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장
이 블로그의 글들 VI 이 블로그의 글들 V 이 블로그의 글들 IV 이 블로그의 글들 III 이 블로그의 글들 II 이 블로그의 글들 I ※ 예전 글들의 카테고리 분류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테고리
때時 일事 (Issues)
중매媒 몸體 (Media) 미국美 나라國 (USA) 갈硏 궁구할究 (Study) 흩을散 글월文 (Prose) 욀諷 찌를刺 (Satire) 짧을短 생각想 (Piece) 낱個 사람人 (Personal) 연결連 이을續 (Series) 섞일雜 끓일湯 (Others) 두二 바퀴輪(MCycle) 최근 등록된 덧글
아직 연애는 하지 않는 ..
by deulpul at 13:37 그런 점도 중요한 원인일 .. by deulpul at 13:34 아, 바로 맞추셨습니다... by deulpul at 13:27 김연아도 연예인에 넣어.. by 검투사 at 13:00 인터넷 주 이용자층에 차.. by MCtheMad at 04:56 최근 등록된 트랙백
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by 민노씨.네 일년이 다 된 글인데 새삼.. by 물리학 흠냐, 울 마눌은 백설공.. by 뒤돌아 보지 않는다, 후.. 검찰과 기자, 국민 세금.. by 자그니의 시크릿 스크립팅.. 전국국어대회 '4대강' 토.. by Green Monkey Blog** 태그
|
철없이 마냥 즐겁게 자라던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져서 한 친구에게 업혀 교실로 들어왔다. 의식은 명료했지만, 하늘이 노랗게 빙빙 돌았다.
최모라고 하는,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는 개구장이 친구가 내 급소를 무릎으로 차 올린 것이다. 급소란 무릎으로 차 올리기 딱 좋은 위치의 그 급소를 말한다. 나는 전의(戰意)는 물론이고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의욕을 순간적으로 상실하고 순식간에 완전히 무장해제되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아, 그 고통이란! 남성의 신체 중에서 일반적 가격에 가장 취약한 곳을 꼽으라면 이 허리 아래 급소가 첫손에 꼽힐 것이다. 신체 어디든 두들겨 맞으면 아프지 않은 데가 없겠지만, 이 쪽은 고통의 차원이 다르다. 가벼운 가격에도 이승과 저승을 왔다갔다 하는 그 충격에의 감도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럭저럭 허벅지 사이에 적당히 감춰져 있지만 완전한 방어가 되기에는 미흡하므로, 이 곳을 가격당해 쓰러지는 장면은 픽션, 넌픽션을 가리지 않고 일상 생활에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 ![]() 이 급소는 주로 허리띠 아래에 위치해 있으므로, below the belt 가 된다. 영어에서 below the belt 는 형용사구로 "규칙을 지키지 않는", 부사구로 "불공정하게" 의 뜻을 가진다. 권투 경기에서 벨트 아래를 주먹질하는 것이 규칙 위반인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주먹질이 직업인 권투 선수에게 벨트 아래를 얻어맞으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허리 아래 급소를 공격당했을 때의 고통을 우리에게 생생히 전하는 것 중 하나는 김유정의 단편 <봄봄> 일 것이다. 딸과 결혼시켜 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 거의 머슴이나 다름없는 데릴사윗감으로 뼈빠지게 일하던 한 청년이, 드디어 화를 참지 못하고 "장인님"과 한판 뜨는 장면인데, 샅 후리기를 서로 한 번씩 주고받는다. 양자가 느끼는 그 고통은, 서로를 "살려줍쇼, 할아버지!" 하고 매달리는 데서 극치에 이른다. 먼저 장인이 사위를 후리는 장면: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랭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이 자식!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줍쇼, 할아버지!" 하고 두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 보다 했다. 그래두 장인 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 맸다. 곧 이어 사위가 장인에게 반격하는 장면: 그러나 얼굴을 드니(눈엔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랭이를 꽉 움키고 잡아나꿨다. (중략)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아! 아! 이놈아! 놔라, 놔." 장인님은 헷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짖궂이 더 댕겼다. 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할아버지! 놔라, 놔, 놔, 놔, 놔라." 그래도 안되니까, "애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 나왔다. 아주 야무지게 잡은 모양이다. 얼마나 아팠으면 땅에 구르고 눈에 눈물이 핑 돌다가 급기야 장인이 사위에게 할아버지라 부른다. 치고박는 폭력물 영화에서도 허리 아래 급소 차기(잡기, 지르기 등등)는 단골로 등장한다. 주로 육체적으로 약한 쪽(여성)이 거한을 공격할 때 잘 나오는데, 아닌게 아니라 여성 호신술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공격술이기도 하다. 