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아들여 먹는 기체로 된 술 by deulpul

처음 소주를 마셨을 때 기억나세요? 알싸해지는 입안, 혀에 닿는 특유의 씁쓸함, 목으로 넘길 때 콱 막히는 듯한 느낌,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화끈한 액체의 느낌, 위 속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 콧속까지 얼얼해지는 후폭풍... 네, 좀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이 복잡미묘하고 낯선 느낌이 술을 당기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이건 모두 액체 형태의 술을 입으로 마실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액체가 아닌 술도 있나, 그럼? 네... 있답니다. 기체로 된 술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보통의 술을 기체로 만들어 주는 기계입니다.

미국의 한 회사가 기체로 술을 마실 수 있게 해주는 기계를 개발해 팔고 있습니다. 8월 말에 공개된 AWOL (Alcohol without Liquid) 이라는 이름의 이 기계는 흔히 마시는 술, 특히 좀 독한 계열인 보드카나 위스키, 혹은 마티니 같은 술을 기체로 바꾸어 코로 흡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자기가 원하는 술을 기계에 넣으면 압축 산소가 이 술을 기화시켜서 알콜과 산소의 혼합 기체가 파이프에 연결된 흡입구로 나옵니다. 술꾼들은 술잔 대신, 좀 엽기적으로 생긴 이 흡입구를 입에 물고 담배를 피우듯 혼합 기체를 빨아들이게 됩니다. 알콜이 도달하는 신체 부위는 위가 아니라 폐인 셈이지요.

이 기계는 우리가 술을 마시면 체내로 흡수된 알콜이 호흡을 통해 폐로부터 빠져나가는 원리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술 냄새가 난다거나 음주 단속 때 알콜 측정기를 부는 것은 모두 알콜이 호흡을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기계는 이 과정을 거꾸로 되돌린 것이죠. 호흡으로 알콜이 빠져나가니, 거꾸로 호흡으로 집어넣을 수도 있겠다는 식입니다. 대단한 발상의 전환 아닙니까?

AWOL 의 판매가는 2인용 2,600달러, 4인용 2,900달러 정도입니다. 개인 소비자보다 술집들을 주 판매 타겟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내세우는 술 빨아들이는 기계의 장점은, 첫째, 술 속에 들어 있는 칼로리나 탄수화물를 섭취하지 않아서, 아무리 마셔도 이른바 "술 살" 이 찔 염려가 없고, 둘째, 불필요한 화학 성분이 섭취되지 않으니 마실 때 구토가 없고 마시고 나서도 숙취가 없다는 것입니다. 술 깰 때도 탈수 현상이 없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웰빙형 음주 행태라는 거지요.

그러나 이 기계의 단점은 술이 잘 안취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계를 사용해본 사람들은 도무지 술이 취하지 않아서 불만이라고 합니다. 이 기계를 설치한 한 술집 주인에 따르면, 손님들은 작은 잔의 4분의 1 정도의 술을 섭취하기 위해 20분이나 이 기계를 빨고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 주인이 기계를 반품한 것도 이해가 갈 일입니다.

사실 알콜을 기체 형태로 폐로 직접 흡입하면 알콜 섭취 속도는 더 빠르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액체 형태로 위로 들어간 알콜은 소화 시스템을 통해 다른 음식물의 영양분과 섞이며 천천히 신체를 순환하지만, 폐로 들어간 알콜은 직접 혈액 순환 시스템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뇌에 전달되는 속도가 훨씬 빠른 것입니다. 즉 빨리 취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동물 실험실에서 쥐에게 알콜 중독 상태를 빨리 만들 때 쓰는 방법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AWOL 제조회사는 이같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소량의 알콜 증기가 서서히 나오도록 기계를 조정해 두었는데, 오히려 그 결과 술이 안취한다는 것입니다.

술,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취하려고 마시기도 하는데, 안취한다면 결정적 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기계를 개발한 회사는 세계를 상대로 제품을 팔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데, 폭탄주, 원샷, 파도타기 등 어떻게 하면 좀더 많이 마시고 빨리 취할까를 고민하는 우리 술 문화에서는 전혀 각광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여러 가지 화학적 성분이 적절하게 잘 어울려 나는 게 술 맛인데, 거기서 알콜만 빼낸다면 도무지 술 맛이 날까 싶기도 합니다. 또한 화기애애하게 떠들썩하든 진지하게 토론하든 술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대화인데, 말을 해야 할 입으로 20여분씩 조용히 파이프만 빨아대면 술 마시는 기분도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술마시는 즐거움 중 하나는 안주. 파이프를 통해 기화된 소주를 들이마신 뒤 얼큰한 동태찌개를 떠먹는 것은 전혀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네요. 이 기계, 발상은 신선하지만 술꾼들의 생리를 고려하지 않은 탓에, 별로 성공할 것 같지는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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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kris 2004/09/17 03:53 # 답글

    전에 양주잔 업어 놓고 거기 양주 따라 한쪽 콧구멍 막고 다른쪽으로 흡입?하는 걸 본적이 있습니다. 그럼 빨리 취하는 건지...
    적은 돈으로 빨리 취하려고 빨때 꽂아 마셔보긴 했지만, 이건 마셔도 안취한다니 매력없네요^^
  • 비안졸다크 2004/09/17 10:59 # 답글

    ... 거참. 뭐랄까... 그렇게 까지 해가면서 술 먹고 싶지는 않군요. 그 마실때의 목에서 느껴지는 식감과, 술 고유의 향과 독특한 느낌을 한 순간에 날리는 최악의 발명품이군요. (가격도 더군다나 만만치 않고...)
  • 지아쿨 2004/09/18 09:37 # 답글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가까운 지인들끼리 혹은 연인끼리 앉아 술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분위기 만큼은 저 기계로 절대 못 낼 것 같네요. 어디 술을 들이마시느라 얘기나 제대로 하겠어요.^^;; 사실 술자리 특유의 알싸한 분위기가 술보다 더 좋을 때가 종종 있거든요.
  • 강직 2004/09/20 23:44 # 답글

    AWOL 이라... 일단 군대용어로 탈영(absent without leave)이라는 것을 붙인 것은 아이디언데, 설명 읽어보니 대체나 우리나라에서는 황이겠네요^^;
  • deulpul 2004/09/21 15:39 # 답글

    kris: 헙... 액체를 코로 마시면 참으로 괴로울텐데요. 더구나 알콜을... 대단한 사람들 많네요, 하하-

    비안졸다크: 그렇죠? 술이란 목에 술술 넘어가는 맛으로 먹는 것인데... 기계의 합법성 여부를 놓고 논란까지 벌어지는 판이니, 과연 얼마나 팔리는지 한번 두고 봐야겠어요.

    지아쿨: 술맛의 절반은 분위기... 그렇죠. 아무리 색다른 기계라 해도 기계가 낄 데가 있고 아닐 데가 있을텐데, 술자리는 정말 아닌 것 같아요.

    강직: 기계 이름에 비벼넣은 의미까지 찾아내셨군요~. 최근에 부시 때문에 다시 유명해진 그 단어 맞죠? 하하-
  • anakin 2004/09/24 09:43 # 답글

    아항.. AWOL을 어디서 들었던가 했는데... 들풀님 코멘트를 보니 기억났습니다. 재미있는 무어 아저씨~^^
  • deulpul 2004/09/26 17:48 # 답글

    네... 탈영병 부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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