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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공무원 신분인 한 시립합창단 지휘자가 술자리에서 노대통령을 씹는 말을 입에 담았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합니다. 안양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인 오아무개씨(57)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지난 10월에 합창단원 10여 명을 모아놓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노시개" 라는 말을 꺼낸 탓에 지금 사직이냐 파면이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언론 보도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니 정확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노시개는 노무현 시발놈 개새끼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노무현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 이게 나이 환갑 가까이 되신 사람이 어린 합창단원들을 모아놓고 술을 마시면서 할 수 이야기인지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전하는 말에 따르면 혼자 궁시렁댄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에게 건배를 제의하면서 저 말을 썼다고 합니다. 잔을 꺾으며 외치는 구호란 좌중의 사람들 모두의 희망을 담은, 말하자면 모두의 동의를 구하는 성격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위하여!" 가 됐든, "지화자~!" 가 됐든 "마시고 죽자!" 가 됐든 말입니다. 그러니 문제의 오아무개씨는 "자, 자, 여기 앉은 열 명, 모두 노무현 시발놈 개새끼! 하고 다짐하는 거야!" 뭐 이런 생각이었던 겁니까? 이왕 건배사를 하려면 "세평조통개나발" 같이 미래지향적이고 웅장하고 코스모폴리탄적이면서도 언어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것을 골라 하실 일이지, 왜 저런 욕지거리를 내뱉았는지 모르겠습니다. 2. 이 문제와 관련해, 민주 사회에서 국가 원수에 대한 비판이 처벌받아서야 되겠냐는 논의가 있다고 합니다. 좀 초점이 어긋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번 파문에 대해 오아무개씨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지금이나 군사독재 시절이나 똑같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 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군사독재 시절을 살아보지 않으신 분들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대해 정확히 모른 채, 그저 지금 여기에 대한 불만으로만 꽉 차 있어야 저같은 비유가 나올 것 같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시절이나 전두환 시절에, 공무원이든 준공무원이든 공직에 있는 사람이 직원들 술자리에서 박정희 개새끼! 전두환 씹새끼! 했다고 해보세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파면? 그렇게 해주면 정말 눈물 흘리며 감사해야지요. 지금 벌어지는 일이 로맨스나 불륜이라면, 과거에 벌어진 일은 상대남(녀)의 집을 쳐들어가 배우자, 자식 다 찔러 죽이고 안방 차지하고 살림 차린 뒤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것 정도일 겁니다. 로맨스나 불륜과는 차원이 다른 거지요. 실제로는 더 큰 차이가 날 것 같습니다. 게다가, "과거랑 똑같네?" 하며 비판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과거엔 조용히 입다물고 사셨던 분들이 아닌가요? 그렇게 표현의 자유에 목숨거시는 분들이 어떻게 입에서 쉰내가 날 정도로 입을 다물고 살아 오셨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신들이 "과거랑 똑같네?" 하며 비판하는 상황 자체가 지금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모르시나요? "과거랑 똑같네?" 하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이죠. 3. 권력자에 대한 비판의 상징으로 즐겨 인용되는 우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나 <벌거벗은 임금님> 이 있습니다. 봐라! 임금님이든 왕이든 대통령이든 씹고 싶을 땐 씹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 백번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나 "임금님은 벌거벗었네!" 라는 폭로성 발언의 공통점은, 서술의 형식이 사실에 대한 진술이라는 것입니다. 임금님 귀는 실제로 당나귀 귀였고, 다른 임금님은 실제로 홀랑 벗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의 미덕과 교훈은 권위와 억압으로 진실을 은폐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진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노무현이 시발*인지는 알 수 없지만(정의가 불분명), 개새*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저 말은 그 진술 구조 속에 아무런 사실(fact)이나 진실(truth)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찍 내뱉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네... 그저 욕입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이번 사태를 놓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 운운 하고 민주화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자니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사상의 자유를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던데, 뭐, 그렇게 보면 세상을 씨발놈과 개새끼로만 파악하는 씨발노미즘 개새끼주의의 사상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시는 것도 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4. 어떤 기사에서는 "민주 국가에서 그 정도의 말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라는 의견이 있다고 요약했군요. 물론 민주 국가에서는 그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심한 말도 할 수 있고, 그보다 훨씬 더 심한 생각도 가질 수 있어야죠. 문제는 민주 국가에서 "그 정도의 말" 로 봐줘야 한다는 것이 겨우 저런 조야한 욕지거리라는 것이고, 또 그것이 혀에서 나와 공중으로 날아간 자리(setting)인 것이죠. 이것은 민주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노시개"의 언어 구조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만 주목하는데, 정작 중요한 부분은 시발놈 개새끼라는 부분입니다. 만일 문제의 오아무개씨가, 노시개가 아니라 자기 직속 상관인 박아무개 단장을 지칭하며 "박시개!" 했다거나, 싸가지 없는 합창단 동료 최아무개를 가리켜 "최시개!" 했다고 해도, 그게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술자리에서라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여섯 살 철부지 딸이 "철수는 개새끼야!" 라고 했다면 당신은 딸이 철수를 비난해서가 아니라 욕을 입에 담았기 때문에 회초리를 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노시개 사태는 민주화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윤리의 문제가 핵심이라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에 쓴, 욕지거리로만 가득찬 신문 기사의 독자평에 대해 쓸 때에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걸 보면, 마치 붐비는 전철 안에서 희한하게도 오로지 욕으로만 형성된 언어(... 그것도 재주)를 소란스럽게 내뱉는 중고생 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5. <넘버 3> 에 보면 욕 잘하는 검사(최민식)가 나옵니다. 말끝마다 조옷같은 쉐끼를 달고 다녀서, 깡패가 보면 먼저 질릴 정돕니다. 그렇게 대화를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내는 그이지만, 그가 부장검사하고 대화하거나 여럿이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씨발놈 개새끼 하겠습니까? 그저 돌아와서 혼자 전화통이나 부수는 거지요. 욕, 할 수 있습니다. 욕의 미덕도 아주 크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잘 가려서 해야 합니다. 때와 장소를 잘못 짚고 하다가는 코뼈가 부러지거나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다는 것은 유치원 쯤에서 배우는 상식이 아닌가요? 이불 속에서 식구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고, 술자리에서 친구와 할 이야기가 있고,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할 이야기가 다 따로 있습니다. 그 차이를 잘 알아야지요. 국가 원수에 대한 욕지거리를 공공의 자리에서 꺼내 놓았다고 안기부 직원이 와서 잡아가기 때문이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말 할 자리와 하지 않을 자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좋아지고 권위주의 군사독재 체제의 독소적 분위기가 사라진 자유의 시대란, 곧 제 스스로 진퇴를 판단할 줄 아는 지혜와 현명함이 더욱 필요한 자율의 시대란 말과 동의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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