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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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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면 나누고 싶어집니다. 사람(상대)도 그렇고 사물(대상)도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나 나누어 주고 싶고, 좋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무엇이든 자기 소유의 영역 안에 넣어두어야 성이 차는 물질주의 시대에, 후자는 좀 억지가 될까요. 그러나 적어도 취미나 여흥 같은, 말하자면 나누어도 그 양과 값이 떨어지지 않는 문화 자산의 경우는 남과 나누고 싶고 나누어서 더 큰 기쁨을 얻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몇 해 전 일. 황인용 선생이 진행하는 교통방송의 심야 팝 프로그램을 들으며 집으로 오던 퇴근길이었습니다. 그 날 방송은 특집이었는데, 희귀한 팝송 디스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나이 지긋한 애청자 아무개씨가 초대 손님으로 나왔습니다. 그가 수집한 귀한 음반들을 청취자에게 들려주는 시간으로 꾸며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귀한 것들을 자기가 손에 넣게 된 경위, 말하자면 오로지 음반 하나를 찾아서 해외 여행을 나서고, 이미 해체된 밴드의 데뷰 앨범을 구하기 위해 유럽이며 미국의 벼룩시장들을 헤메고, 산 넘고 물 건너 고생하며 다닌 이야기를 노래 중간중간에 수다스레 풀어놓았습니다. 팔자는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굳이 미친 놈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것에 미치면 그 한 길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 또한 사람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며 듣고 있었습니다. 황인용 선생은 적당한 곳에서 맞장구를 쳐주며, 마치 수다스럽고 맘 급한 소리꾼을 추임새 마디마디로 적절히 통제하는 고수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자꾸 귀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희귀한 판의 희귀한 노래를 올리는데, 음악이 시작되고 나서도 자꾸 이 초대 손님 아무개씨가 끼어드는 겁니다. 예를 들면, 황선생이 "이번 곡은 누구누구의 무슨무슨 곡입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하고 멘트를 넣고 전주가 일단 시작되었는데, 좀 있다가 난데없이 아무개씨의 목소리가 툭 끼어들어서 "이 판이 언제 나왔냐하면 말이죠…" 하고 곡 중간에 말참견을 넣는 식이었습니다. 노래마다 자꾸 그렇게 잡소리가 튀어나오니 희귀하고 나발이고 짜증이 났습니다. 방송 사고가 아니라면 벌어지기 어려운 이 희한한 상황이 계속된 이유는 방송이 거의 끝날 때쯤 해서 밝혀졌습니다.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황선생은 미안하다는 투로 청취자에게 양해를 구했는데, 사연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 희귀한 노래(음반)의 소장자인 초대 손님 아무개씨는 자신이 어렵게 구한 그 노래들이 방송을 탐으로써 다른 청취자가 녹음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는 겁니다. 자신이 어렵게 구한, 산 넘고 물 건너 산전수전공중전을 겪으며 막대한 투자를 해서 모아 둔 그 희귀한 음악들이 방송이라는 broadband 시스템을 통해 다른 사람의 손에 쉽사리 들어간다는 것은 그로서는 용납할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그 아무개씨는 노래 중간중간에 자기가 끼어들어 녹음을 방해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방송에 출연하기로 하는 약속이 사전에 맺어졌던 것이죠. 음악이란 정녕코 다른 사람과 나눔으로써 그 기쁨이 서너 곱이 되는 법인데, 오로지 자신만이 독점하고 즐기기 위해, 방송의 상궤를 무시해가며 그런 희한한 방안을 짜낸 그 아무개씨가 어떤 화상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결국 그의 취미란 "음악"이 아니고 골동품 같은 희귀품이었으며, 거액을 투자해 재화를 사 모은다는 점에서 부동산 투기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음악만의 시각으로 보면 그는 나눌 줄 모르는 불쌍한 존재였지요. 애청자들이 간혹 그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의 노래를 방송을 통해 녹음하는 기회를 가졌더라도, 그것이 그가 어렵사리 구한 희귀 음반의 가치를 떨어뜨리겠어요?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기를 쓰고 음악을 저 혼자 독점하려 했던 그 기막힌 화상도 요즈음엔 아마 그런 일을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 도처에 흘러 넘치기 때문입니다. 주로 인터넷 덕분인데, 웬만한 팝 음악은 국산이든 외제든 인터넷을 통해 쉽게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죠.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5년에 저서 <디지털이다> (Being Digital) 에서 디지털 세상이라는 신경지를 펼쳐보인 MIT 미디어랩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비트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기존 도서관에 책이 있습니다. 누가 와서 그 책을 빌려갑니다. 그럼 다음 대출자는 빌려간 사람이 책을 서가에 돌려놓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 다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다릅니다. 사이버 세상에 디지털 정보가 하나 있습니다. 누가 그 정보를 가져갑니다. 그래도 그건 그대로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또 가져갑니다. 동시에 이천만 명이 가져가도 그 정보는 그대로 있습니다. 네그로폰테는 이처럼 정보의 단위가 비트가 되면서 급격히 증대되는 정보 소통량을 세상이 바뀌는 요체로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급격히 증대되는 정보 소통량의 일부가 지적재산권의 대상이 되는 음악이나 영화 같은 것이어서 복잡한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인터넷으로 원하는 음악이며 영화를 내려받을 수 있는 사이트가 문제가 된 지는 벌써 오랩니다. 미국에서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냅스터가 소송 대상이 된 이래, 또 한국에서도 비슷한 파일 공유 사이트들이 된서리를 맞은 이래 인터넷을 통한 음악 공유는 많은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규제를 좀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저작권 관련법이 개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법적으로 문제가 되어도 인터넷을 통한 음악 공유 방법이 또 새로 생기니, 수요자가 존재하는 한 공급이 사라지기 어려움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별한 비용 지불 없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 그 수요 또한 사라지기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인터넷은 그 속성상 필연적으로, 혹은 원초적으로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현명한 해결책이 있으면 좋으련만, 경제적 관계뿐만 아니라 정보와 사람과 세상을 보는 철학적 시각까지 함께 얽혀 있어서, 당분간 엉거주춤한 상태로 지내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회 영역 중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분야 중 하나인 기술의 진보를 가장 속도가 느린 분야 중 하나인 법률적 장치가 따라가지 못해서 벌어지는 긴장과 모순입니다. 그렇더라도, 그 욕심꾸러기 음반수집가 아무개씨를 생각하자면 통쾌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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