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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사건이 벌어진 지 2년 가까이 된 2003년 여름에 뉴욕에 잠깐 들렀습니다.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 (WTC) 빌딩 자리를 지나다 보니, 한 가운데에 엄청나게 큰 철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건물의 잔해 철거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발견했다는 이 십자가 형태의 구조물은 빌딩에 박혀 있던 철제 빔이었습니다. 잘리고 구부러진 수많은 철제 빔 잔해들 중에서 우연히 십자 모양 비슷하게 생긴 것을 발견한 미국인들은, 이 건축 폐기물에 지나지 않는 고철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현장 한복판에다 떡하니 세워두었던 것입니다. 폐허 더미 한가운데에 거대한 철십자가가 꽂히자마자, 이 곳은 테러 공격의 희생지에서 종교적 성지로 갑자기 탈바꿈했습니다.
WTC 같은 초고층 건물에서 나온 산더미 같은 잔해를 치우다 보면, 십자가꼴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쓰이는 만(卍)자 형태의 조각도 나올 수 있고, 히틀러가 쓰던 철십자 문양도 나올 수 있었을 테며, 마음만 먹으면 별별 모양 다 찾아낼 수 있었겠지요. 그런 속에서 저렇게 십자가를 찾아내 세우며 피격 현장을 성지로 둔갑시키려 노력하는 그네들 모습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치하기 짝이 없게 보였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9-11 현장은 성지가 되어 가고 있었고,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애국자이자 순교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순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민중들의 넘치는 피로 수십 배로 되갚음이 되었습니다. 9-11 희생자들을 애국적 순교자로 보고 그 원흉으로 난데없이 이라크를 지목해 침략을 감행한 부시 행정부가 저 사건을 바라보는 한쪽 극단이라면, 미국이 9-11 공격을 당한 것은 그동안 미국이 뿌린 저주의 씨앗이 되돌아온 것일 뿐이며 9-11 희생자는 무고한 시민이 아니라 미국이 저지른 잘못의 공범이라고 주장하는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 와드 처칠 (Ward Churchill, 왼쪽) 같은 이는 그 반대쪽 극단이 될 것입니다. 처칠은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한 걸프전 이래 미국이 이라크에 가한 봉쇄 정책으로 수많은 이라크 사람이 희생된 것을 나치 독일의 유태인 대량 학살과 같은 인종 말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나치에 적극 저항하지 않은 당시 독일인 모두에게 학살의 책임이 있듯이, 미국의 대량 학살에 대해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은 미국 사람 모두 일정한 책임을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WTC 는 미국 금융 산업의 중심. 그 안에서 일하던 9-11 희생자들은 학살과 강압을 수단으로 하여 세계에서 끌어오는 미국의 부를 관리하고 그 단물을 빨아먹던 사람들로서, 미국이 세계에 대해 지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9-11 희생자들도 죄없는 시민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물며 펜타곤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또, 미국의 강압 때문에 수많은 어린이들을 비롯해 무고한 동포들이 아예 말살될 지경에 빠진 상황에서, 이에 저항하기 위해 비행기를 납치해 빌딩에 들이박은 사람들은 미치광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정당한 전투 병력이라고 주장합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처칠의 이같은 주장은 미국 사회에서 매우 극심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9-11 이후 애국주의가 팽배한 미국 사회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주장을 공공연히 발표하고 다니는 그는 이미 뜨거운 감자가 되었으며, 미국 사회가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는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강연 오면 처단하겠다" 협박 쇄도 최근 처칠의 주장이 갑자기 전국적 논란거리로 떠오른 것은 지난 1월 뉴욕주의 해밀튼 대학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습니다. 처칠은 이 대학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러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학의 한 교수가, 처칠이 두 해 전 쓴 에세이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사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바로, 9-11에 대한 처칠의 주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에세이 "누군가는 반격한다" 였습니다. 일부 학생이 에세이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며 방문 거부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으며, 이 소식은 AP 통신을 거쳐 급기야 악명 높은 FOX 뉴스의 빌 오레일리 입에까지 오르내리게 됐습니다. 