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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일학년 때다. 눈물콧물 쏟으며 본 책이 있다. 샘터사에서 나왔던 <노란 손수건> 이라는 책인데, 누나가 친구한테서 빌려온 걸 읽으면서 어린 딴에는 무척 감명을 받았다. 이 책에는 감동적인 실화들이 단편소설 같은 형식으로 묶여 있었다.1
십여 편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책 제목으로 뽑힌, 노란 손수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 어느 시골을 달리는 버스 안. 다양한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여행을 하고 있다. 한 판의 어수선함이 끝나자, 사람들의 시선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만 응시하고 있는 우울한 남자에게로 향한다. 한 젊은이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붙인다. 그는 이제 막 교도소 문을 나서는 죄수였다. 오래 전에 그는 잘못을 저질렀으며, 그 죄값을 치르고 이제 그가 예전에 사랑했던 여인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아직도 그를 기다려 줄지였다. 그는 출소하기 직전에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며칠쯤 그 집 앞을 버스로 지나갈 터인데, 만일 아직도 자신을 사랑한다면 노란 손수건 하나를 집 앞 참나무에 달아 달라고 부탁했다. 과연 나무에는 손수건이 달려 있을 것인가.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그녀가 사는 집 쪽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숨을 죽인 채 집 근처의 나무를 살폈다. 한 사람이 소리쳤다. "손수건이에요!" 동시에 모든 사람이 환호성을 올렸다. 아담한 집 밖에 선 참나무에는 가지가지마다 수많은 노란 손수건이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 뒤, 이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음에 틀림없는 Tony Orlando and Dawn 의 1973년 노래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어 주세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를 알게 되면서, 노란 손수건 혹은 노란 리본은 떠난 사람의 조바심과 기다리는 사람의 외로움이 어우러진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2 최근 이 노란 리본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신호에 걸렸을 때. 앞에 선 SUV 뒤에 선명한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노란 리본 안에는 "Support Our Troops" 라는 글귀가 들어 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집 창문 밖으로 큼직한 노란 리본을 붙여둔 집들도 종종 눈에 뜨인다. 웹서핑을 하다 노란 리본을 단 사이트를 만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전쟁에 찬성하는 집회에서도 반드시 등장하며, 조지 부시의 선거 운동판에도 빠지지 않고 감초처럼 낀다. 그렇다. 몇해 전부터 미국 여기저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 노란 리본들은 침략 전쟁을 위해 해외로 나간 병사들의 안전과 무사 귀환을 바라는 미국인들의 희망, 그리고 맹목적 애국주의와 보수적 가치관을 집약해 담고 있는 상징물이다.3 아이러니한 것은 실화에서도 그렇고 노래 가사에서도 그렇지만, 노란 리본을 달고 기다려야 할 사람이란 다름아닌 죄를 짓고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해온 사람이라는 점이다. 수형 생활이 격리와 고통과 속죄를 상징한다면, 야만적 권력의 욕심에 떠밀려 사지(死地)로 들어가 격리된 채 고통을 겪으며 권력의 잘못을 목숨으로 속죄하는 젊은 병사들을 노란 리본으로 기다리는 것은 썩 어울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일부 미국인들은 자기들의 노란 리본 달기가 노래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존 포드가 감독하고 존 웨인이 주연한 1949년 서부영화 <노란 리본을 단 여인> (Round Her Neck She Wore A Yellow Ribbon) 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인 기병대 대위를 비롯한 백인 남자들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온다. (영화의 제목 역시 좀더 오래된 구전 가요에서 따서 붙인 것이다.) 그래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영화에서 기병대 대위가 하는 일이란 "잔인하고 야만적인" 아메리칸 인디언족을 몰살하고 (영화에서는 물론 인디언들의 습격에 대한 진압으로 그려지지만) 백인들을 보호하는 것일 뿐이다. 연원이야 어쨌든, 바람직한 것은 물론 노란 리본을 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 것이다. <노란 손수건> 이나 노래의 주인공은 사고를 쳐서 교도소를 가지 않았어야 할 일이고, 그로써 사랑하는 사람에게 노란 손수건이나 리본을 나무 가득 다는 수고를 시키지 않아야 했을 것이다. 현실 속의 미국 병사들은 아프간이나 이라크를 가지 않았어야 할 일이고, 그로써 굳이 여기저기 노란 리본을 붙이고 다는 수고를 하지 않도록 했어야 하는 일이다. 저들이 스스로 보내고 저들이 스스로 안타까워하는 저 모순이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희극이 아닐 수 없다. 1. 이 책은 1975년에 처음 발간되어 그동안 1백만부 이상이 팔리는 스테디 셀러가 됐다. 처음에는 한 권 짜리였으나, 독자의 반응이 좋아 시리즈로 엮여서 7권까지 나왔다. 한 서평 전문지가 유명 출판사들을 상대로 하여 "자기 회사를 대표로 하는 책" 을 써내게 했을 때 샘터 출판사는 이 <노란 손수건> 을 대표작으로 꼽았다고 한다. 2. 이 이야기의 실제 여부는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들이 미국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다, 1960년대에 각종 종교 서적에 즐겨 실렸다고 한다. 1971년에 <뉴욕 포스트> 의 한 칼럼니스트가 이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며 <귀환> (Going Home) 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다. 다음해 <리더스 다이제스트> 가 이 글을 다시 실었으며, 같은 해 ABC 텔레비전에서 단막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참고 사이트 3. 미국인들의 노란 리본 달기가 유행이 된 것은 1980년 이란의 미국대사관에 미국인들이 인질로 잡힌 사건이 있을 때부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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