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 넷 세계 by deulpul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인터넷.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점점 더 많은 어린이들이 넷키드(net kid)로 자라남에 따라,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부모들이 골치를 썩이고 있습니다.

널리 애용되는 방법이란 예컨대 자녀들이 해로운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게 보호망을 친다거나, 컴퓨터를 청소년의 방에서 끌고 나와 거실에 두는 따위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인터넷에 매달려 사는 자녀가 걱정스러운 부모들은 뭔가 해야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나날이 발전하는 인터넷 소통은 이같은 "원시적" 방비를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MSNBC 보도에 따르면, 채팅이나 메신저에서 쓰이는 독특한 은어들 덕분에 청소년들은 부모의 감시망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풀려난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사는 한 14살짜리 여학생의 엄마는 자기 딸의 인터넷 생활에 대해 언제나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컴퓨터는 온 식구가 왔다갔다 하는 거실에 놓여 있었고, 엄마는 가끔씩 딸이 채팅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엄마는 최근 자기 딸이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35세의 남자에 홀랑 빠져서 낯뜨거운 대화를 수시로 나누고 있음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기절할듯 놀랐습니다. 그렇게 노심초사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컴퓨터를 뒤져봤으나 별다른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 엄마가 컴퓨터를 들고 경찰서로 달려갈 때까지는 말이지요. 컴퓨터에 익숙한 한 경찰관은 그 집의 컴퓨터에서 각종 암호와 은어, 축약어로 이루어진 텍스트 파일들을 찾아냈습니다. 딸은 문자메세지에서 쓰이는 것처럼 몇 개의 알파벳으로 극도로 축약된 이런 통신어를 통해, 엄마가 바로 옆에서 보고 있어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35세 오빠와 뜨거운 대화를 마음껏 나눌 수 있었던 것이죠.

"nifoc" 같은 말은 엄마가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슨 말인지 알 턱이 없었습니다. 그 엄마가 저 말이 "나 지금 컴 앞에서 홀랑 벗었다!" (naked in front of computer) 라는 뜻임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이 됩니다.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12살짜리 한 소녀는 인터넷 채팅을 하면서 각기 다른 세 명의 인물을 창조했습니다. 물론 세 명 다 모두 자신보다 어른스럽고 성적으로 활발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자신을 수시로 세 인물로 바꿔가며 성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셋 중 한 명은 부동산 업자로 잘 나가는 26세의 여성으로, 상대방을 지배하는 성적 취향을 가진 (dominatrix) 가상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채팅에서 채찍과 쇠사슬, 가죽끈에 대한 이야기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녹였다고 합니다. 초등생 소녀의 이같은 가짜 행각은 3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녀에게 반한 한 남성이 구혼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오기에 이르렀고, 그 바람에 모든 사실이 들통이 났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부모가 잘 감시한다고 믿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다고 합니다. 뉴미디어와 관련한 조사기관인 퓨 (Pew) 인터넷 프로젝트의 조사에 따르면 61%의 부모가 자녀들의 인터넷 이용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인터넷 사용 시간을 부모가 제한하고 있다고 대답한 청소년은 37%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녀들의 인터넷 사용을 모니터링하고 통제하는 프로그램은 영악한 어린 재주꾼들 때문에 별로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고, 채팅에서 쓰이는 언어는 부모로서는 점점 더 알아먹기 힘들게 되어 갑니다. 오죽하면 한 웹사이트에서는 채팅에서 쓰이는 약어나 은어를 정상 언어로 번역해 주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고 채팅 약어집도 정리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자녀의 인터넷 사용 시간을 좀더 적극적으로 통제하거나, 이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채택하는 방안도 권장됩니다. 한 전문가는, 자녀들의 행동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이 잘 모르는 말을 썼을 때는 항상 물어보며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다른 전문가는 아예 부모가 직접 인터넷 채팅에 뛰어들어, 그 문화를 이해하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직접 체험해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모가 모르는 말로 둘러대는 자녀에게 속수무책이라는 겁니다.

부모 노릇 하기가 갈수록 힘든 것 같습니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deulpul.egloos.com/tb/905498 [도움말]
  • 언제나 세대차이; 2005/02/16 14:01 #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 넷 세계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와 관심!!! ... more

  • 뛰는 부모, 나는 아이 2005/02/17 00:30 #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 넷 세계 오늘 아침 아이가 한 말은... 한 동네 사는 1년 위 선배(?)가 늘 PC방에 다니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살짝 드러나는 얘기였다. 말하자면 아이는 무심한 듯 사실을 기술하는 표현을 통해 은근슬쩍 내 의견을 파악하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방식을 취하는 셈인데... 잊을만하면 한번씩 그 선배가 매일 PC방에 간다는 얘기를 하는 아이. 그때마다 나는 PC방은 안 된다, 네가 집에서 게임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라는 말을 했다. 나도 안다. 무조건 금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more

  • 언제나 앞서가는 아이들 2005/03/07 03:28 #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 넷 세계을 보면 부모가 모르는 은어를 사용하여 마음대로 인터넷을 다니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나 자신도 부모님이 모르게 컴퓨터를 사용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기술을 일찍부터 익혔었고 (덕분에 컴퓨터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단순한 방화벽/DirectX 실행 차단/사이트 차단 만으로는 자녀의 컴퓨터 사용습관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은 부모보다 새로운 기술과 방법에 (비교적) 언제나 앞서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 컴퓨터가 많이 막혀 있다면 막말로...... more

덧글

  • 누드모델 2005/02/16 14:01 # 답글

    대단하네요... 인터넷에서 생기는 이런 일은 어찌 통제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저 정보통신교육이나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수밖에는...;;
  • 태엽이 2005/02/16 14:01 # 답글

    좋은 글입니다. 데려가겠습니다...^^
  • 메르키제데크 2005/02/16 16:03 # 답글

    어차피 이는 부모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여야하겠지요. 프로그램을 써봤자, 이는 농약과 잡초의 관계 그이상이 아니게 됩니다.
  • 비안졸다크 2005/02/16 17:21 # 답글

    ..한국의 외계어급은 아니어도 그쪽도 만만치 않은가 보군요. 전 세계적으로 초딩은 문제가 되는 걸까요. 정말이지 애 낳아 키우기는 점점 힘들어져 가는 군요. (별 욕심은 없지만.)
  • 시노조스 2005/02/17 02:29 # 답글

    결국 아이들을 지키려면 알아야한다는 것 같군요. 컴퓨터를 모르는데 컴퓨터를 통제하는건 불가능하겠지요.
  • deulpul 2005/02/17 18:42 # 답글

    누드모델: 역시 휴먼웨어를 잘 조절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죠?

    태엽이: 잘 키워주세요~ 하하...

    메르키제데크: 네, 역시 관심과 애정 같은 근본적인 대책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자녀들에게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사회 여건도 중요할 것 같구요.

    비안졸다크: 옛날 언젠가 비안졸다크님 블로그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 기억이 납니다, 하하... 이제 언젠가 갑자기 욕심이 나실 때가 올지도...

    시노조스: 네! 나이가 들면서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음...
  • 불감자교수 2005/03/16 11:21 # 답글

    불감자교수는 이렇게 생각해용
    컴퓨터가 사람을 바보상자로 만드는구나
    갑지기 문물버리고 먼 무인도에 가서 살고 싶군요..홋홋~~
덧글 입력 영역


Ads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