 부정직하고 불공평한 미국 사회에 대해 눈을 뜨게 만들었다. 전쟁에 대한 반전 운동은 정부로 하여금 베트남에서 손을 떼게 만든 큰 요인 중 하나였다. 베트남전의 결과, 미국인들 사이에 광범위한 반군국주의 정서가 형성되었으며, 워싱턴의 관리들은 이를 "베트남증후군" 이라 불렀다.
아버지 부시가 페르시아만에 군대를 파견했을 때 미국인들은 매우 우려했으며, 대다수는 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강력한 반전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조직되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수십만 명의 반전 시위대가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의 거리를 메웠다. 정부는 전쟁에 찬성하는 시위대를 조직했으나, 소수만이 참여했을 뿐이었다.
미군이 이라크에 포탄을 쏟아붓기 시작하자, 전쟁의 홍보 역할을 하는 미디어는 대대적인 전쟁 지지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반전운동이 미군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전쟁을 일으킨 부시 행정부였으며, 병사들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그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임은 명백했다.
부시는 미군 희생자를 최소화시키며 전쟁을 신속히 끝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론은 곧 반전으로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라크가 미국과 싸우기보다 쿠웨이트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고, 뒤이어 미국의 일방적인 학살로 전쟁이 끝나자, 부시는 행복감에 도취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베트남증후군" 을 일거에 박살내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들인 조지 W 부시는 군국주의화에 대한 반대를 깨버렸다는 아버지의 생각을 시험해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이 많은 희생자를 내는 장기 전쟁이 될 것이라고 미국인들에게 선언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위협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기존 정부를 테러하려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만일 부시가 제정신이라면, 그는 아마 무한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테러리즘은 전쟁의 한 전술로서, 전쟁과 마찬가지로 항상 우리 세계에 존재해 왔으며, 아마 최소한 우리 평생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부시의 선언은 그저 단순한 오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한 부시나 그의 참모들이 실제로 한 나라 한 나라씩 골라가며 폭격을 퍼부어, 이 세기를 전쟁이 그치지 않는 세기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미국인에 대한 보복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부통령 딕 체니를 보면, 그는 이러한 쪽으로 정리하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9-11 공격 직후 갑자기 사라졌다가 비밀 벙커로부터 홀연히 등장한 그는 "테러와의 전쟁" 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은 아마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 세대에는 말이지요." 그는 이러한 무한 전쟁의 한 부분으로서, 미국인들이 각자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나라 밖의 군인 희생자보다 나라 내부의 희생자 수가 더 많이 발생하는 상황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시민들이 각종 공격적인 보안 검색과 기본권의 침해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9-11 직후 테러 공격에 놀란 미국인들은 부시의 호전적인 단어에 공명을 보냈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 이 연장되어도 전쟁에 대한 초기 지지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은 부시조차 우려하고 있는 바이다.
부시와 체니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미래는 매우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것이다. 전쟁과, 그 전쟁의 결과 다시 테러가 벌어지고, 그 테러를 응징하기 위해 다시 전쟁이 발생하고, 그 전쟁이 다시 더 많은 테러를 불러일으키는, 테러와 전쟁의 상승이 그것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같은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은 불명예스러운 미국 군국주의화의 연장에 서 있다. 군국주의는 제국주의를 실현하는 피의 부수 과정이다. 당신은 정말로 이러한 전통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정부는 전쟁에 대한 광기를 부채질하며, 당신에게 그 전선에 서라고 요구한다. 전선이란 당신이 폭격기 조종사가 되어 포탄을 퍼붓는 이국의 하늘이 될지도 모르고, 영문 모르고 죽음을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뉴욕 한가운데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대체 미국의 전쟁 중독이 미국인과 전세계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얼마나 많은 돈이 여기에 낭비되고 있는가. 누가 그 과실을 챙겨가는가. 누가 그 돈을 부담하는가. 그리고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행동하라. 전쟁에 미친 쓰레기들을 차버리라.
