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y deulpul

내가 사는 곳 근처의 한 대학 캠퍼스. 작년 한 해 동안 주차위반 단속을 하여 벌어들인 벌금이 천문학적 숫자라고 한다. 그 전해에 새로 주차 시스템을 좀 바꾼 결과다. 엄청난 돈이 굴러들어온 학교 교통 관련 부서는, 속으로는 입이 찢어지면서도 겉으로는 점잖게, 늘어난 수익을 주차 단속을 강화하고 관련 시설물을 세우거나 정비하는 데 쓰겠다고 한다. 주차 위반으로 들어온 거액을 주차 위반을 더욱 단속하는 데 쓰겠다는 것. 돈벌이의 나선형 될라.

수많은 사람이 주차 위반을 하게 되면 공돈 굴러들어온다고 좋아만 할 게 아니라, 주차 시스템에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주차 딱지를 뗄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위반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보편적이라는 것은, 주차 규정의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법을 보편적으로 어기게 되면 과연 많은 사람들의 법 윤리가 흐뜨러져서인지, 혹시나 그 법의 규정과 운영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면 그 법이 모호한 것은 아닌지,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눔과 가름이 없는 땅 위에 처음부터 길이 존재했을 리 없다. 길은 산을 피하고 물을 따르며 짐승과 사람의 발을 타면서 만들어진다. 앞선 자의 행로에 동의하는 발걸음이 그 앞선 발걸음 위에 더하여지고, 그 발걸음이 다시 다른 발걸음을 불러들이면서 이윽고 풀뿌리가 닳고 황토흙이 드러나 길로서의 꼴을 갖추게 된다.

건물과 풀밭이 어울려 있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라. 사람의 동선을 유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멘트 포도(鋪道)가 있고, 그에 더하여, 잔디 사이로 사람의 발을 타서 만들어진 비공식 인도가 한두 줄기 함께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 비공식 인도란 땅덩이 표면에 길이 생긴 그 원초적인 방식으로 형성된 것인 바, 두 점을 잇는 최단거리에 근접한 경로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인위적 시멘트길이 길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제자리에 그어져 있지 못하다는 것을 시사하게 된다.

아무 것도 없던 곳 위에 길이 생기는 이치는, 바로 많은 사람이 뻔질나게 오가며 밟는 신발 아래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되어 나옴을 알려준다. 중구난방(衆口難防)이며, 중답난방(衆踏難防)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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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happyalo 2005/01/26 11:13 # 답글

    맞는 말씀.
    인간을 위한 많은 것이 그래야 하는 거 같아요. 법도 그렇고, 길도 그렇고. 말씀하신 길은 제가 학부 때 시험 답안으로 썼던 건데...(환경심리학) ^^;
    주차... 대한민국 대학들도 주차 위반 딱지까지 끊게 되지 않나 싶네요. 주차료 수입으로 엄청 벌어들이고 있는 모양인데... 근데 실제로는 적지 않은 주차비에 비해 상응하는 서비스는 없더군요. 정작 차들이 많아 복잡한 시간엔 관심도 없고...
  • 에쓰군 2005/01/26 14:15 # 답글

    제도에 사람들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사람에게 맞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라는 생각의 차이인건가요. 탁상행정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가에서 시작하는 것 같네요.

    그나저나... 저 부서에 조금이라도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저대로 계속되어가지는 않을텐데요. 이래서 여러가지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Hikaru 2005/01/26 23:43 # 답글

    목적이 전도되는 경우가 많지요. 걷는 이를 위하여 길을 만드는 것이 도리지만, 모양을 위한 길을 만들기도 하고, 단속을 하기 위해 돈을 걷어야하지만, 돈을 걷기 위해 단속을 하게 되지요. 위법이라고만 할 뿐, 어떻게 해야 고쳐질지 생각하지 않는 것은.. 공감합니다.
  • deulpul 2005/02/04 02:03 # 답글

    happyalo: 그러셨군요. 심리학의 영역은 참 넓고도 다양합니다. 그나저나 또다시 불도우저 앞에서 삽질을 한 모양이 된 것인가요...

    에쓰군: 탁상행정은 역시 탁상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게 아닐까요. 책상과 의자(자리)를 잘 보전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튀지 말고 나서지도 말고 있는 거 바꾸려 하지도 말고 그냥 가야 하는 거죠. 게다가 돈까지 막 굴러들어오는 판이니까요.

    Hikaru: 역시 돈(자본)의 논리를 이기기 어렵다는 말이 되겠네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온갖 복잡하고 실제로 시행하기 어려운, 혹은 실상과는 거리가 먼 생활 법률 (소방법, 건축법 따위) 은 좀더 합리적이고 현실을 반영하는 쪽으로 고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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