그런데 희한한 점이 하나 있다. 이렇게 문학이나 운동 경기나 영화에서 그 급소를 공격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남성들은 대개 순간적이나마 그 고통을 함께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육체적 고통과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유적(類的) 일체성에서 나오는 동질 반응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누구나 한 번쯤은 체험해 보았을 극심한 고통을 순간적으로 떠올리는 데서 오는 연상 효과일까. 예컨대 최불암이 오지명과 격투를 벌이고 있다. 최불암이 오지명의 안면을 가격하는 장면이 나오면, "어, 꽤 아프겠군..." 정도지만, 오지명이 최불암의 허리 아래 급소를 제대로 걷어차는 장면이 나온다면 남성 관객들은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아앗- 아파라!!" 가 되는 것이다. 분명 이 고통은 신체 다른 부위의 고통과 여러 점에서 다른데, 이것은 신체기관으로서의 고환 자체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일반 신체 부위에서 고통은 주로 외부의 자극을 피부의 통각이 감지해 처리하면서 발생한다. 예컨대 몰지각한 영어 선생님 박모의 몽둥이로 엉덩이를 얻어맞았을 때를 생각해보자. 길이가 꼭 선생님의 키만한 몽둥이가 휙 소리를 내며 엉덩이에 닿자마자, 자극을 감지한 피부의 감각 세포들은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라는 신호를 뇌에 마구 올려보낸다. 비상사태에 접한 뇌는 다른 신경 조직을 통해 "만져라, 만져라, 만져라..." 라는 명령을 급히 내려보내고, 그 때문에 우리는 자동적으로 아픈 엉덩이를 주무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지고 주무르면 순간적인 접촉(촉각)을 통해 통각의 자극이 완화되면서, 고통이 덜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물론 이 장면에서, 아무런 생물적 지식이 없는 우리의 박선생님은 "손 안내려? 앙? 앙?" 하며 2타, 3타를 준비하게 된다. 신경 계통의 명령에만 복종하여 계속 엉덩이를 주무르다가는 반항의 표시로 오해된다.) 얻어맞은 자리가 시뻘개지거나 붓는 것은 손상된 세포 조직을 수리하러 피가 분주히 몰려들기 때문이다. 혈관이나 세포나 피하 조직 모두 쉽게 늘어나므로, 긴급 공수된 피와 영양 물질은 상처 부위에 모여들어 그 부피를 늘이면서 (즉 부으면서) 수리 작업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고 있는 급소, 즉 고환은 이와는 좀 다르다고 한다. 고환의 기본 구조는 정자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기관들이 상대적으로 단단한 조직 (공(ball)이라고 하자) 으로 보호되어 있는 것이다. 이곳을 얻어맞으면,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아프다, 아프다..." 하는 신호가 뇌로 전달되긴 하지만, 이 급소의 유별나게 끔찍한 고통은 사실 이 신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비상사태에 접한 뇌는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이곳으로 피를 비롯한 영양 물질을 급히 공수하는데, 문제는 고환의 조직(공)은 다른 신체 부위와는 달리 늘어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공 안팎으로 피가 몰려들면서 자연히 압력이 늘어나게 되는데, 바로 이 압력이 우리가 느끼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출근길 만원 전철역에서 공익근무요원에게 떠밀려 이미 발디딜 틈 없는 전철에 올라탔을 때, 공익요원의 손길이 아픈 게 아니라 비좁은 전철의 사방팔방에서 오는 압력이 고통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다. 다른 부위에서라면 별로 아프지 않을 자극 (가벼운 가격) 에도 이 급소라면 화들짝 놀라게 아픈 것도, 바로 고통의 원천이 타격 자체가 아니라 피의 압력으로 발생하는 이차적인 것이기 때문이란다. 똑같은 이유로, 다른 신체에 두루 적용되는 "만져라, 만져라, 만져라..." 의 처방이 이 곳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아프다고 주물러봐야 오히려 압력이 더 높아져서 고통이 증가하는 것이다. 하긴 그러고보니, 영화에서든 운동 경기에서든 이 곳을 얻어맞은 사람들이, 고샅을 엉거주춤 부여잡고 껑충껑충 뛰기는 해도, 통증 부위를 세심하게 주무르거나 문지르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역시 똑같은 이유로, 이 급소 통증에 대한 거의 유일한 처방은 그냥 놔두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자극 때문에 몰린 피가 자연스레 풀어져 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고통 자체에만 빠져있지 말고 딴 생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전에 내가 있던 곳에서 생리통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꼴로 푹푹 쓰러지는 분을 본 적이 있다. 남성들은 죽었다깨도 모르는 고통이다. 여성들 역시 below the belt 에서 비롯되는 그 심오한 고통을 죽었다깨도 모르실 것 같다.
|