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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5일,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의 악명 높은 한 교도소에서 44년을 보낸 죄수 한 명이 석방되었습니다. 올해 나이 62세로 인생의 3분의 2를 끔찍한 감옥에서 보낸 윌버트 리듀 (Wilbert Rideau) 라는 이름의 흑인 죄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종신수도 있고, 사형제도가 없는 곳에서는 극악한 죄를 지은 범인에게 "징역 230년" 같은 판결이 내려지기도 하니, 감옥에 오래 있다거나, 그러다 특별 감형 따위로 석방된다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겠습니다. 지은 죄가 위중해서 죄값을 받는 게 이상할리는 없겠지요. 장기수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언제나 죄값보다 지나친 처벌로서 장기 투옥되고 있는 경우가 되겠습니다. 리듀의 경우, 사건이 벌어진 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재판이 잘못되었음을 인정받아 새로 재판을 벌여 석방된 특이한 경우입니다. 리듀가 투옥된 것은 1961년 2월에 벌어진 은행강도 사건에서 줄리아 퍼거슨이라는 백인 여성을 죽이고 다른 백인 두 명을 부상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재판에서 리듀는 그의 살인이 혼란 상황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검사는 리듀가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퍼거슨과 다른 희생자들을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살인죄(murder)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재판이 벌어지던 40여 년 전은 흑백 차별이 보편적이었으며, 거리 곳곳에 "백인 전용" 이라는 간판이 흔하게 걸려 있던 때. "깊은 남부" (Deep South) 루이지애나에서 백인만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검사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고 리듀에게 살인죄 유죄를 평결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그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는, 리듀가 수감되어 있던 마을 구치소에 백인 군중이 몰려와 그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정도였습니다. 물론 사적인 처형을 하려는 것이었지요. 이후 리듀는 1973년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루이지애나의 사형 제도를 불법화하는 바람에 감형되어, 그동안 종신형을 살아 왔습니다. 그가 지난 토요일에, 투옥된 지 44년만에 풀려나온 것은 최근 다시 벌어진 재판에서 그에 씌어진 혐의가 뒤집혔기 때문입니다. 백인 일곱명과 흑인 여섯명으로 구성된 재심 배심원단은 그의 범죄가 계획적 살인인 murder 가 아니라 우발적이고 고의성 없는 살인인 manslaughter 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자마자 리듀는 즉시 석방되었습니다. (manslaughter 는 일시적 격정에 의하여 저지른 비고의적인 살인으로, murder 보다 가벼운 죄로 취급됩니다.) 리듀가 죄를 저지를 당시 manslaughter 죄의 법정 최고형은 21년. 그러나 그에게 적용된 것은 murder 죄, 형량은 사형. 그리고 지금까지 44년. 그는 자기가 받아야 할 죄값의 두 배 이상을 치른 것입니다. 리듀의 재판이 큰 관심을 모은 것은, 그것이 단순히 한 살인 재판이 아니라 미국 사법 조직이 인종 차별에 얼마나 허약한가를 상징하는 시금석처럼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초기 재판에서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백인 위주로 구성된 사법 당국과 배심원들은 리듀를 고의적이고 계획적 살인자로 몰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이 진행된지라, 이후 오랫동안 많은 흑인 단체와 민권 운동 단체들은 리듀가 과잉 처벌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의 석방 운동을 펼쳤습니다. 리듀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또다른 이유는, 수감된 동안 죄를 반성하고 경이적인 자기 발전 노력을 기울여, 탁월한 작가이자 여러 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로 변모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생 전부를 감옥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를 운명이었던 리듀는 감옥 안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의 완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질 당시 리듀는 중2 중퇴 학력을 갖고 있는 청소부였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최악의 교도소로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 주립 앵골라 교도소에서 처형을 기다리던 그는 교도소에 비치되어 있던 종교 관련 서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책을 걸신들린 듯이 읽어 나갔습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사후에 받아야 할 심판에 대해 차근차근 공책에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독학으로 시작한 그의 글쓰기는 곧 한 백인 소년이 인종주의적 분위기의 남부 사회에서 겪는 내용을 그린 소설로 발전했습니다. 우연히 그와 편지를 주고받게 된 뉴욕의 한 출판사의 젊은 편집장은 그에게 글쓰기와 관련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973년, 미국 대법원이 루이지애나의 사형 제도를 헌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결정한 뒤,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그는 일반 수용동으로 이감되었습니다. 약간의 자유를 더 갖게 된 리듀는 곧 무기징역수들을 위한 출판물 <더 라이퍼> (The Lifer) 를 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교도소에서 발행되던 출판물 <앵골라이트> (The Angolite) 의 편집장이 된 그는 교도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날카로운 기사와 칼럼을 쓰면서 점차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특히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감옥 밖의 세계에 생생하게 전달했습니다. 이 잡지는 곧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됐으며, 리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뉴스레터 형식으로 발간되던 <앵골라이트> 도 곧 일반 잡지와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번쩍이는 지질의 잡지로 거듭났습니다. 이후, 이 잡지와 리듀를 비롯한 잡지의 저널리스트들은 수많은 언론상을 받게 됩니다. 1970년대 후반에 리듀는, 감옥에서 한 발도 나가지 않은 채,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감옥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로, 아카데미상 후보에까지 오른 <더 팜> (The Farm) 을 공동 감독하기도 하고, 역시 상을 받은 NPR (National Public Radio) 다큐멘터리를 공동으로 쓰고 직접 나레이션까지 했습니다. <라이프> (Life) 지는 리듀를 "미국에서 가장 교화된 죄수" 라고 불렀습니다. 이번에 그를 석방케 한 재심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리듀가 감옥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물론 배심원이 되고 나서도 리듀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차단되었습니다. 혹시라도 리듀에게 우호적인 판단이 내려질까봐서였습니다. 그밖에도 검찰측은 조금이라도 리듀에게 동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증거들은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그런데도 리듀측의 주장과 같은 평결이 나온 것입니다. 피부색만으로 사람을 멸시하는 인종주의가 일상화된 시간과 장소에서 편견으로 가득찬 백인들의 판단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은 리듀가 재판 뒤 일사천리로 처형되었다면, 오늘날 뛰어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존경받는 윌버트 리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처음 체포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살인을 저질렀음을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지나치게 치렀습니다. 미국 사회의 천형과도 같은 인종 갈등은 이같은 사건을 통해서도 그것이 결코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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