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불공정하고 선정적인 KBS? by deulpul

숫자 하나 더 보고 가겠습니다. 어제 한 신문 사이트에 실린 방송 관련 기사입니다. 역시 기사 출처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습니다.


"KBS가 가장 불공정-선정적"…시청자불만 분석

지상파 방송 3사 중 시청자 불만이 가장 많은 채널은 KBS이며 주된 이유는 불공정성과 선정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위원회(위원장 노성대•盧成大)는 1∼8월 접수된 ‘시청자 불만 처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상파 방송사에 대해 1629건의 불만이 접수됐으며 이중 KBS가 649건(38%), MBC 464건(27%), SBS 194건(12%)이라고 24일 밝혔다.

지상파 3사에 접수된 불만 건수만을 따로 집계한 결과에서는 보도 시사 프로그램의 불공정성, 정치적 편향성 항목에서 ‘생방송 시사투나잇’(8건) ‘특집 한나라당 대표경선 5인 토론’(8건) ‘미디어포커스’(5건) 등 KBS의 보도 시사 프로그램이 불공정하다는 불만이 3사 불만 건수의 63%를 차지했다.

또 ‘일요일은 101%’(14건) ‘개그콘서트’(7건) ‘비타민’(5건) 등 KBS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외모지상주의 등 선정적 내용을 방영했다는 불만도 지상파 3사의 선정성 관련 불만접수 총계 중 62%를 차지해 1위였다.

MBC의 경우 프로그램이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불만이 다른 지상파 방송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시민단체 집회에서 권양숙(權良淑) 여사 비하 논란이 빚어진 발언부분만 편집 보도해 발언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방송위로부터 주의조치를 받은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27건)과 ‘뉴스투데이’(8건) 등 보도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SBS는 드라마 ‘인간시장’(10건)의 장기매매 장면, ‘8 뉴스’(7건)에서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낸 장면 등 폭력적 충격적 영상을 거르지 않고 방영한 데 대한 불만이 두드러졌다.

또 KBS의 난시청과 관련해 44건의 불만이 접수됐으며 MBC의 경우 사전 고지 없이 결방하는 등의 편성 관련 불만이 68건이었다......


기사 내용을 정리하자면, 방송위원회에 접수된 시청자 불만 신고를 근거로 따져 본 결과, 지상파 방송 3사 중에서 KBS가 38%로 가장 많았고, 특히 시사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오락 프로그램의 선정성 측면에서 모두 시청자 불만 1위를 기록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기사는 잘못된 자료와 추론을 바탕으로 하여 잘못된 결론을 내린 기사입니다. 왜 그런지 하나씩 따져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시청자 불만이 KBS가 가장 많은가?

불만 신고가 들어온 숫자로만 따지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 KBS는 다른 방송과는 달리 채널이 두 개입니다. 다른 방송에 비해 두 배의 프로그램을 내보낸다는 말이며, 다시 말하면 시청자 불만이 발생할 조건이 다른 방송사의 두 배라는 뜻입니다. 다른 방송사와 비교하려면 이 점을 분명히 고려하여야 합니다. 손쉽게, 두 채널 KBS의 불만 비율 38%를 반으로 쪼개면 19%씩입니다. 이것은 SBS의 12% 보다는 많지만, MBC의 27% 보다는 훨씬 적은 수치입니다.

또 방송위원회의 보고서 원안을 찾아보니 "프로그램별로 불만을 분류한 결과, KBS는 총 81개 프로그램이 불만대상이었으며, MBC 56개 프로그램, SBS는 41개 프로그램이었음" 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채널이 두 개인 점을 고려하면, KBS는 방송 3사 중에서 가장 덜 불만스러운 방송이 되어버립니다.

방송위원회 보고서는 "이는 KBS가 2개 채널을 운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라고 하여 이 점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 신문 기사는, 다른 내용은 대부분 보도자료를 베끼다시피 충실히 따르고 있으면서도 저 부분은 살짝 뺐습니다.

게다가 KBS에 들어온 시청자 불만 사항 중에는 수신료 문제나 난시청 같은, KBS 고유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불만도 44건이나 됩니다. 이게 모두 저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KBS의 불만 사항에는 한 프로그램의 충격적인 한 회 방영분 (<환경스페셜>의 "질병의 사각지대-애완동물의 경고") 에 대한 신고가 275건이나 됩니다. 이것은 KBS 전체 불만 신고인 649건의 42%가 넘습니다. 게다가 신고 내역을 찾아보니 "<환경스페셜> 관련 시청자 전화에 대한 직원 불친절" 같은 것들까지 있습니다. 이 방영분을 빼면 KBS에 대한 불만 건수는 374건으로, 이를 다시 둘로 나누면 채널당 187건입니다. MBC 464건, SBS 194건보다 적은 수치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빼고 따져본 이유는 특정 프로그램의 한 회 방영분이 전체 기간 (8개월) 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2. 많이 보면 불만도 많다

시청자 불만이란 자기가 본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도 보지 않는 프로그램에는 불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거꾸로, 불만이 많은 방송이란 많은 사람들이 보는 방송이라는 뜻도 되겠습니다.