이것으로 <전쟁 중독: 미국은 왜 군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를 마무리합니다. 책의 다음 장은 군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도와줄 여러 반전 단체나 관련 조직들의 리스트를 싣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영어 스크립트 사이트를 찾아보시거나 한국어 번역판을 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을 훑어보고 옮기면서 새로 많은 사실을 알게 됐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온통 전쟁으로 미쳐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 사회에 필자와 같은 사람이 존재함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 생각도 났습니다. 우연히도, 이 책의 필자인 안드레아스와 무어 감독의 고향은 가까운 곳입니다. 미래의 역사에서 미국은 희망인가, 하고 질문한 이삼성 교수의 물음도 계속 머리에 떠돌았습니다 (이것은 곧 간단히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이 책은 만화입니다. 만화 치고 그림은 참 보잘것 없습니다. 더구나 그림보다 글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 충격은 대단합니다. 만화를 보면서 충격을 받기는 슈피겔만의 만화 <쥐>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마존의 독자 리뷰를 보면 어떤 이는 이 책이 불확실한 사실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겐 그 비난이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이 거짓말로 가득차 있다는 공화당 쪽의 주장과 비슷한 것으로 들립니다. 링컨이 말했듯이, 잠시 여러 사람을 속일 수 있거나 오래 소수의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여러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 초판이 발간된 지는 10년이 넘었으며, 7만부 이상이 팔렸고 수십만 명이 책을 읽었습니다. 충분히 오랜 기간이며 충분히 많은 사람들입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6장: 군국주의와 미디어
어떤 사람들에게 전쟁은 막대한 수익이나 해외 투자 기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인 대부분에게 전쟁은 높은 세금과 시체를 담는 검은 자루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전쟁으로 떼돈을 버는 정치가나 기업가들보다 전쟁에 덜 적극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정부와 그 대변인들은 일반 시민을 전쟁에 참여시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전쟁을 미국의 상징색인 빨강, 파랑, 하양으로 포장하여 애국주의 상품을 만들어 국민들 앞에 들이민다. 또 적에 대해서는 악마나 괴물의 이미지를 덧칠한다.
윌리암 랜돌프 허스트1 이래, 전쟁을 옹호하는 메세지들은 대중 매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인쇄 매체나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새로이 등장하는 군산복합체에 수렴하는 현상은 2차대전 이후 나타난 것이다.
1950년에 제너럴일렉트릭(GE) 의 대표이사였던 찰즈 윌슨은 미국 신문경영자협회에서 한 연설에서, 언론을 통한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전쟁 수행에 필수적이며,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것만이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GE 는 세계 여러 곳에 투자하고 있었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군산복합체 중의 하나다.
오늘날 GE 는 세번째로 큰 방위 계약 업체로서, 해마다 수십억 달러를 긁어모으고 있다. GE 가 생산, 납품하는 품목은 모든 핵무기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군용기의 제트 엔진을 비롯해 군에서 쓰이는 모든 전기 장치 등이다. 또한 워싱턴주에 있는 핸포드 핵무기 공장에서 수백만 큐리의 치명적인 방사능을 비밀리에 유출시킨 것도 이 회사이며, 미국 전역에 결함 투성이의 핵발전소를 세운 것도 이 회사다.
윌슨 이래로 GE 는 언론을 이용하는 데 매우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1954년에 이 회사는 삼류 영화배우이던 로널드 레이건을 회사의 대변인으로 채용했다. 회사는 레이건 부부에게 모든 것이 전기로 작동되는 집을 제공했으며, "GE 극장" 이라는 제목으로 레이건이 출연하는 텔레비전 쇼도 만들었다. 또 회사의 정치적 입장을 미국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The Speech" 라는 메세지를 작성해서, 레이건을 사방팔방으로 보내 이를 홍보하게 만들었다.
한편 GE 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사도 부지런히 사들였다. 결국 1986년에 GE 는 텔레비전 네트워크인 NBC 를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1950년대에 찰즈 윌슨이 제시한 대로, NBC 는 여론을 선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물론 이 방송사만은 아니다. 당신이 텔레비전을 켜면 어느 채널을 틀어도 꼭같은 메세지가 나오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걸프전이 끝난 뒤 부시 행정부의 전쟁 기획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하스는 유명 언론인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전쟁 수행에 언론이 협조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텔레비전은 우리의 정책을 홍보하는 데 가장 주요한 수단이 됐습니다." 사실 그러했다. 전쟁 중에 미국인은 석유회사 엑손과 GE 가 제공하고 국방부가 검열한 전쟁 보도를 24시간 내내 볼 수 있었다.
