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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거님이 헌터 S. 톰슨의 곤조 저널리즘에 대한 글에 붙이신 덧글에서, 곤조라는 말을 일본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해서 기록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잖아도 톰슨 글을 쓴 뒤에, 그를 계기로 하여 "기자가 본문에 등장하는 기사" 에 대한 글을 써두고 퇴고하고 있는 중이고, 톰슨에 대해서도 그 뒤 조금 더 들여다보고 있는 과정이라, 답글이 길어진 것을 핑계로 이리 끌고 왔습니다.
우선 문제 제기하신 글부터: 물론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곤조는 일본어의 근성이지만 gonzo가 일본말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정확한 근거는 찾을수 없습니다. 물론 우연찮게 이 저널리즘에서 표방하는 내용이 "근성"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죠. 헌터는 팬 레터를 보다가 이 단어를 떠올렸다고 했는데 그 팬 레터를 보지 않는 이상, 일본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추측해서 기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톰슨이 쓰는 "곤조 저널리즘" 의 곤조가 어디서 왔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30여 년을 건너 뛰는 치밀한 사료 역추적을 해보지 않고서야 누가 알 수 있겠어요. 일본말 곤조를 리드에 쓴 것은 그 말의 뜻이 곤조 저널리즘과 잘 연결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톰슨이 곤조라는 말을 일본말에서 가져왔다는 뜻으로 오해하셨다면 유감입니다. 저 글을 쓴 뒤로 톰슨의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공포와 혐오> 71년판을 어렵게 구해 들여다보고 있는데, 여기서도 곤조라는 말은 몇 번 쓰이지만 그 말의 어원에 대해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책에서는 톰슨의 라스베이거스 취재 여행에 동행하는 그의 "변호사" 가 스스로를 "Dr. Gonzo"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톰슨이 죽은 뒤 온라인에 올라온 많은 글들이 톰슨을 Dr. Gonzo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좀 의아스럽습니다. 뭐, 상징적인 호칭이랄 수는 있겠군요.) 이 책의 표지 날개에는 톰슨이 자기 책을 "비록 실패했으나 숭고한 곤조 저널리즘의 한 실험" 이라고 말한 것으로 씌어 있습니다. 틀림없이 <지옥의 천사들> 이후에 붙인 이름일텐데, 그 어원을 찾기가 쉽지 않군요. 톰슨 사후에 여기저기 실린 칼럼 중에는 아거님 말씀대로 곤조라는 말이 톰슨이 팬레터에서 보고 얻어 쓴 것이라고 되어 있는 데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 에는,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보스턴 선데이 글로브> 기자 빌 카르도소로서, 그가 톰슨의 작품을 보고 "이게 진짜 곤조구만!!"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카르도소에 따르면 곤조라는 말은 남보스턴 아이리쉬 슬랭으로, 술판에서 맨 끝까지 버티는 작자를 지칭하는 말이라는군요. 아거님이 "헌터는 팬 레터를 보다가 이 단어를 떠올렸다고 했는데" 하셨는데, 그 헌터의 말을 출전과 더불어 자세히 좀 알려주시면, 거기서부터 다시 실마리 찾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아울러, 톰슨식 저널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기사를 단순히 일인칭으로 했다는 점이 아니라, 본인이 취재 대상에 적극 개입하여 삼투하면서 글을 풀어내려간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톰슨의 명작들이 단순히 일인칭 시점으로 된 관찰기가 아니라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일인칭 시점으로 적힌 글들은 기존 저널리즘에도 차고 넘치도록 많이 있습니다. 신문에 잡다하게 실리는 기명 칼럼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글과 톰슨식 저널리즘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취재 대상을 파악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목적이 되고 자기 자신의 온 몸뚱아리가 수단이 되어 구축되는 게 톰슨식 저널리즘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들여다본 중간 결론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온 작품은 필자 개인의 호주머니 안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가 일정한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톰슨식의 주관적 글쓰기는 결과적으로 매우 극단적인 객관주의로 연결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기사에서 저널리스트(글쓴이)가 직접 등장한다고 모두 곤조 저널리즘의 범주로 묶는 것은 형식만 보고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 넌센스라 하겠습니다. 톰슨 사망 소식 이후 몇몇 외국 블로그에서 블로깅을 곤조 저널리즘과 연결시켜보려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보았습니다만, 이 역시 똑같은 이유로 무리한 시도가 아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관심 대상에 천착하는 진지한 블로그들은 톰슨식 글쓰기와 비슷한 좋은 예가 될 수도 있겠지만, 피상적인 관찰과 잡다한 일상사에 대한 기록이 주류인 블로깅의 세계에 곤조 저널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여준다면 죽은 톰슨이 불 쉿! 하고 튀어 나올지도 모릅니다. (잡다한 일상에 대한 관찰과 기록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톰슨쪽하고는 거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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