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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절반, 학교 수업도 못 따라가
난리났습니다. 우리 학생들의 학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기사가 나온 게 엊그제인데, 갑자기 학생 절반이 정상 교육도 제대로 못따라가는 공교육 황폐화 상황이 됐습니다. 그동안 사교육에 처바른 돈이 얼마인데 학생들이 학교 교육도 제대로 못따라간단 말인가요? 도대체 학교는 뭘 하고 정부는 뭘 하고 있단 말인가요? 교육부가 발표한, 2003년도 학업성취도 평가 분석 자료에 대한 연합뉴스 발 기사의 제목입니다. 너무 놀라서,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교육부가 11일 내놓은 2003년 학업성취도 평가 분석에 따르면 중.고교생 10명 중 1명 이상이 최소한 기초학력도 갖추지 못하는 등 학력 저하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분은 교육부 발표에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은 초6의 경우 2~5%, 중3은 5~12%, 고1은 8~13%로 나타났으며" 로 된 것에 근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수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기사 말대로 학력 저하가 심각한지 어떤지 도무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저하(떨어져 낮아짐)라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른 해와 비교(통시적 비교)하거나,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공시적 비교)해야만 합니다. 교육부 발표 자료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2002년과 2003년이 똑같은 문제를 적용한 것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아, 2003년의 기초학력 미달자가 2002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기사에서 "학력 저하가 심각한 수준" 이라고 한 것과는 다른 결과입니다. 저하란 단순히 낮다는 뜻이 아니라 높았던 것이 떨어져 낮아진다는 말입니다. (이 조사는 2001년부터 시행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2001년 자료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학력 상승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학력 저하라고 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발표 자료에만 기댄다면, 차라리 학력 저하가 심각하다기보다 학력 상승이 뚜렷했다고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또 교육부 자료에 나온 외국의 예를 인용한 기사는 "외국의 경우 교육부는 외국의 경우 기초학력 미달자가 미국은 30~42%, 영국은 38%로 최근 조사됐다고 소개했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비교를 보면, 세 명 중 한 명이 기초학력도 갖추지 못한 외국에 비해 우리의 학력 수준이 훨씬 높은 게 아닙니까? 그런데도 여기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 없이 그냥 휙 넘어갔습니다. 기사는 "아울러 학교수업을 '무난히' 받으려면 `보통학력 이상'이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중.고생의 절반 가량이 수업내용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라고 합니다. 도무지 보통 학력 이상이어여 학교 수업을 무난히 받을 수 있다는 평가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무난히란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근거가 불확실한 단정을 전제로 하여 충격적인 결과를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기사 제목으로까지 올렸습니다. 문제는 교육부 발표 내용 어디에도 "수업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는" 혹은 "소화하지 못하는" 학생 비율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장 학력이 높은 학생 집단인 "우수 학력" 판정 학생들도 "기본 내용을 대부분 이해한 수준" 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소화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기사의 논리에 따르자면, 중고생의 전부가 수업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라고 단정할 수 있고, 제목을 중고생 전부 학교 수업 못 따라가 라는 충격적인 것으로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참고로, 이번에 조사된 과목은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국어, 사회, 영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숫자를 들여다볼 때 언제나 드리는 말씀이지만, 숫자는 진실을 일부 반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고, 만일 그 비율이 높다면 현재의 수업 내용과 방식에 큰 문제가 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저널리즘이 그 조사된 숫자를 해석하면서, 숫자 자체에 의거하지 않고 마음대로 자의적인 틀을 들이대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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