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와 자살율 감소 by deulpul

프로작 Prozac 이라는 약이 있습니다. 우울증 치료제로 폭넓게 쓰이는 약으로, 1980년대 말 미국 FDA 의 승인을 받고 판매되면서 중증 우울증 환자들에게 복음과 같은 존재가 되어 왔습니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서 장애가 단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뇌 속에서 활동하는 각종 신경 물질의 부조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진 이래, 약물을 통해 이같은 장애를 치료하거나 완화하는 길이 열리고 많은 약들이 개발되었습니다. 프로작도 그 중 하나로, 우울증이 발생할 때의 뇌 속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변화를 통제하여 정상적인 상태로 만드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한 신경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프로작은 항우울제의 대표 격으로, 지금까지 전세계 2천만명 이상에게 처방되었으며, 한 해 수조원어치가 판매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도 수백원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알게모르게 매우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약인 것 같습니다. 이 약으로 상징되는 우울증으로부터의 해방은 영화 <프로작 국가> (Prozac Nation) 로도 묘사되었을 정도입니다.

최근 <엘에이 타임즈> 에 따르면, 미국의 두 정신의학자들은 약학 저널 <네이쳐 리뷰즈: 드러그 디스커버리>에 발표한 글에서, 1980년대 후반 이래 미국의 자살율이 계속 떨어져 온 것은 바로 프로작과 같은 항우울증 약품이 개발되어 널리 처방되어온 덕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최근 미국과 영국의 보건 당국이, 프로작과 같은 약을 청소년들이 섭취했을 때 그 부작용으로 자살이 늘어나는 점을 들어, 항우울제에 이같은 위험을 명시하라는 규정을 제정한 것을 비판하면서 그와 같은 주장을 폈습니다.

이들은 자살을 불러오는 가장 큰 원인은 제대로 치료되지 않는 우울증이지 항우울증 약품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자살율은 1988년의 10만명당 13명에서 2002년에는 10.5명으로 떨어졌습니다. 1990년대에 우울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그전 기간에 비해 50% 이상 늘었는데, 이는 프로작과 같은 항우울제가 널리 보급된 영향이었습니다. 두 학자가 제시한 도표는 오른쪽과 같은 것입니다. 중간의 화살표는 프로작과 같은 항우울제가 승인된 시기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이 도표는 자살율 변화를 실제보다 확대하여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전문가는 이같은 정신의학자들의 프로작에 대한 변호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며, 1980년대 말 이후 자살율이 떨어진 것은 그 시기에 도입된 총기류 규제법안의 영향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자살은 대부분 총기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프로작과 같은 항우울제 복용이 오히려 자살을 늘리는가 아닌가 하는 점은 최근 뜨거운 의학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벌어진 자살을 분석한 결과, 자살자의 5분의 1이 자살 당시 이같은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조사도 나왔습니다.

어떤 분석에 따르면, 프로작과 같은 항우울제는 특히 복용 초기에 자살율이 늘어나는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약물 효과에 따라 몸의 에너지와 활동성은 급격히 향상되지만, 실제로 정서적 측면은 그만큼 빨리 오르지 않으므로 이 불균형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미국 보건 당국은 이같은 약물 처방이 적어도 청소년들에게는 자살에의 충동을 더욱 가져온다고 보고, 2월부터 이들 약품에 부작용의 위험을 명시하는 문구를 덧붙이도록 했습니다. 위의 두 정신의학자들은 이같은 조처가 어른들조차 이 약을 잘 복용하지 않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또다른 문제를 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점점 더 항우울제를 먹지 않게 되고 자살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어쨌든 수년 간의 자살 통계와 그 변화를 한 가지 원인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항우울제가 중증 우울증을 완화시키고 더 나아가 자살을 막는 데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자살율이 떨어지는 데는 다른 요인도 작용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약물 복용으로 자살이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으니 말입니다. 특히 자살과 같은 현상은 개인의 상황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고 보아야 할 듯합니다. 한국에서도 IMF 사태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자살자가 늘었다는 소식도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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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Typical 2005/02/09 07:48 # 답글

    흥미롭군요. 현상을 보고 해석하는 방법은 참 여러가지에요. 총기를 허용하면 자살율이 올라가는지도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자살자의 5분의 1이 자살 당시 이같은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조사도 나왔습니다. <= 이건 "교통사고 사망자 중 20%가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다고 조사됐습니다."수준의 가치 없는 자료 같습니다. 항우울제를 먹어도 자살할 수 있다는 정도...
  • Noche 2005/02/09 08:04 # 답글

