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보울에 달리는 수퍼 광고들 by deulpul

이번주 일요일(2월6일)은 많은 미국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 중 하나입니다. 바로 미식축구 최종 결승전인 수퍼보울(super bowl)이 열리는 날. 100명에게 여론조사를 하여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을 맞추는 텔레비전 게임 쇼 "Family Feud" 에서, 일년 중 가장 기억해야 할 날을 조사한 결과 수퍼보울 데이는 생일, 결혼기념일에 이어 3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미국인들에게는 중요한 날입니다.

고등학교 때 한 수학선생님은 미식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어젯밤 AFKN 에서 본 미식축구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하는 일이 흔했을 정도였습니다. 축구(soccer) 라면 침흘리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던 반 친구들에게도 미식축구는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구기였습니다. 그저 하품하며 선생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AFKN 미식축구에는 딱 한가지 미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적당히 맞장구만 잘 친다면 지루하고 따분한 수학 시간이 절반 정도 (가끔은 3분의 2 정도까지) 후딱 지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문에, 그 선생님의 수학 시간은 곧잘 국사 시간처럼 책에 밑줄을 긋고 읽으며 허겁지겁 진도가 나가는 기상천외한 일이 자주 벌어졌지만 말입니다.

저 역시 미식축구에 별달리 큰 흥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덩치 큰 사내들이 서로 밀고 자빠뜨리며 땅따먹기 하는 것이, 마치 스모 선수들에게 유니폼을 입혀서 핸드볼을 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미식축구를 풋볼(football) 이라고 부르는 것은 순 사기입니다. 한 경기를 내내 지켜봐도 발로 차는 건 킥오프 할때나 마무리할 때 몇 번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로 던지고 받는 게, 이거 완전히 핸드볼이나 수구(水球) 아닙니까. 풋볼이란 모름지기, 손만 갖다 대면 제꺼덕 반칙이 되는 축구같은 경기(마라도나는 빼고)에나 어울릴 만한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하튼 수퍼보울이 곧 열리는데, 이 경기는 여러 측면에서 화제를 낳습니다. 뭐,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이 작년 수퍼보울 중간 공연 때 노래를 부르다 가슴을 홀랑 드러내 난리를 일으켰던 재닛 잭슨 이야기는 아닙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수퍼보울 경기에 달라붙는 광고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만 1억3천만명이라는 엄청난 시청자가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니만큼 광고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고, 따라서 광고 단가도 엄청납니다. 올해 수퍼보울 중계의 텔레비전 광고비는 30초 한 회에 240만달러(25억원) 정도라고 합니다. 일초당 8만달러입니다. 시간이 금이 아니라, 금보다도 훨씬 비쌉니다. 가히 미식축구업계뿐만 아니라 방송업계, 광고업계에도 일년 중 가장 큰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광고비가 비싸니만치 주로 다국적 성격의 대기업들이 이 황금같은 광고를 차지합니다. 버드와이저, 펩시콜라, 샌드위치 체인인 서브웨이, 스낵 회사인 프리토레이 등이지요. 가만히 보면 미식축구 중계와 잘 어울리게, 먹고 마시고 신나게 노는 데 관련된 상품들입니다. 그러나 가끔,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시간에 광고를 확 때려서 일확천금의 효과를 노리는 중소기업들도 도박을 합니다. 구질구질하게 조금씩 광고하느니, 아예 30초에 사운을 걸고 "짧고 굵게" 베팅하자는 전략입니다. 상품이 어떤 것이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MSNBC 보도에 따르면, 올해 이같은 "짧고 굵게" 의 대표 주자는 부엌 싱크대 업체인 코센티노라고 합니다. 이 회사는 이전에 텔레비전 광고를 한 경험조차 없지만, 스포츠 스타를 동원해 1백만달러짜리 광고를 찍고 240만달러를 내고 수퍼보울 중계 시간 중 30초를 샀습니다. 이 비용은 이 회사가 작년 일년 동안 쓴 광고비의 두 배 이상인 금액입니다.