전쟁 보도에 관한 한,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중립성을 지키는 것처럼 위장했던 가면조차 모두 벗어던진다. PBS 와 NBC 뉴스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로렌스 그로스만은 언론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대통령의 일은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고, 언론의 일은 지도자가 설정한 의제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왜 모든 방송사는 앵무새처럼 꼭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왜 방송사들은 정부가 전쟁을 결정하기만 하면 전쟁 열병에 감염되는 것일까? 이것은 누가 방송사를 잡고 통제하는가와 관련이 있는 문제다.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미국의 몇몇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앞에서 본 대로 NBC 는 GE 가 소유하고 있으며, CBS 는 종합 매체 회사인 Viacom 이, ABC 는 디즈니사가, CNN 은 AOL 타임워너가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들의 이사회 구성원들은 다시 군수 산업이나 전세계에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의 이사들이기도 하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 EDS, 루슨트테크놀러지, 프루덴셜, 제록스, JP 모건체이스, 크라이슬러, 매리어트, 시티뱅크 등이 그들이다.
전쟁이든 평화든 또 다른 어떤 것이든간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뉴스들은 모두 이들 대기업이 소유한 뉴스 매체를 거쳐서 전달된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뉴스 매체들도 여론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매체의 영향력이 언제나 완벽한 것은 아닌데, 그것은 군국주의화와 전쟁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양심의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1.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 광산과 농장으로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집안에서 태어나 후계자가 된 사람으로, 20세기 초기에 미국에 거대한 언론 왕국을 건설했다. 23세 때, 아버지가 노름빚 대신 인수한 신문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의 경영자가 된 것이 그 시초였다. 전성기에 그는 주요 신문 28개, 잡지 18개와 몇몇 라디오방송사, 영화사를 소유했다. 그는 1930년대에 좌익 운동에 반대하여 나치를 옹호하였으며, 1940년대에는 반공산주의 운동의 선봉에 섰다. 선정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말은 원래 조셉 퓰리처의 언론 관행을 묘사하기 위해 등장했으나, 오늘날에는 허스트가 황색 저널리즘의 대표자로 인식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미국 전쟁 때, 쿠바의 하바나에 있던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돌아오려 하자, 허스트는 "당신은 그림만 준비하시오. 전쟁은 내가 준비할 테니" 했다고 한다. 1941년 오손 웰스가 만든 <시민 케인> 이 바로 허스트를 겨냥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허스트는 이 영화의 배급과 상영을 막기 위해 돈과 폭력과 FBI 를 동원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역주)
제7장: 군국주의화에 대한 저항
미국 전체가 전쟁 중독자들로만 가득찬 것은 아니다. 19세기 멕시코-미국 전쟁과 스페인-미국 전쟁 이래, 미국의 대외 군사 정책에 대한 강력한 반대 역시 형성되어 왔다. 미국의 반전운동은 필리핀을 점령한 전쟁을 계기로 강력하게 성장했다. 1900년에 반제동맹의 부회장이었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의 개입은 필리핀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점령하는 것이었다. 나는 독수리가 그의 발톱으로 다른 나라 땅을 움켜쥐는 것에 반대한다. 또 나는 우리의 명민한 젊은이들을 더러운 깃발을 앞세우고 구식 소총을 쥐어주어 필리핀 땅으로 내모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
언론과 행정부가 전쟁에 대한 지지를 끌어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한국전 때로 올라가보자. 처음에 정부와 언론의 노력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사자들의 시신을 담은 시체 행낭이 되돌아오기 시작하자, 대다수 여론은 반전으로 돌아섰다.