    Durkheim의 자살론을 읽으면 개인주의적 생활양식이 자살율을 높힌다는 이론을 펴지요. 사실 공동체적인 삶이 강한 지역보다 개인주의적인 지역이 자살율이 높게 나왔구요. 아주 옛날 연구지만 시사하는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오기 쉽다는 건 상식에 가까운 얘기인 것 같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구조의 변화, 공동체적 강화는 쉽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 특히 개인주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인 만큼... 또 공동체주의라고 꼭 좋은 것만도 아니구요. (미국의 작태를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 lunamoth 2005/02/09 10:15 # 삭제 답글

    세계4위의 연간 자살자수의 국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클듯 싶네요. 사망원인 5위가 자살이라는 얘기도 있고요. 이타적 자살과 이기적 자살의 비율이 다른 나라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일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 "자살에 관한 한 나는 두 가지 태도를 경계한다. 첫번째는 자살을 범죄 혹은 질병으로 몰아붙이는 태도이고, 두 번째는 자살을 통계로 환원함으로써 자살로부터 그 실존적 의미를 박탈해 버리는 태도다." 라는 알프레드 알바레즈 말이 들려오는 듯 싶습니다만. :|
  • Skep 2005/02/09 20:44 # 답글

    전 정신적인 문제를 적지않게 가지고 있는사람이지만, 제 스스로의 의지로 해결하려고 생각하는사람입니다.(단지 현실적으로 뚫기 힘들어서 그렇지.) 그렇기때문에 약물 항우울제 치료같은것은 웬만해서는 받지 않는편이죠. 먹으면 피곤하고 긴 잠에서 깨면 머리가 빠개질정도로 아프고. 당장의 효과는 있을지는 몰라도 지속적으로 먹어서 큰 효과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직까지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잘 읽었습니다. 횡수 덧글 마칩니다.
  • deulpul 2005/02/11 05:35 # 답글

    A-Typical: 총기 허용과 자살율 증가와의 관계는 저도 궁금하군요. 그리고, "5분의 1" 문제는 약이 자살율을 막는데 도움이 안된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말씀대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습니다.

    Noche: 뒤르껭의 자살에 대한 관찰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위기와 공동체 붕괴를 말할 때 잘 등장하는 사례지요. 저역시, 그의 시대와는 많이 다른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lunamoth: 알바레즈는 그 첫째로 종교적 입장에서의 접근을, 그 둘째로 (사회)과학적 입장에서의 접근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살이 단순한 숫자로 환원되고 그에 그치는 것은, 어떤 필요에 의해 그렇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살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죽음은 모두 미시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리리고 믿습니다.
  • deulpul 2005/02/11 05:35 # 답글

    Skep: 크든적든 정신적 문제를 갖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약물이란 역시 인위적인 조절 장치이니만치 부작용이 나오게 마련인 모양입니다. 의지로 이겨내신다니 반갑습니다. 사실 전 모든 약에 대해 일반적 거부감 비슷한 것을 갖고 있거든요. 크게 약 쓸 일 없이 살아온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요...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킨이랑 다 바꾸셨네요?
  • 기불이 2005/02/17 16:38 # 답글

    음.... 약좋다고 남용말고 약모르고 오용말자 는 표어도 있습니다만... 약있는데 참지말자 라고 저는 덧붙이고 싶습니다. 결국 본인의 선택입니다만.
  • deulpul 2005/02/17 18:29 # 답글

    정말, 가끔은 좀 미련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저는 버티자주의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초기에 약 써서 얼른 때려잡으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무슨무슨 병이 유행한다는 안내서에, 처치를 안하고 놔두면 큰 병으로 발전할 가능성 몇 퍼센트... 이딴 말을 보면 겁도 납니다, 하하... 끙...
  • happyalo 2005/02/17 23:06 # 답글

    역시 이런 종류의 문제는 방법론적 오류가 없는지가 관건이 될 듯. 단순상관만으로 인과관계를 해석해버리면...
  • deulpul 2005/02/22 17:05 # 답글

    네... 역시 방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 방법 말고... 엊그제는 똑같은 약품이 전반적으로 자살을 늘린다는 연구가 또 나왔다네요.
  • 일용직폐지 2005/08/16 06:12 # 삭제 답글

    약을 먹으러 우울증을 치료받으로 다닐 정도면 자살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죠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걸 인지한 상태 이니까요 그러면서도 자살을 하는 사람은 타인에 의해 불가피하게 그러한 약물 투여 및 치료를 받는 사람들 이겠죠
    자신의 죽으려 하는 의지가 있다면 자살은 실행 됩니다 그어떤 치료나 다른 환경조성이 있드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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