에세이 내용이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이에 열받은 사람들로 해밀튼 대학이 있는 클린턴시는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살해 위협이 나오는 등 폭력 사태까지 예상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결국 대학 당국은 처칠의 초청 강연을 취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학교 당국에 따르면, 처칠의 초청에 항의하는 전화가 매일 100통 이상 걸려왔으며, 그 중 일부는 "자신들이 처칠을 처단하겠다" 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초청 강연이 예정되어 있던 다른 학교들도 그의 방문을 잇달아 취소했습니다. 와드 처칠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는 체로키 계열 인디언 출신으로, 미국 원주민 문제에 대해 학문적 연구와 현실 참여를 병행하며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저명한 활동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 자신은 원주민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아무런 증명이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는 유럽 이주민이 북미 대륙을 점령하면서 원주민들을 멸종에 가까운 상태로 몰고간 것을 인종 청소와 대량 학살로 파악하면서, 민족적인 관점에서 미국 원주민 문제를 고찰해 왔습니다. 그는 현재 콜로라도 주립대 인종학과 (Ethnic Studies) 교수이자 같은 학교의 미국인종민족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쟁쟁한 운동가답게, 미국인디언운동연합의 콜로라도지부 공동 책임자이자 미국인디언비방저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그동안 재임하고 있던 인종학과 학과장 자리는 자신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아지자 1월 말에 사임했습니다. 처칠의 주장은 그 자체도 논란거리지만, 대학 교수나 학자가 누릴 수 있는 사상의 자유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도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대학교수협회 같은 단체에서는, 처칠에게 재갈을 물리는 것은 대학과 같은 고등 교육 기관에 필수적인 사상과 학문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처칠의 주장이 미국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며, 그에게 자기 생각을 발표할 기회를 만들어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콜로라도의 주지사 빌 오웬스(공화당)는 처칠을 아예 대학에서 몰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장의 근거는 미국 정치인들의 단골 메뉴, 즉 "선량한 납세자" 들이 낸 세금이 처칠처럼 미국을 음해하는 사람의 월급으로 쓰이도록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정치권의 압력을 받고 있는 콜로라도 대학 이사회는 2월부터 처칠 교수의 고용이 적당한 것인지를 검토하는 공식 심사에 들어갔습니다. 만일 다른 특별한 잘못 없이 처칠이 해고된다면, 이는 학문,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분명한 침해가 되겠지요. 그의 주장의 정당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말입니다. 처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 단지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점만으로 그의 입을 막고 피해를 주려 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부시를 비롯한 미국 정부와 보수 언론이 보여주는 주류판 9-11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어보셨을테니, 이번엔 처칠 교수가 어떤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한번 들여다보기로 할까요. 그가 2001년에 쓴 문제의 에세이로, 뒤늦게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그를 단번에 미국의 공공의 적으로 만든 "누군가는 반격한다: 보복의 정의에 대하여" (Some People Push Back: On the Justice of Roosting Chickens) 를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싣습니다. 처칠 교수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사람들이 열받아 하는 바로 그 글입니다. 문명비평가가 쓴 글답게 글이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말로 옮기는 데 꽤 애를 먹었습니다. 짬짬이 글을 옮기는 동안에, 이 에세이가 아예 한 권의 책으로 발전되어 출간됐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제목은 똑같이 <보복의 정의에 대하여> (On the Justice of Roosting Chicken) 라고 붙였습니다 (오른쪽 사진). 그의 주장을 과격한 한 극단주의자의 주장으로 생각할지 미국의 양심으로 생각할지는 이 글을 보는 당신의 몫입니다. 처칠: 누군가는 반격한다 [1] 처칠: 누군가는 반격한다 [2] Churchill 사진: 콜로라도 주립대 인종학과 책 사진: 반즈앤노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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