베트남전에서 정부와 언론은 또다시 전쟁 지지 여론을 끌어내기 위해 기를 썼다. 그러나 전쟁이 점점 격화됨에 따라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반전운동이 등장했다. 초기의 반전운동은 비록 소수이지만 결연한 의지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되면서, 반전 여론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1969년까지 모두 75만명이 워싱턴에 모여 행진을 벌였고, 미국 각지에서 반전 행진에 참가한 사람 수는 수백만이었다.
1970년 5월, 경찰과 군대는 반전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오하이오의 켄트대학과 미시시피의 잭슨대학에서 각각 4명과 2명이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그 직후, 미국 전역의 4백개 대학에서 동맹 파업이 벌어졌다. 이것은 미국 대학 사상 첫 학생 총파업이었다. 1971년 8월에 남미 출신 단체들의 반전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발포하여 세 명이 숨졌을 때는 로스앤젤레스 동부에서 폭동이 벌어져서 사흘 동안 계속됐다.
전쟁에 대한 저항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전쟁 관련 세금을 내기를 거부했다. 젊은이들은 징병 카드를 불살랐다. 징병 거부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백인들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 라고 선언한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였다.
또 사람들은 전쟁에 내보낼 병력과 장비를 실은 기차를 가로막았다. 1971년에 반전 시위대가 워싱턴을 사흘 동안 마비시켰을 때, 모두 1만4천명이 체포되었다. 이는 미국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체포자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국방부를 더욱 당황시킨 것은 베트남 현지의 병사들 사이에서 훈련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병사들은 총을 들고 싸워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총을 들지 않았다. 1960년대 말에 이르면 일반 병사들과 장교들 사이의 갈등이 실질적인 내전의 형태로 부글거리고 있었다. 한 군사 지도자는 국방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모든 증거와 상황으로 볼 때, 현재 베트남에 진주해 있는 우리 군대는 붕괴 상태에 있습니다. 병사 개개인은 전투를 피하거나 거부할뿐 아니라, 직속 상관이나 지원부대 상관을 살해하고 마약에 빠져 있으며 폭동의 상태로 사기가 저하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속속 탈영하거나 전선을 무단 이탈했으며, 군대 내부에서 저항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미국 본토와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미군 기지에서 수백 종의 지하 신문들이 발간되어 유통되었다. 병사 조직에서 파견된 군인들이 반전 시위대의 선두에 섰다. 베트남 전선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전쟁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미국 사회에 알렸으며, 그들 스스로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조직을 결성했다. 1971년 4월에는 1천명 이상의 참전 용사들이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참전의 대가로 받은 훈장을 내팽개쳤다. 1960년대 말에 이르면, 미국 사회 여론의 절대 다수는 전쟁 반대로 돌아섰다.
세계를 무한 전쟁으로 몰고 가는 부시와 체니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은 당시 함께 형성되던 흑인이나 남미계, 아메리칸인디언계 등 소수 민족의 인권운동 및 여성해방운동과 맞물려, 사람들로 하여금 부정직하고 불공평한 미국 사회에 대해 눈을 뜨게 만들었다. 전쟁에 대한 반전 운동은 정부로 하여금 베트남에서 손을 떼게 만든 큰 요인 중 하나였다. 베트남전의 결과, 미국인들 사이에 광범위한 반군국주의 정서가 형성되었으며, 워싱턴의 관리들은 이를 "베트남증후군" 이라 불렀다.
아버지 부시가 페르시아만에 군대를 파견했을 때 미국인들은 매우 우려했으며, 대다수는 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강력한 반전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조직되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수십만 명의 반전 시위대가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의 거리를 메웠다. 정부는 전쟁에 찬성하는 시위대를 조직했으나, 소수만이 참여했을 뿐이었다.
미군이 이라크에 포탄을 쏟아붓기 시작하자, 전쟁의 홍보 역할을 하는 미디어는 대대적인 전쟁 지지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반전운동이 미군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전쟁을 일으킨 부시 행정부였으며, 병사들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그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임은 명백했다.
