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올림픽 8강 진출 by deulpul

피말리는 경기였습니다. 그리스에서 벌어진 올림픽 축구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말리와 세 골씩을 주고 받으며 싸운 끝에 비겨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습니다. 전반과 후반 초에 3골을 해트트릭으로 내주었을 때는 절망적이었으나, 후반에서 말리의 자책골 하나를 포함해 불과 10분 만에 세 골 소나기를 퍼부으며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기막힌 드라마였습니다.

인터넷 텔레비전이 나오질 않아 라디오 방송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어릴 때 라디오로 연속극이며 스포츠 중계를 듣던 기분이 났습니다.

월드컵 4강 이후, 여기서 만난 외국 친구들은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를 놓고 세 가지 말을 꼭 했습니다. 우선 축구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한국의 붉은 악마 응원에는 큰 인상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처럼 대규모적이고 그처럼 일사분란한 집체 응원이 아무런 조종과 연습 없이 자발적으로 도심 한가운데서 벌어진 것, 거기에 담긴 폭발적 에너지를 이들은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물론 한국 축구의 성과를 축하하는 것이었습니다. 4강 축하한다, 한국 멋진 팀이다... 는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 뒤에 따라붙는 세 번째 말은 듣기가 좀 불편했습니다. "넌 정말 한국이 4강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냐?"

저는 그 때마다, 물론 홈팀의 이점은 대단한 것이다, 감독도 훌륭했다, 국민의 전폭적인 지원도 큰 힘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선수들의 실력 역시 뛰어날뿐 아니라, 넘치는 투지는 한국팀의 상징이고, 그게 좋은 성적을 만들어 준 비결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주변 여건들이 훌륭하고 홈팀의 이점이 크고 히딩크가 각 경기장의 잔디 길이까지 신경썼더라도, 그것만으로 좋은 결과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선수와 코칭 스태프가 세계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 도무지 저런 성적이 나올 수가 없지 않습니까?

오늘 올림픽 8강 진출을 보면서, 비록 올림픽 축구가 월드컵보다 그 비중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월드컵에 이어 다시 한번 좋은 성적을 내는 한국 축구는 이제 명실공히 세계 정상급이 되었고, 또 그렇게 인정받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게 되었다는 점이 정말 기쁩니다. 물론 아직 기복이 심해, 가끔씩 기상천외의 졸전을 펼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8강 진출 이후 토너먼트에서도 열심히 싸워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기대합니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deulpul.egloos.com/tb/678372 [도움말]

덧글

  • 善洪最高 2004/08/18 12:28 # 답글

    56년만의 올림픽 8강은 우리 엄마까지도 밤을 새우시게 만들만큼 대단한 것이었어요. 세상에나... 새벽에 전화를 하셨더라니까요. ㅎㅎ~ 아무튼 우리나라 축하합니다. ^^
    그리고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입니다. 암, 그렇고말고요.
    월드컵 4강은 분명 우리가 거둔 성과에요. 실력이 아니면 무엇이냔 말이지요.
    뭐, 스페인과의 8강전을 보면 약간의 운도 따르기는 했습니다만,(아니,스페인이 운이 없었던 게지요.-_-) 전경기에서 미치도록 뛰어다니던 선수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분명히 우리 선수들의 땀으로 거둔 성과입니다. 브라질 같은 기술도 없고 프랑스처럼 아트사커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보다 더 가치있는 성실함으로 일궈낸 4강입니다. 아마 외국인들도 그 때 전경기에서 시종일관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니던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느낀 게 많았으리라 생각해요. 지들도 예전에 마늘 어쩌고 해놓고는... --^
    앗... 흥분...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축구중계를, 그것도 이런 심장이 오그라드는 경기를 라디오 중계로 들으셔야 했다니... 괴로우셨겠어요. ㅠㅠ
  • innisfree 2004/08/19 16:34 # 삭제 답글

    선배, 건강하시죠? 7분 사이에 세 번이나 터진 골 소리에 박수치며 기뻐하셨을 선배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
  • deulpul 2004/08/21 18:42 # 답글

    善洪最高: 어머니가 전화하신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으셨겠죠, 물론? 하하-- 경기 뒤 감상평들을 보니, 후반의 중반 이후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아 불만스러운 분들이 있더군요. 경기장에서 선수나 코칭 스탭이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보면 그렇게 쉽게 나무라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수세적 경기 운영이 관객 처지에서는 재미가 떨어지는 게 분명하지만, 대리석 바닥 위에서 유리판을 나르는 것같이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죽어라 공격만 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너무 관객이기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경기들을 보시는 善洪最高님 생각은 어떠세요?
  • deulpul 2004/08/21 18:58 # 답글

    innisfree: 후배,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어요. 덥다고 소문 자자하던데, 건강하게 지내고 계세요? 그래도 이제 좀 서늘한 바람이 분다니 훨씬 낫겠네요. 옛날 중요한 경기 할 때 5층 구석에 다들 함께 모여 텔레비전 보던 생각 납니다. 그 때 제일 시끄러웠던 사람이 누구더라..? 하하하- 아, 그때도 후배는 의자 등돌리고 앉아 공부만 하고 있었던가... 하핫- 아주 오래전 같기도 하고 바로 엊그제 같기도 풍경입니다...
덧글 입력 영역


Ads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