물론 이같은 광고 도박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예컨대, 인터넷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던 2000년 수퍼보울은 17개의 닷컴 기업들이 광고를 내는 바람에 "닷컴 보울" 로까지 불리웠지만, 지금까지 그 이름이 남아 있는 업체는 거의 없습니다. 1999년에 광고를 냈던 신발유통업체는 광고가 대실패한 뒤, 자기네 광고를 제작한 광고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광고학자들은 이 엄청난 비용의 광고가 과연 돈값을 제대로 하는지, 광고주의 희망대로 소비자의 머릿속에 제품을 명확히 각인시키는지 다양하게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연구에 따라, 또 연구 대상이 된 광고의 제품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비싼 광고를 내는 광고주들은 1억3천만 시청자나 잠재적 소비자뿐 아니라 그들과 비즈니스를 하는 협력업체, 도매상들, 관련 업체, 경쟁 업체까지 모두 그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광고 업체들:

안호이저부시(버드와이저 맥주), 프리토레이(감자칩), 서브웨이(샌드위치), 펩시콜라, 캘리포니아 에메랄드(아몬드와 너츠), 매킬헨니(타바스코), 포드(링컨 자동차), 볼보자동차, 혼다트럭, 제너럴모터스(캐딜럭 자동차), 몇몇 영화 광고, 아메리퀘스트(주택 신용대출), 캐리어빌더닷컴(온라인 취업 사이트), MBNA(크레딧 카드), 시알리스(비아그라의 경쟁제품), 올림퍼스(MP3 플레이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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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비안졸다크 2005/02/02 15:34 # 답글

    확실히, 풋볼은 풋볼 답지도 않죠.. 미국에서 축구가 인기 없는 이유가 긴 시간동안 딱히 쉬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면서요 ?
  • Skep 2005/02/02 17:10 # 답글

    슈퍼볼 광고경쟁; 웃지못할일이군요;
    올해 광고업체에 그 유명한 P&G가 없네요; 최근 질레트를 인수한 P&G의 광고전략도 듣기로는 꽤나 특이한편인데말입니다;

    여담으로, 슈퍼볼의 볼을 막연히 Ball로 알고있었지만 Ball이 아니라 그릇을 뜻하는 Bowl이었군요;
  • happyalo 2005/02/02 22:04 # 답글

    미식축구는 문외한인 저로서는 대단히 미국적인, 약간 무지막지한 스포츠로만 보이더군요.
    유학생들은 뭐, 보다보면 빠진다는데, 미국 방송에서나 오며가며 몇 번 본 저로서는 단순무식하게만 보여서... ^^;
  • deulpul 2005/02/04 02:59 # 답글

    비안졸다크: 네, 전 개인적으로 90분 내내 죽어라 뛰고 종료 호각이 울리면 기진맥진해서 쓰러지는 축구가 더 순수하고 정열적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아마 전후반 각각 45분으로 되어 있는 축구 경기를 25분씩 넷으로 쪼개든지, 아니면 아예 권투처럼 3분짜리로 해서 30라운드로 만들면 광고 싣기도 좋고 좀더 인기가 있지 않을까도 싶네요.

    Skep: P&G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만, 이번 광고에는 끼어있지 않은 모양이어요. 미식축구 주요 대항전인 무슨무슨 보울의 보울은 전부 bowl 이라네요. 대학 미식축구의 왕중왕전 로즈보울도 마찬가지구요. 축구 경기장이 밥그릇처럼 우묵하게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얼핏 들은 것도 같습니다만... 어떤 경기장은 안그런가...

    happyalo: 네,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자주 끊어지는 형식의 운영이 별로 마음에 안듭니다. 물 흐르듯 흘러서 몰아칠 때도 있고 한숨 돌릴 때도 있고... 하는 게 스포츠의 참맛 같거든요. 부상도 워낙 잦아서, 미국에서도 (특히 학부모단체들) 반대 여론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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