부시는 미군 희생자를 최소화시키며 전쟁을 신속히 끝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론은 곧 반전으로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라크가 미국과 싸우기보다 쿠웨이트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고, 뒤이어 미국의 일방적인 학살로 전쟁이 끝나자, 부시는 행복감에 도취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베트남증후군" 을 일거에 박살내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들인 조지 W 부시는 군국주의화에 대한 반대를 깨버렸다는 아버지의 생각을 시험해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이 많은 희생자를 내는 장기 전쟁이 될 것이라고 미국인들에게 선언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위협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기존 정부를 테러하려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만일 부시가 제정신이라면, 그는 아마 무한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테러리즘은 전쟁의 한 전술로서, 전쟁과 마찬가지로 항상 우리 세계에 존재해 왔으며, 아마 최소한 우리 평생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부시의 선언은 그저 단순한 오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한 부시나 그의 참모들이 실제로 한 나라 한 나라씩 골라가며 폭격을 퍼부어, 이 세기를 전쟁이 그치지 않는 세기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미국인에 대한 보복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부통령 딕 체니를 보면, 그는 이러한 쪽으로 정리하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9-11 공격 직후 갑자기 사라졌다가 비밀 벙커로부터 홀연히 등장한 그는 "테러와의 전쟁" 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은 아마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 세대에는 말이지요." 그는 이러한 무한 전쟁의 한 부분으로서, 미국인들이 각자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나라 밖의 군인 희생자보다 나라 내부의 희생자 수가 더 많이 발생하는 상황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시민들이 각종 공격적인 보안 검색과 기본권의 침해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9-11 직후 테러 공격에 놀란 미국인들은 부시의 호전적인 단어에 공명을 보냈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 이 연장되어도 전쟁에 대한 초기 지지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은 부시조차 우려하고 있는 바이다.
부시와 체니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미래는 매우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것이다. 전쟁과, 그 전쟁의 결과 다시 테러가 벌어지고, 그 테러를 응징하기 위해 다시 전쟁이 발생하고, 그 전쟁이 다시 더 많은 테러를 불러일으키는, 테러와 전쟁의 상승이 그것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같은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은 불명예스러운 미국 군국주의화의 연장에 서 있다. 군국주의는 제국주의를 실현하는 피의 부수 과정이다. 당신은 정말로 이러한 전통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정부는 전쟁에 대한 광기를 부채질하며, 당신에게 그 전선에 서라고 요구한다. 전선이란 당신이 폭격기 조종사가 되어 포탄을 퍼붓는 이국의 하늘이 될지도 모르고, 영문 모르고 죽음을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뉴욕 한가운데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대체 미국의 전쟁 중독이 미국인과 전세계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얼마나 많은 돈이 여기에 낭비되고 있는가. 누가 그 과실을 챙겨가는가. 누가 그 돈을 부담하는가. 그리고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행동하라. 전쟁에 미친 쓰레기들을 차버리라.
이것으로 <전쟁 중독: 미국은 왜 군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를 마무리합니다. 책의 다음 장은 군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도와줄 여러 반전 단체나 관련 조직들의 리스트를 싣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영어 스크립트 사이트를 찾아보시거나 한국어 번역판을 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을 훑어보고 옮기면서 새로 많은 사실을 알게 됐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온통 전쟁으로 미쳐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 사회에 필자와 같은 사람이 존재함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 생각도 났습니다. 우연히도, 이 책의 필자인 안드레아스와 무어 감독의 고향은 가까운 곳입니다. 미래의 역사에서 미국은 희망인가, 하고 질문한 이삼성 교수의 물음도 계속 머리에 떠돌았습니다 (이것은 곧 간단히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이 책은 만화입니다. 만화 치고 그림은 참 보잘것 없습니다. 더구나 그림보다 글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 충격은 대단합니다. 만화를 보면서 충격을 받기는 슈피겔만의 만화 <쥐>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마존의 독자 리뷰를 보면 어떤 이는 이 책이 불확실한 사실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겐 그 비난이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이 거짓말로 가득차 있다는 공화당 쪽의 주장과 비슷한 것으로 들립니다. 링컨이 말했듯이, 잠시 여러 사람을 속일 수 있거나 오래 소수의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여러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 초판이 발간된 지는 10년이 넘었으며, 7만부 이상이 팔렸고 수십만 명이 책을 읽었습니다. 충분히 오랜 기간이며 충분히 많은 사람들입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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