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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천둥이 치는 저녁이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락 밴드 중 하나인 시카고 Chicago 를 보러 두 시간을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세 시간 동안 행복했습니다. 석 달 전, 시카고가 투어 공연 중에 근처에 온다는 것을 우연히 안 뒤부터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들이 누구인가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들을 때마다 신나고 즐거웠던, 지금은 노래에 하나하나에 까까머리 시절의 기억까지 뒤얽혀 있는 그 전설적인 시카고가 아니던가요. 지금도 "다음 곡은 그룹 시카고 입니다, Hard to Say I'm Sorry..." 하고 소개하는 황인용이나 박원웅의 목소리조차 귀에 쟁쟁한 그 시카고입니다. 다른 데서 좀 절약하기로 하고 망설이지 않고 표를 샀더랬습니다. 1967년 Chicago 에서 밴드를 만든 이래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장수하는 그룹입니다. 현재 멤버는 8명, 조금 바뀌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입니다. 60을 코앞에 둔 장년들이지요. 아, 그래도 공연장에서 본 그들의 연주와 보컬의 파워는 녹음된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락 밴드로서 시카고의 미덕 중 하나는 언제나 끊임없이 노래하고 공연하고 음반을 내는 저력일 것입니다. 그들은 수십년간 중단없는 활동을 하면서 모두 28개의 음반을 내서 1억2천2백만장이나 팔았습니다. 그러나 갈 길이 아직 멉니다. 2002년에 나온 히트 모음집 제목도 "단지 시작일 뿐이야" (The Very Best of Chicago: Only the Beginning) 였습니다. 이 시디 두장짜리 앨범은 앨범 차트 38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시카고는 10년 단위로 따져 다섯 번 연속으로 앨범을 40위권 안으로 진입시키는 최초의 락 밴드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게 됐습니다. 그래도 역시 이 밴드의 전성기는 70년대. 공연에서도 판을 펼치기 전에 한 멤버가 (넘 멀어서 잘 분간이 안됨 -.-) "이제부터 70년대로 돌아갑니다!!" 하고 선언하며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엄청나게 큰 야외 공연장, 다행히 지붕이 있어서 비를 쫄딱 맞는 불행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수천명이 가득 찬 공연장 주변으로 세 시간 내내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였지만, 심장을 파고드는 드럼과 영혼까지 흔드는 것 같은 관악기들, 화려한 기타와 터질듯한 보컬에 천둥 소리는 쉽게 묻히고 말았습니다. 번갯불은 오히려 공연장을 장식하는 조명처럼 보였습니다. 이번 투어 공연은 Chicago 와 Earth, Wind and Fire 가 함께 공연하는 자리였습니다. 역시 전설적인 R&B 그룹인 EWF 의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무대 매너도 즐거웠지만, 역시 제게는 시카고에 딸린 부록 쯤으로 보였습니다. 공연은 두 그룹이 함께 나와 무대를 열었으며, 먼저 EWF 가 그들의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다음 Chicago 가 순서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들의 최대 히트곡, [Hard to Say I'm Sorry] 와 [Get Away] 를 끝으로 Chicago 순서가 끝나자 다시 두 그룹이 무대를 꽉 채웠습니다. 막판에 공연이 클라이맥스에 올라갈 무렵, 갑자기 무대 뒤편에 대형 성조기가 펼쳐져 산통을 팍 깬 것 하나가 옥의 티였습니다. 산통이 깨진 것은 저 혼자만이었는지, 다른 미국 관객들은 대부분 환호하며 난리를 쳤습니다. 락 밴드 시카고에 어떤 미국적인, 혹은 애국적인 의미가 내포(embedded)되어 있는지 외국인으로서 알기는 힘듭니다. 마치 한국 문화에 정통하지 못한 서양인이, 가수 이용의 노래가 전체주의 체제를 분칠하는 행사였던 국풍 81에서 만들어졌다거나,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에 국가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거나 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시카고는 9-11 있자마자 뉴욕으로 달려가 소방대원들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저 까까머리 시절부터 미치도록 좋아했던 락 밴드일 뿐입니다. 공연이 즐거운 만큼 관객들도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습니다. 거의 공연 내내 일어서서 춤추고 흔들며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을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였습니다. 아, 야외 공연장이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척 자유로웠는데,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마음대로 담배를 피우고 맥주도 마시는 분위기였습니다. EWF 의 한 멤버가, 이제부터 이곳은 파티장이다, 마음껏 즐겨라- 하고 말한, 딱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다시 두 시간을 돌아오면서 시카고 노래를 들었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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