A 방송사의 a 프로그램과 B 방송사의 b 프로그램이 비슷한 정도로 불공정하거나 선정적인 방송을 했다고 가정해 보지요. a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은 100명, b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은 10명이라고 가정합니다. 두 프로그램이 비슷한 정도로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두 프로그램 모두 각기 절반 정도의 사람이 불만을 느끼고, 그 중에서 또 절반 정도가 실제로 방송위원회에 불만을 제출했다고 가정합니다. 결과적으로 a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 건수는 25건, b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 건수는 2.5건입니다. 이 결과를 놓고 a 프로그램이 b 프로그램보다 월등히 불공정하거나 선정적이었다, 혹은 A 방송사가 B 방송사보다 매우 불공정하거나 선정적이었다고 결론내리면 코웃음거리가 됩니다.

여기에서와 같이 시청자 반응을 근거로 삼아 프로그램간, 혹은 방송사 간의 공정성이나 선정성을 비교 평가하려면, 시청률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프로그램을 보았는지가 고려되어야 합니다.

3. 할 말 있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준 선거

무엇보다 이 기사가 인용하고 있는 자료는 객관적인 검증 방법을 통해서 얻어진 자료가 아닙니다.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불만을 가져서 그것을 방송위원회에 신고한 내용을 분류한 것일 따름입니다. 이것은 예컨대 시청자 일반을 대상으로 하여 (표본을 추출하여) 각 방송사의 공정성이나 선정성을 물어본 것과 전혀 다른 조사 방법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고 그 투표 결과를 밝힌 셈이지요. 그 결과, 위에서 나온 <환경리포트>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에서 보듯이, 단 한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불만이 쏟아져 들어온 걸 근거로 하여, 그 방송사 전체 프로그램이 불공정하거나 선정적이라는 황당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게 이 방식입니다.

그런데도 제목은 "KBS가 가장 불공정-선정적" 이라고 붙였습니다. 이 제목을 보면 방송사들을 대상으로 한 보도의 공정성에 대한 조사가 벌어졌고, 거기에서 시청자들이 KBS를 가장 불공정하다고 지적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저런 결론을 내리려면 "당신은 방송사들 중에서 어디가 가장 공정하다고 보십니까?" 혹은 "다음 각 방송사들은 어느 정도 공정한 보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KBS / MBC / SBS ..." 와 같은 질문을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사의 근거가 되는 방송위원회 보고서 어디에도 저와 같은 질문과 대답은 없습니다.

방송위원회에 제기되는 시청자 불만이란 대부분 몇몇 개별 프로그램에 편중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근거로 전체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논리입니다.

개인적으로 KBS와 아무런 관련 없습니다. 또 KBS가 다 잘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불명확한 자료를 인용할 때에는 매우 조심하여야 하며, 잘못된 근거를 바탕으로 해 잘못된 결론을 이끌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은 신문이 특정 방송에 대해 매우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독자를 상대로 숫자로 장난치는 여우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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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imanwon 2004/09/26 16:44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정치적 견해에 따라 특정 신문이 자신들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을 근거로 한 기사인 것 처럼 포장하여 여론을 왜곡하는 것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 mooni 2004/09/26 19:00 # 답글

    이 기사를 쓴 곳은 C 신문이라고 강력하게 생각이 드는 군요.
    학자 한분의 논문을 짜집기해서 매장시킨 전력도 있으니까요..
  • deulpul 2004/09/27 03:51 # 답글

    imanwon: 다 사라지면 안됩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집니다. 흐흣-

    mooni: C 신문이라면... Cenday Seoul 말씀인가요? 아, 그건 아니겠군요. 신문이 아니니. CJD 나 HKD 나 모두 자기 생각을 사실에 비벼넣어 독자를 호도하려 한다면 비판받아야 마땅할 겁니다.
  • 구경꾼 2008/01/13 19:09 # 삭제 답글

    뽕바른 글도 아닐텐데 틈틈이 들여다보게 됩니다. 처음엔 풍자도 아니고 유머도 아닌 들풀님의 글체가 재밌었고, 또한 덧글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또한 솔직하면서도 신랄한 글들이 요즘 접하는 글들과 달라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 글들이 나를 들여다보게 하네요.
    하여간 감사.
  • deulpul 2008/01/13 21:51 # 답글

    저도 하여간 감사드립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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